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동화 – 들꽃여행

소녀는새벽녘에잠이들었습니다.

햇살이창문을살며시열고들어와

소녀의얼굴을포근하게어루만질무렵

눈을떴습니다.산솔새가

개울건너단풍나무가지에앉아소녀의

기도를들려주는햇살고운아침입니다.

긴시간그리움을안으로곱게접어

두었던소녀는노란꽃핀을

반지르한까만머리에꽂으며거울을쳐다

봅니다.거울속에서웃고있는동그란

얼굴이가을하늘처럼맑고곱습니다.

꽃신을신고징검돌을건너는소녀의

발걸음이가볍습니다.일곱번째징검

돌은평평해서소녀가자주앉아있곤하던

곳입니다.소년이보고싶으면그돌위에

앉아보랏빛달개비꽃편지를물위에띄우며

소년에게닿을수있기를기도하던

곳이기도합니다.


개울을건너코스모스무리지어핀

언덕에서소년을만났습니다.소녀를

만난소년은씨익웃더니한적한언덕

길을내달렸습니다.

언덕끝봉순이네밭가에서부터는자작

나무숲길로이어집니다.

소년의뒤를따라오던소녀가숲속

길을손가락으로가리킵니다.

홍방울새소리가듣고싶었나

봅니다.아무도가지않은듯한좁다란

오솔길을가을들꽃들의이야기를

들으며밤나무아래서토실한밤을

주우며갑니다.

고개를반쯤숙인수수밭을지나잎이

하나둘누래지는콩밭을바라보며

소년은소녀를소녀는소년를몰래

몰래훔쳐보며갑니다.

그러다눈이라도마주치면언제

보았냐는듯딴청을부리기도합니다.

"와~~!!!"

소녀와소년은동시에탄성을질렀

습니다.눈앞에자잘한들꽃이

하얗게피어넓은벌을가득메우고

있었기때문입니다.

어느새소년은흥이나노래를부릅

니다.소녀는나비처럼사뿐사뿐거닐며

들꽃과한몸이되어버렸습니다.

까르르까르르해맑은웃음넓은벌에

퍼졌다꽃잎위에살포시내려앉습니다.

키가큰자작나무에기대선소년은

주머니를만져봅니다.지난오일장날

아버지를따라간읍네에서아버지가

장군이네할아버지와순대국드실때

몰래미순네악세사리가게에서소녀에게줄

목걸이를하나샀습니다.

볼록하게담겨있는네모상자가손끝에

만져집니다.

어떻게전해주지…
눈을감아보라고할까.
아님뒤를돌아보라고할까.

소년은소녀를불렀습니다.커다란

눈망울을끔벅이며달려오는

소녀에게

"눈을감고손을내밀어볼래?"

"왜?"
"그그냥!"

소녀는소년이시키는대로예쁜눈을

살며시감고손을내밀었습니다.
소년은주머니에서꺼낸네모상자를
소녀의손에가만히쥐어줍니다.

그상자안에는맑고투명한방울모양의

목걸이가담겨있었습니다.

상자를열어보던소녀는좋아서어쩔줄

몰라합니다.

자꾸만져보다가목에다걸어봅니다.
수정처럼맑은동그라미가소녀의가냘픈
목에서달랑거립니다.

"예쁘다!"

기분이좋은소녀가꽃길을달리기시작합니다.
들꽃이소녀인지소녀가들꽃인지

소년은구별이안됩니다.

소년은소녀를찾아나섭니다.
들꽃밭에서숨바꼭질을합니다.
소년의바로앞에숨어있던소녀가
일어나뛰어가다꽃신이풀뿌리에

걸렸습니다.

"아얏!"

소녀는중심을잃고쓰러졌습니다.
무릎에선피가나고소녀의눈에서
금새눈물이주르르흐릅니다.
소년은소녀를일으켜주며살프시

안아봅니다.화들짝놀란소녀가

소년의품을빠져나옵니다.



햇님은서쪽산으로반쯤기울어지고
소녀는헤어질시간이가까워져
시무룩합니다.
소년은소녀의손을꼬옥쥐며

부끄러워애써피하는소녀에게다시

눈을감으라고하더니볼에입마춤을합니다.

소녀의긴속눈썹이파르르떨리며
잘익은복숭아처럼얼굴이붉어집니다.

"안녕!"

"또만나!"

손흔들며작별을하고미순이네소가

게으른하품을하고서있는언덕을되짚어

징검돌을건너집으로돌아왔습니다.

소녀는저녁밥을먹으라는엄마의목소리가

들리지않습니다.

들꽃벌에서몸을일으켜잠시안아주었던

소년의따뜻한체온이온몸을감싸고

있는것같아두손을가슴에가만히모아봅니다.

노을이소녀의창가에붉은깃털하나를

살며시걸어줍니다.

소녀는소년이준목걸이를풀어손에

꼬옥쥔채로잠이들었습니다.

꿈속에서다시소년을만날수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고운 길

바람이친구데리고

방긋방긋노니는꽃길을가네

매일지나는고운길

오늘은바람이와꽃들이의

친구가되고싶어

그네들의하양.노랑.푸른미소로

꼬깔모자엮어쓰고

미소처럼해맑은노래하고싶어져

기하학적무늬를만들며

오르는담쟁이

어린덩쿨손이시멘트담을부여잡고

하늘로오르네

위만보고오르는담쟁이는

푸른하늘이샘물인줄아나봐

어쩜

신비로운풍경이사로잡는눈과귀

가던길멈추고가만히귀대어보네

여리디여린넝쿨손이

들려주는생명의소리

아,

살아있음은아름다운마음한줌

나눠주는일이라고

담쟁이아래개미한마리

저보다더큰짐하나지고

고개를끄덕이며지나고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