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장음과단음의동의어이다.좀길게소리내야먹는밤이요,짧게끊으면때를지칭하는저녁이된다.장음의밤에관한이야기다.올봄꽃들이한꺼번에피더니밤도올밤늦밤없이쏟아진다고지인이전화를했다.소설가친구랑중앙선을타고양평으로향했다.이른시간인데도전철을타려는손님들이많았다.종착역인용문역에서내렸다.용문산에는몇해전다래순을뜯으러갔었고,노랗게물든은행나무를보러간적있다.노인들이많이타서의아했는데마침오늘이오일장인용문장날이란다.약초와으름,대추,밤등속을팔고수수부꾸미도고소한냄새를풍기며부쳐내고있었다.약초는그고장에서나는것인줄알았더니무릎이시원찮은할머니들께서경동시장에서가져다파신다는사실을알게되었다.
마중을나온지인의차를타고가다가막걸리가유명한지평이란곳을지나게되었다.짤막한키에인상적인버드나무가서있고100년이지나도록잘보존되었다는술을발효시키는양조장이있었는데드라마촬영을했었다고소개한다.무르익어가는벼위에가을햇싸라기가뿌려져맑은금빛이환하고군락을이룬가을꽃코스모스가반겨주었다.갈바람따라살랑거리는코스모스가고향을불러왔다.지인은농가주택에서살고있었다.마당에는조그만연못도있어수초아래오가는금붕어가사람이다가가니물위로모여든다.돌확에도부상수초를심어놓았다.가사가매우시적인양희은의"작은연못"이연상되었다.
향고운아메리카나커피를내려주어가을향기를더불어음미하고밤을주으러산에올랐다.산국,물봉선화,고마리가지천으로피어사진을몇컷담는데그대로그림한폭이다.지인은산국으로차를만드는방법을들려주었다.문예지를발간하는시인부부는농사를지어농산물로원고료를대신하기도하고산오디를따서관절염으로아픈시인에게보내고산국을채취하여덖어말려보내주고,요즘은밤을주워여러사람에게부쳐주며주는즐거움을만끽한단다.받는기쁨보다주는기쁨이크다는말에공감한다.받는기쁨을능가는하는것이주는기쁨이기때문이다.
친구는관절을앓은적있어높은곳엔가지못해아래서줍고나는더올라가야굵은밤을줍는다는지인을따라산등성이를오르며주웠다.제법알이굵었다.툭툭,내뒤로밤떨어지는소리들린다.금방나무에서떨어진밤송이를까서손안에쥐니온기가느껴졌다.세상에나,밤에도온기가있다니.엄마품을막떠나온아가의몸에서느끼는온기,신기해서다시꼭쥐어본다.그렇다.살아있는모든것은온기를품고있다.분명온기가있어다른누구에게그온기를전해줘야한다고말하는것같다.밤을여러번주으면서도온기가있다는사실은처음경험한다.작은밤은다람쥐랑산짐승먹으라고사람의손이닿지않는쪽으로던져두고좀더굵은것만주웠다.
두시간쯤지나니배낭이거의차올랐다.지인의집에손님이오기로하여내려와야했다.잠시쉬다가영화건축학개론,김연아통신CF촬영장소인구둔역에들렀다.지금은폐역이되어기차가멈춘상태였다.문화재청에서관리를해야하는데아직절차가남았는지이관이안돼양평코레일에서관리하고있다한다.인증샷을남기고추억과향수를간직한역사를둘러보았다.수령이오래된느티나무가소원나무로명명되어재미있었고좀떨어진곳에은행나무가있었다.가을햇살이비쳐드는소박한간이역은수많은사람들의해포달포사연을간직한채역사의뒤안길로사라졌다.결실의계절인가을에묵직한밤이담긴배낭을짊어지고돌아오는길이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