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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영화 딱 10자평: 2015.2.26]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나이트 크롤러,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기생수 파트1, 파리 폴리, 조류인간, 백 투 더 비기닝,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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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장 깊숙이 집어 넣었던 두꺼운 한겨울 외투를 다시 꺼내 입었네요. 영화기자가 전부 다 보고 다이제스트로 소개해드리는 ‘개봉 영화 딱 10자평’, 2월 마지막주 개봉작입니다.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The Salt of the Earth
     지구에 바치는 러브레터 ★★★★

  ‘베를린 천사의 시’, ‘파리, 텍사스’ 같은 걸작을 만들었던 빔 벤더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업, 아티스트 3부작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음악), ‘피나'(현대무용)에 이어 브라질 출신의 사진가 세바스치앙 살가두 이야기. 영화 전반부는 분쟁, 기아, 빈곤, 이민, 노동 등을 다룬 사진들은 욕망이 사람을 어떻게 속박하고 변화시키는지,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비릿한 피냄새와 함께 드러냅니다. 불편하고 힘겹지요. 하지만 “인간이란 종족에게 구원은 불가능하다”고 절규하던 살가두가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아름다운 어머니 지구의 온전한 속살을 다시 카메라에 담고, 숲을 남벌해 황무지가 돼 버린 고향 땅에 25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새로운 열대우림을 만들어냅니다. 이 영화는 노(老) 사진가가 절망의 끝에서 길어올린 희망의 노래, “지구에 보내는 러브레터”입니다. 사진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감탄 감탄하며 볼 수 있는 영화. 지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작.

 리뷰 링크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그는 희망을 찍고, 영화는 그의 희망을 찍다  
。나이트 크롤러

   주변에 이런 사람 꼭 있다 ★★★☆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금지된 사랑의 아픔으로 애처롭게 깜빡였던 제이크 질런홀의 커다란 눈동자를 기억한다면, 이 영화에서 그가 얼마나 좋은 배우인지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더 잔혹한 뉴스영상을 찾아 밤거리를 누비는 영상 취재 프리랜서 ‘나이트 크롤러’가 된 질런홀의 눈에선 깜빡임이 사라졌습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도, 어떤 도덕적 거리낌도 없는 소시오패스. 눈동자가 마치 야행성 동물의 그것처럼, 허공에 뜬 혼불처럼 번들거리며 사악한 빛을 내지요.  지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작.

리뷰 링크 [나이트 크롤러] 잔혹할수록 대담해진다…광기 가득한 심야의 앵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쾌락은 기대하지 마시길 ★★☆
유구무언. 아이고… 의미없다….

。기생수 파트1
싸울 것인가 먹힐 것인가 ★★★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영화로 옮기는 일본의 CG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네요. 만화와는 좀 다른 스토리이지만, 기생수 ‘오른손이’는 깜찍해요. 원작 만화 팬이라면 대만족일 듯.  ^^

。파리 폴리
소중한 건 늘 곁에 있는 법 ★★★
믿고 보는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 중년의 위기를 경쾌하게 터치하는 프랑스 소품. 평탄했던 시골 생활, 무뚝뚝한 남편, 아직도 소녀같은 아내… 매력적 연하남의 등장, 갑자기 떠난 파리 여행.  

。조류인간
이 몸이 새라면 날아가리 ★★★
‘러시안 소설’, ‘배우는 배우다’ 등을 만든 신연식 감독의 신작. 15년전 실종된 아내를 뒤쫓는 과정에서 비슷하게 가족의 실종을 겪은 사람들을 만나고, 조금씩 그 비밀에 접근해가는 사회부적응자 소설가의 이야기.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 문학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독특한 작품. 그러나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할 듯. ^^;

。백 투 더 비기닝
발랄한 척하지만 진부한 ★★☆
어느날 지하실에서 발견된 아버지의 유품이 실은 타임머신. 낙제를 면하고 로또에 당첨되기 위해 시작한 시간여행,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참신한 스토리나 설정보다는 요즘 10대 취향의 감각적인 시간여행물로 만들려 집중한 느낌. 카메라를 왜 이리 흔들어대는지….

。포커스
잘난 사기꾼 예쁜 도둑女 ★★
잘난 척 사기꾼男과 예쁜 척 도둑女, 속고 속이는 이야기. 윌 스미스는 새로운 ‘스팅’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것 같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아요.  ‘어바웃 타임’ 등에 나왔던 여주인공 마고 로비는 그냥 가만 있어도 예쁜데, 왜 이리 예쁜 척을 하는지. 왜 자꾸 몸을 무기로 사용하는지. 윌 스미스는 무척 재능있는 배우라 생각했는데, 과잉 자의식이 배우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 같은 느낌이네요.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인류가 처한 참혹함,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희망에 바치는 송가


“카메라가 발명된 1839년 이래로 사진은 죽음을 길동무로 삼아 왔다”고 수잔 손택은 그의 책 ‘타인의 고통’에서 말했다. 손택의 말대로 “사진을 통해 사람은 영원히 죽음을 응시하고, 영원히 학대받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남들처럼 그 학대와 죽음의 지점에 멈췄다면 브라질 출신의 사진작가 세바스치앙 살가두(71) 역시 인간의 악마적 본성을 담아낸 여러 사진가 중 한 명으로 머물렀을 것이다. 이 11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12세 관람가)은 살가두의 경이로운 사진과 일생에 관한 빔 벤더스 감독의 기록이다. 인류가 지닌 참혹한 조건,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불굴의 희망에 관한 송가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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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가두는 ‘다른 아메리카’ ‘길의 끝 사헬’ 등 전쟁과 기아, 이민과 불평등의 현장을 찍은 보도사진으로 명성을 쌓았다. 브라질 금광에선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으로 자신을 속박한 인간 군상의 스펙터클을 담았다. 에티오피아에선 반군 헬기의 기관총질에 수단으로 쫓겨가는 난민들과 함께 뛰었다. 말리에선 말라붙은 엄마의 젖무덤과 굶주려 죽어간 아이의 벗은 몸을 찍었다. 200만명이 모인 한 난민촌에선 콜레라가 번져 하루 1만2000여명이 죽어나갔다. 그의 사진 덕에 서구사회는 아프리카 내전과 기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치를 떨며 돌아섰다. “인간은 정말 흉악하고 끔찍한 짐승이다. 참혹했던 르완다를 마지막으로 나는 여행을 끝냈다. 인간이란 종족에겐 어떤 구원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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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새로운 희망을 향해 카메라를 돌렸다. 갈라파고스의 이구아나, 콩고의 고릴라들에게서 겸손을 배웠다. 극지부터 열대우림 속 원시부족까지 여전히 아름다운 어머니 자연을 담은 ‘제네시스’ 시리즈를 찍었다. 절망과 파괴로부터 건져올린 긍정과 자연의 힘, “지구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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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벌(濫伐)로 황무지가 된 고향 브라질 고향 땅에 가족과 함께 250만 그루 나무를 심어 일군 기적은 ‘인스티투토 테라’ 시리즈에 고스란히 담았다. 감독은 “인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살가두가 진정으로 지구를 지키는 방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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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쿠바 음악, ‘피나 3D’의 현대무용에 이어지는 빔 벤더스 감독의 아티스트 3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마침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28일까지 살가두 사진전 ‘제네시스’도 열리고 있다. 영화를 보기 전 직접 살가두의 압도적 사진을 만날 기회다.

이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