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설날

설이다가온다.고향을찾는귀성객들의분주한모습을TV를통해보게된다.버스로열차로자가용이나비행기로교통수단이야어떻든명절에부모형제를그리는마음은모두가한결같으리라.어렵게열차표를구해귀성대열에합류했던시절이있었다.열한시간,심지어는열여섯시간이걸려고향에도착하기도전에몸은지치지만명절날돌아갈고향이있고기다리는부모형제가있다는것은참으로고마운일이었다.고향가는길이즐거웠던것은나를기다려주신어머니가계신까닭이었다.그것은가슴뿌듯한행복이었던것이다.

마람으로덮힌지붕,처마에는고드름이쑥쑥키를키우는날이었다.설을며칠앞두고어머니는시렁에얹어둔마른쑥을소다를넣고삶은후물에담가놓는다.매일물을갈아주어우려낸쑥과쌀가루를섞어시루에앉히고청솔가지로불을지피셨다.매캐한연기에눈물을흘리면서도어머니곁에있고싶어아궁이앞에서떠나질못했다.고향에서는거의모든가정이설날에쑥떡을꼭해먹었다.절구에찧어크고작게만들어광에놓아두고명절음식이떨어지면쪄서먹던어머니의손맛을어디서다시볼수있으랴.

내어머니노래는
초가집저녁연기
가난한청춘을청솔태워삭히던
매캐한송진내음애절하던굴뚝봉하며……

유안진님의<달빛에젖은가락>은내어머님의삶을그대로표현해놓은것같다.일찍돌아가신아버지를대신해논,밭의험한일을도맡아하시다결국은병을얻어돌아가시게된어머니의고귀한희생을어이잊을까.

우리집마당을가로지르면고종사촌오빠네방앗간이있다.설을앞두고손수레나머리에이고온시루에담긴찐밥이길게줄을선다.대여섯동리에서유일하게하나뿐인고종사촌오빠네방앗간떡을뽑아내는기계는종일바쁘게돌아간다.기계속에들어간찐밥은쫀득쫀득한가래떡이되어모락모락김이오르면절로군침이돈다.친구나친척의떡이면혹,한가락쯤먹을수있을까하여기다리기도한다.막상우리집떡은별로먹히지않은데남의떡을주어서먹으면어찌나맛있던지꿀맛이었다.

가래떡을해둔지하루반정도면썰어야된다.어머니를거들어떡을썰다보면어머닌석봉이엄마,난석봉이가되고만다.불은켜져있지만말이다.아무리노력해도어머니를따라갈수가없었다.아니따라간다는것은무리한나의욕심일뿐이다.일찍포기했더라면손에물집은생기지않을텐데어머닌한광주리를다썰때까지도손이괜찮으셨다.모든일에오랜경험과숙련된솜씨와요령이있어야됨을결혼하고십여년이흘러서야알게됐으니나를보고소리없이웃기만하시던어머니의마음을이제조금은헤아리게된것같다.

아랫집귀남이언니가설을쇠러서울에서내려왔다는소식을들은어머니는부쩍동구밖으로눈길을자주돌리신다.산밭가에생명의촉수를키워가며서있는미루나무가지에까치가앉아울기라도하면어서동구밖에나가보라하신다.한번도타지에있는언니걱정을남은자식들앞에서한적없지만혼자서애많이태우시다가오지못하던언니를설전날저물녘까지오래오래기다리시곤하셨다.

어머니를따라다니며부엌일을익히고있을무렵,오빠는연과팽이를만들기에분주하다.뒤꼍대밭에서맘에든대나무를베어오고뒷산에선나무를잘라와마루에서손이시린지도모르고종일연과팽이를만든다.대나무를깎아창호지를바르고색종이를여러모양으로오려여기저기붙이는사각연과긴꼬리를붙여만드는가오리연을만들어실험을해보고연줄을이리저리당겨보아중심을잡아광에걸어두고팽이는깎아동그란부분에오색의크레파스로예쁘게색칠을해둔다.지금은돈만주면살수있는것들이지만그시절에는누구나손수만들어가지고놀았다.읍네오일장에서사오신설빔은곱게접어반닫이에넣어두시고까치고무신은골방다듬잇돌위에얹어두셨다.오며가며들춰보며설날아침이되기를얼마나고대했는지,하루가왜그리더디가던지,설레던마음을어떻게표현해야할까.이젠세월이너무빠름을느낀다.하루,한주일,한달,일년이얼마나빠른지되돌아올줄모르는시간은돌아볼줄도모르고앞만보고달음질한다.

존경함에아버지보다더함이없고
의지함에어머님보다더함이없다
때문에아버님이돌아가시면
일생을두고외롭고
어머님이돌아가시면
일생을두고슬프다

-시경

어머니란말만들어도코끝이싸해지며금방눈물이맺힌다.그사랑깊이새기지못하고어머니데려간무심한세월만탓하며살았던날들,제자식두고부모가돼서야깨달으니효도하고자하나생존해계시지않는어머니를어찌뵈올수있으리오.설이가까워지니한분뿐인내어머니몹시도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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