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집종손은아니어도어머님을모시고살다보니큰댁역할을감당하게된다.어젠아버님추모예배가있는날이었다.기독교식추모예배는제사음식을차리지않아간소해서좋다.아귀찜과밑반찬몇가지등준비를마친후예배를드렸다.직장인들이퇴근후참석하게되어예배순서를지루하지않게배려했다.
추모사시간에는큰댁시숙께서경주김씨가문의내력을말씀하셨다.호방하고대쪽같은성품으로동리에서영향력을행사하시던경주김씨집안이6,26동란을맞아큰아버님와작은아버님께서하루저녁에공비들에게참혹하게돌아가셨다.시체를찾지못해지금까지가묘로단장되어있다.단란하던가문은하루아침에풍비박산이났고삼형제중홀로생존하신아버님께서는외로운삶을살아오셨다.
역사의비극으로인한아픔을가슴에묻으시고아버님께선한번도우리앞에서약한모습을보이지않으셨다.늘당당하셨고무엇보다며느리의마음을잘다독여주신자상한분이셨다.칠십평생을유교와불교문화에젖어사셨음에도둘째며느리인내가복음을증거하자바로결단하시고어머니를모시고교회로나오셨다.하나님께서놀라운구원의축복을두분께허락하신것이다.술,담배를안하시고항상한복을정갈하게입어해말쑥하신선비의면모를지니신분이셨다.아침이면시조를읊으시듯성경을읽으시던아버님의목소리가지금도귀에쟁쟁하다.
생의마지막날까지복이많으신분이셨다.위암으로판정받은후,딱십오일며느리의간호를받으시고자녀와손자,사돈들까지모인고려대병원간호사실에서임종을맞이하셨다.세아들이사회적으로가장융성할즈음이었기에조화화환이오십여개줄을이었고오일장으로치러야할만큼조문객들이많았다.큰캐딜락리무진을타시고평소소일하셨던노인당과세자녀가살고있는아파트마당을돌아장지로향하셨다.아침이면세아들의집을들러서노인정으로향하시곤하셨다.차한잔하시며나의이야기에귀를기울여주셨고남편과불협화음이있으면언제나내편에서시던아버님이셨다.그렇게정이들어서인지화관예배를드릴때참많이울었다.나중에비디오를보니나만온통클로즈업하여민망하여볼수가없었다.
예배를마치고저녁을드시며담소를나누시다가저녁10시쯤모두일어나셨다.곧다가올4월종친회준비와자식들의결혼이주된주제였다.
<추모시>
16년전오늘,
봄날이었습니다
개나리가지에노란볓하나둘달리던날
고단한육신누이시고
빛난세마포갈아입으시고
천사들의손에이끌리어
상함도해함도어둠도아픔도없는
하늘나라로거처를옮기신아버님,
언제나우리를위해기도하시는
아버님을기억하게하시고
이땅은우리가영원히살곳이아니며
앞서거니뒤서거니떠나야하니,
한사람도낙오됨이없이천국에서
영원히사는복을하락하소서.
화목케하라신하나님의말씀실천하여
우리형제들서로우애하고사랑하게하소서.
이것이주님의가르침이며
아버님께서진정바라시는일임을잊지말게하소서.
가난해도선비의정신으로
생전에고결한삶을살으신아버님을본받아
이제와후대에도영영히이름을떨치는
경주김씨가문이되게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