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그늘 아래서

서늘한꽃그늘아래서성이며

베르테르가보낸편지를읽던시절

봄에오신귀한손님과같은그대의

맑고고운향기에그윽히취해

몇날꿈길을거니노라

그꿈속에서

향그러운밀어속삭이노라

마음이마음을투명하게비추는

이봄날

고요히타오르는그대하이얀몸짓처럼

보는것이봄이라고요

햇빛과비와한줌바람을차례로받아먹고

초봄부터열심히촛대를밀어올리더니

드디어희고순결한꽃가슴을열었어요

향맑은등불을켜고온동네를비추는데

두꺼운털옷은벗어야할계절에

첫산고를겪는여인처럼

꽃봉오리가붓처럼생겼다고’木筆’이라고도

히야,신비한속살을내보이다니!

자목련도같이불밝히자고

귀부인의비단옷같은꽃잎을내밀고

목련의아카펠라


雲丁최연숙

빈나뭇가지에촛불이켜진다
촛대아래서성이던눈들이모여
촛대의심지를톡톡건들이자
구로공단의뒷골목이환하게흔들린다

징검다리건너노각나무둥지에서
첫마실나온봄새한마리
꽃문을열고들어간다
훅,숨이막힌다

노동자들일제히기름묻은장갑을벗는다
세상의소음을잠재운봄밤
흰촛불의아카펠라를들으며
지나간거리를돌아온나의,
베르테르그슬픔을읽는다

시집『기억의울타리엔경계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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