달이무척밝다.한점구름없는맑은밤하늘.나목들이일렬로줄지어서있는뒷동산위로둥실떠오르는달을보니고향생각이절로난다.물속의달을따려고뛰어들다죽었다는당나라시인이백은물에비친달에서혹임의얼굴을본것은아니었을까궁금하다.내게달이란고향을상징하는영원한향수로자리하고있다.전래동요중에’달아달아밝은달아이태백이놀던달아저기저기저달속에계수나무박혔으니‘라는가사가있다.달속에계수나무가있고방아를찧고있는토끼가있다는말을흑백부분을맞춰가며사실이라믿었던시절이있었다.
아홉짐의나무를하고아홉가지나물에아홉번오곡밥을먹고귀밝이술인이명주(耳明酒)를마신다는대보름을하루남겨둔밤,우리들은너나없이바가지를들고나물과밥을얻으러다녔다.이집저집에서가져온잡곡밥과나물을바가지에쓱쓱비벼먹던풍습은정겨운추억중하나이다.
새벽에어머니께선큰옹기시루에찹쌀과팥을섞어찰밥을가득쪄두고마당에불을피운후우릴부르셨다.한해동안무병안녕을기원하며각자나이대로가랫불을넘으라는것이다.
"가래넘세가래넘세"
어머니가먼저불을넘으시는데펄럭거리는치맛자락에불이붙을까봐마음을졸였다.오빠와내가다넘을때까지잠꾸러기작은언니는아무런기척이없다.보름전날밤잠을자면눈썹이희어진다는데보름날아침,언니의눈썹이정말하얗게변해있었다.그후로도이태나보름날아침이면언니의하얀눈썹을볼수있었다.잠이많은작은언니를놀래주려고어머니의각본,오빠의연출로그리된것을나중에알게되었지만어린마음에그말을믿고눈을비비며잠들지않으려애를썼다.
보름날아침조반을먹으며어머니는더위팔기를알려주셨다.누가부르면"내더위"라고먼저해야올여름더위를타지않는다고하시면서.내가먼저더위를팔리라다짐하고탱자나무울너머로숙희네집을기웃거렸다.
숙희도아침을먹었는지막대문을나서고있었다.반가움에
"숙희야?"
불렀더니
"내더위"
"에구머니나!!"
어머니가단단히이르셨건만잠깐의방심으로숙희의더위를몽땅사버리고발을동동구르며속상해했다.
보름달이떠오르면동네에서가장넓은우리집앞마당에선매년강강수월래가열린다.머리를땋아댕기로묶어색색의고운한복을입고원을그리며도는언니들이몹시부러워나도얼른자라언니들처럼하고싶었다.그때의노랫소리가대보름추억과함께아련히들려온다.
"달떠온다.달떠온다."
"강강수월래"
"뒷동산위로달떠온다."
"강강수월래"
설소리를따라강강수월래를외치던언니들과신이나서함께돌고있는데오빠가부른다.
"숙아우리쥐불놀이갈래?"
"정말?"
"응.따라와."
평소에는따라다니는내가귀찮아거짓말을하며따돌리던오빠가오후에방앗간에몰래들어가기름찌꺼기를깡통에넣어두었다며뒤꼍에서가지고와하나를건네준다.강둑에는벌써아이들이많이나와있었다.불쏘시개를넣어빙빙돌리다불이붙으면허옇게말라버석거리는풀위에불을논다.둑여기저기서불이타면서피어오르는연기에함성을지르며콧구멍이까맣게될때까지쥐불놀이를하고놀았다.
보름이지난후에는광안의쌀독,장독,사랑방의나락가마위에도커다란김밥이올려져있었다.풍년을기원하는대보름풍습이었던것같다.시루에가득담긴찹쌀밥은여러날을두고먹어도물리지않았다.지금은별식으로보리밥을해먹지만그시절엔거의모든집의주식이보리였기에보름날먹는찹쌀밥이별미중별미였다.
다시돌아갈수없는시절의추억들이나목에새순돋듯새롭다.전원에서자란사람은자연에대한사색도,느끼고공감하는정서도다르다.정보화사회의변화를외면할순없지만컴퓨터문화에만길들여져가는아이를보며자못걱정이된다.아이의마음의뜨락에는어떤정서가자리하고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