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비가내리다.
세상의소음을지우는비가좋다.
앞개울은하늘물과숲속초록물을안고
신나게노래하다.
물소리에귀를귀울이며셰익스피어의
소네트시집을읽다,
커튼을살짝젖히고빗줄기너머바깥세상을
살며시엿보기도하고
그도심심하면
발뒷꿈치를들고징검돌을건너듯거실을
오가기도하며비의고요를즐기다.
나직히흐르는원더풀데이…새소리..
소낙비가가루비로바뀔즈음전화를받다.
집사님두분이대공원산책을가잔다.
안개비내리는호숫가를우산을받쳐든
세여인의발걸음은한가롭기그지없다.
비가와서인지오늘은공원을산책하는사람이
별로없다.호숫가나뭇잎들은보이지않는
손이뿌려주는고운물감을맛있게받아먹기시작이다.
산허리를감싸고있는뿌연산안개가
뭉실뭉실다양한모양을만들며바삐등성이를
넘어가다.등성이를넘는산안개처럼
먼먼그리움은비에젖은내마음결을부여잡고
놓아주지않는다.
저물녘호수는은빛잔물결켜켜로
물비늘을세워크로머하프의현을켜며
호숫가를지나는세여인을반겨주다.
메타쉐콰이아일렬로줄을맞추며서고
잔디고른긴둑길을
프릴이달린물방울무늬,함박꽃무늬,체크무늬,
우산셋이영화처럼동화처럼거닐고있다.
호수를배경으로,비의무게로살며시고개
숙인코스모스를배경으로한컷.
비가와서인지가을이부쩍깊어진것같다.
수요저녁예배를드리고돌아오는길에
한기가느껴지다.
그림쟁이가주인인가끔들르는분위기좋은
카페‘봄’에서온기를느끼고싶어그집의별미인
대추차한잔을마시다.
흰벽에새로걸린그림을감상하며
빗방울전주곡의맑고투명한선율에귀를맡기고
방금마신차의온기로온몸을따스해질무렵
일어서다.
…
비오시는수요일에.
수요예배를마치고돌아오는길에
다리진입로에서
우회전을하고있는내차를
뒤차가와서들이받았다.
다행히차의속도를줄인상태라
가볍게받은것이다.
차문을열고나가보니
다른곳은이상없고범퍼에달린비상등만깨져있었다.
다행이다싶어미안해하는그사람에게
‘조심하세요.’
한마디건네고괜찮으니됐다고했다.
차에대한이야기가나왔으니
좋지않은나의운전습관을공개한다.
음악이끝난시디를교체하고
전화할데가생각나전화를하고
문자메시지를보내고
운전대를잡으면잊고있던
수만가지생각들이다떠오르니
이상한일이기도하다.
하루스케줄정리가달리는차안에서
이루어지다보니당연히
자주불안을느끼기도한다.
나도모르게자리한
좋지않는습관을고치려해보지만
쉽지가않다.
접촉사고가있던날은농장에가는길이었다.
잠시한눈을팔다
이번에는내차가앞차를살짝받았다.
키가구척이나되는남자가
성큼성큼걸어오더니
차뒤꽁무니를이리저리살펴본다.
일났다싶어정중하게사과를했다.
다행히부딪힌흔적이없었다.
‘조심하세요.’
한마디하고차에올라가버렸다.
안도의숨을내쉬고차에올랐다.
불과두시간전에
내차에약간의손해를끼친사람을
웃으며보내주고
같은상황으로골치아플뻔한일이
잘마무리된것이다.
우연일지라도짧은순간
심는대로거둔다는진리를되새기게된사건이다.
깐깐하게말고
조금은손해본듯살자던
평소나의신조가
조금은아주조금은
괜찮은거였는지모른다며
미소를지어본다.
…
나가난한여행자되어
가장편안한자세로음악을듣습니다
눈을감고,
여기는은하철도999를기다리는정거장입니다.
은하계어딘가에기다리고있을
그대에게가는길위에있습니다
천상에서들리는하모니카와기타의선율에취해
보랏빛풀꽃옹기종기모여사는강가를지납니다
은빛강물이손흔들고
초록이들일어나청호반새노래에장단을맞추네요
팔랑팔랑반짝반짝초록이의손은이쁘기도하지요
폴카라고하나요
경쾌한리듬을따라추는집시의춤
프릴이풍성한원피스차림으로추고있어요
싱긋웃는얼굴보일테지요
석양이구름에게성의를입히고있네요
유리창에다섯손가락을펴보아요
마주하는다섯개의손가락이보이나요
하늘이호수와마주하고있듯말입니다
어느새열여덟번째역을지나고있어요
열아홉번째역이라고했지요
얼핏듣긴했는데
아,잊지않고있어요
애수어린목소리
들리네요
가난한여행자의가장큰선물
나를맞을준비였군요
…
(음반감상소감을적다.)
저녁산책길에
동그란원을그리며걷는
돌다리위에서
호수를만납니다.
호숫가에첫발을들여놓으면
호수는비릿한언어로말을걸어옵니다.
비릿한냄새는
호수의품안에
생명이자라고있다는증거입니다.
호수의품은넓고넓습니다.
밤마다
산그림자를
메타쉐콰이아나무를
가로등불빛을안아주고
간간이지나는코끼리기차
호수위를지나다정지되어
찬바람을맞고있는리프트
파닥거리며잠투정하는물고기
가을앓이중인내마음까지도
꼬옥안고
자장가를불러주기도합니다.
호수의자장가소리에
살포시귀를연
달님이호수위에내려와
가만이은종을흔들자
은종안에서통.통.통.튀어나온음표들이
초롱한별이되어반짝입니다.
달빛을품어초롱별을탄생시킨
물위에
매일저녁조금씩잘라
호수에띄운
내그리움의여린싹들이
동동동떠다닙니다.
이가을
홀로호숫가에나앉아
무연히
잔물결바라보는날많아져
이슬처럼맑은그리움이
눈가에맺혀
똑똑지는날많아져
그리운이의이름이
마음결따라움직이며
낮게일렁이는날
제슬픔에겨워푸른멍을안은
하늘한자락
빈마음자리에펼쳐봅니다
…
소년은강가에나가보았습니다.
장마가지나고어느사이생겼는지
물결이굽이쳐흘러가는
곳에조그마한흙모래톱이생겼습니다.
하늘이강물과짝이되어마주보고
강이하늘인지
하늘이강인지높푸르고깊게만보였습니다.
풀내음을맡으며앉은채로뭔가골똘이
생각하던소년이갑자기무릎을탁치더니
집으로내달리기시작했습니다.
소년은묶여있던자전거를풀어
강가로다시
나왔습니다.소녀를태우고가을강가를
달리고싶었습니다.
잠실나루를지나
다리를몇개더지나고
반포나루에서여의도까지온힘을다해
페달을돌렸습니다.여의도강언덕에서
소녀를만났습니다.
소녀는아무말도없이소년을보고자꾸만웃기만합니다.
모자를거꾸로쓰고반바지에티셔츠를
입고있는소년이개구장이어린아이같아
보였기때문입니다.
둘이탈수있는자전거에
소년이앞에소녀가뒤에타고달렸습니다.
소녀는자전거에
치마가더러워질까봐자꾸만여미어봅니다.
가을바람에치마도하늘로날고싶어지나봅니다.
올라가는옷자락을붙드느라애를써보지만
허사였습니다.
페달은함께돌려야했습니다.
소년이쉬면소녀의페달도돌아가지않았습니다.
메밀꽃밭을지나들국화꽃밭,
코스모스언덕길을지나서강대교아래서
잠시쉬기로했습니다.
지난여름비에어디서밀려왔는지
하얗게떠있는몇개의부포위에작은식물이
위태롭게매달려있습니다.
다시페달을밟으며
행주대교아래자전거전용도로끝에서
되돌아왔습니다.
갑자기바람이불며하늘이깜깜해져옵니다.
먹구름이덮혀
한차례소나기가몰려올것같습니다.
‘후두둑~!’소녀의옷자락에
굵은빗방울이떨어집니다.소년은힘을다해
달립니다.다리아래까지는좀더가야하는데
빗줄기가점점굵어집니다.
다리밑에서비그치기를기다리다
버스우동집에들어갔습니다.
김밥과우동을
맛있게다먹었는데도비는멈추지않습니다.
더욱세찬바람과장대비가내립니다.
소녀는집에갈일이걱정됩니다.
어디서구했는지소년은까만비닐을가져와
소녀에게씌여주었습니다.
장대비를맞으며소녀를데려다줍니다.
옷이비에푹젖고
신발은걸을때마다’푸우푸우!’
비를쏟아냅니다.
비에온몸이젖은소년은잘가라고
자꾸자꾸손을흔듭니다.소년이걱정이된
소녀는밤새기침을하면서도소년이감기
들지않기를기도합니다.그렇게하루가
지나고햇살이방긋웃는다음날
아침이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