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장마>

장마가시작되면

마을사람들의손길이분주해집니다.
둑하나사이로바다와들판이있어서바닷물이

범람이라도하면어쩌나하는조바심에

마을엔일순긴장이감돕니다.
바닷물이넘치면들판에한해벼농사를

망치게되기때문입니다.

마을어른들께선비닐우의를입고

삽을어깨에둘러메시고논에물고를터놓으러

가십니다.물고를터놓는것도비가많이오면

아무소용이없어지고맙니다.

장대비가내린후에는누구네논인지전혀구별을

할수없이윗들,아래들이온통물바다가되어

버리기때문입니다.

아이들은마을어른들의이런염려에도

아랑곳하지않고붕어잡는재미에마냥즐겁기만

합니다.가뭄에농업용수로사용하기위해물을

가둬놓은방죽에물이넘쳐흐릅니다.
물이내려오는곳은폭이넓고비스듬히시멘트로

만들어놓은곳입니다.

아이들은바지와치마를걷어올리고

나란히서서물살에붕어가넘어오기만기다립니다.

붕어가은빛비늘을반짝이며팔딱팔딱재주를넘습니다.

어떤녀석은뛰지않고약삭빠르게물살에숨어가만히

내려오지만이내붙잡히고맙니다.

가지고간양철바께쓰가금방차오릅니다.

나는바께쓰를들고오빠뒤만졸졸따라다닙니다.
"잡았다"하는소리가들리면재빨리바께쓰를갇다

놓아야하니까요.잠시들꽃에한눈이라도파노라치면

오빠의목소리는더욱커집니다.

"빨리바께쓰가지고와~"하면서말입니다.

동네모퉁이에있는방죽에서집까지는

한참을와야합니다.붕어가가득담긴바께쓰를들고

오빠의휘파람소리를들으며집으로향하는발걸음이

가볍기만합니다.

또하나의즐거움은

다음날어머니의맛있는붕어찜을먹을수있다는

것입니다.매운고추를따서절구통(고향에선도구통이라
함)에갈아지난해말려두었던고구마줄기에양념을
듬뿍넣어보글보글끓인붕어찜의맛은일품입니다.

유년의붕어잡이는그후로지금까지이어집니다.

비록꿈속에서지만말입니다.어쩜..붕어를손안에

꼬옥쥐고있는감각까지느껴지는지요.

꿈은자라지않나봅니다.

오늘처럼짜락비가주룩주룩내리는날에는

마음은벌써고향방죽가를서성입니다.

모내기

<모내기>

스무날전부터엄마는동네사람들과

모내기품앗이를해오셨습니다.
오늘우리논의모를심기위해한사람한사람

인원수를늘려가신것입니다.

아침일찍부터분주합니다.

뒤란에있는지게며못줄을
내놓고어제읍네오일장에서사온생선과

집에서기르는닭도한마리잡고

철따라준비해둔밑반찬도꺼내양념하시며

고종사촌언니와음식준비를하십니다.

저도정개(부엌의고향사투리)를들락거리며
잔심부름을거들지요.

모내기때먹는모밥과추수때이웃집에서

먹던밥이가장맛있습니다.

오전내장만한음식을광주리에담아머리에입니다.

나는재빨리엄마머리위에

또아리를올려드립니다.

무거운짐이나물동이를이실때면

꼭머리위에수건을돌돌말아얹은후물건을얹습니다.

그게재미있어보여소꿉장난할때흉내도내보았지요.

막걸리주전자를들고어머니뒤를따라갑니다.

검둥이도쫄랑쫄랑내뒤를따라옵니다.

오전에는윗들논에서모내기를합니다.

논가운데길을따라한참을가다보니

우리논에모심는모습이보이기시작합니다.

논둑에음식을내려놓고잠시구경을합니다.

이쪽저쪽논둑에계신분중먼저끝나는쪽에서

어~~~하고소리를하시면못줄이한칸뒤로이동합니다.

못줄에끼워진빨간색실에맞추어모를심으면

정확하게간격이똑같습니다.

"저도한번해볼께요"했더니강암양반이건네줍니다.

쉬울것같던못줄떼기가생각처럼잘되지않습니다.

질척한흙에깊숙히꽂는것과빼는것이무척힘이들어

딱한번밖에해보지못했습니다.

이다음어른이되어힘이세지면잘할수있겠지요.

논둑에동그랗게모여두레밥을먹습니다.

옆집양정댁은큰대접에밥을넣고여러가지반찬을넣어

비벼맛있게드시는데

내가먹는밥의다섯배는되어보입니다.

월평양반은밥보다술을더좋아하셔서

막걸리두대접을먼저드시고밥을잡수시는데

언뜻보니다리께에거머리가붙어있습니다.

"아저씨거머리붙었어요."하자
드시던젓가락반대편으로쓱쓱문질러버립니다.

거머리가떨어져나간곳에서검붉은피가

주르르흘러내립니다.

나는자꾸만걱정이되는데아저씬아무렇지도않는

표정입니다.

어른이되면아저씨처럼겁도없어지나봅니다.

아무도없는논에는바람에잔물결이반짝입니다.

이미모내기를끝낸곳에는연두빛잎새가

살랑살랑춤을춥니다.

키작은풀꽃들이옹기종기모인곳에

나비가모여듭니다.

시계풀꽃을따서꽃반지와꽃목걸이를만들어

검둥이에게도걸어주며

초여름한낮을보냅니다.

감나무 이야기

<감나무이야기>

영복이네집은일제시대에일본사람들에의해서지어진
판자집입니다.마루와천장에총구멍이숭숭나있는것을보면꽤나
치열한전투도있었나봅니다.
수세식변소란소리를서울로이사와서야알게됐지만

영복이네는그것이수세식변소라는것조차알지못한때에있었으니

문화혜택이일찍주어진셈이지요.
암튼그집은동네초가나기와집과는다른

현대식집이었습니다.

영복이네앞마당에는큰감나무두그루가우뚝서있었습니다.
한그루는단감이고

또하나는꾸리감(끝이뾰족한큰감)나무입니다.
두그루의감나무는해마다한나무씩해걸이를해서한나무에만
감이열리곤했습니다.

감꽃이하얗게피어하나,둘,질무렵이되면

동네아이들이감나무아래로모여듭니다.

아침일찍영복이아버지께서말끔하게빗질을
해놓으신감나무아래에감꽃이똑똑떨어집니다.
아이들은일제히약속이나한듯이감꽃줍기에바쁩니다.
발자욱소리도나지않게조심해야합니다.
영복이네개한테들키면혼비백산해야하니까요.

마당을깨끗이빗질한후
금방떨어진감꽃은우유빛이감돌며곱고먹음직스러워

주워서바로먹으면달작지근한게맛이있습니다.
용복이아버지는술을좋아하십니다.

어쩌다술을너무많이드시고
오신다음날은마당을쓸어놓지않습니다.

그런날이면감꽃줍기가시간이걸립니다.

전날떨어진감꽃과겹치게되어골라가며

주워야하니까요.

여자얘들은치마폭에가득담고

남자얘들은주머니에가득주워
아카시아가그늘을드리운미란이네담장밑평상으로가져옵니다.
주운감꽃을쏟아놓고무명실에꿰여

목걸이,반지도만들어서로에게걸어주며맛있게먹기도합니다.
감꽃이질만큼지고나면

조그맣고예쁜감이열립니다.

여름장마무렵,비가오고난후에는감이떨어집니다.

조그만감을주워다장독뚜껑을열고

된장에쿡찍어먹습니다.그떨떠름한맛이란.
가을이되어감이익어갈무렵까지영복이네감나무아래는

아이들의꿈이뭉게구름처럼피어오릅니다.

오늘은왠지그감나무아래가몹시
그립습니다.

감꽃이먹고싶습니다.

찬서리내리도록서너개
까치밥으로남아달랑이는고운빛깔의감이

다시금보고파집니다.

삐비꽃 필 무렵

<삐비꽃필무렵>

초봄에허옇게빛바랜논밭둑태우기가시작됩니다.
농작물을해치는병충이풀속에숨어있지않을까걱정이되어

불을놓습니다.

여기저기불꽃이타오르며나는연기가온동네를감싸면
아이들은괜시리신이나서연기를헤치며

동네를몇바퀴씩돌곤합니다.

봄은무르익어까맣게변해버린논밭둑에도

파릇파릇새싹들이서
로키재기를하며하루가다르게자라납니다.

아이들은길기만한
봄의한낮이지루하기만합니다.

구슬치기도하고딱지도따먹어보지만

어딘지모르게허전하기만합니다.

그때한아이가"야~우리삐비뽑으러가자!"하고

소리치면금방눈이둥그레지며놀이
대장격인행준이의주위를빙둘러섭니다.

"출발~!!"하고손을올렸다내린시늉을하자

일제이줄달음으로신나게달려갑니다.

오늘은강둑에서삐비를뽑기로했습니다.
누가더많이뽑을새라옆도쳐다보지않고열심히뽑습니다.

코훌쩍이는소리와발자국소리만간간이들려올뿐조용합니다.

곁의연희의주머니를살짝훔쳐보니

볼록튀어나와있습니다.

다른아이들도지금쯤이면주머니가많이차올랐을것입니다.

나도벌써주머니하나를다채우고

반대주머니에두어번손이들락거렸으니까요.

허리를펴고하늘을올려다보니

제트비행기가하얗게줄을그리며서쪽으로날아가고있습니다.

삐비하나를까서입에넣었습니다.
달작지근하고부드러운게입에착달라붙습니다.

한줌을까먹었더니시장끼를느끼던뱃속이차오는것같습니다.

까치고무신도앞레이스에감물이든살색원피스에도

까만재가묻어새까맣습니다.

삐비꽃을먹던입술언저리도까맣습니다.

서로쳐다보며
한참을깔깔웃습니다.자기얼굴이그런줄은모르고앞에있는
친구얼굴만쳐다보며웃는것입니다.

아이들은발맞추어노래를부르며동네를향해줄서기를합니다.

따따따따따따주먹손으로따따따따따따나팔붑니다
우리들은어린음악대동네안에제일가지요

아저씨의 분꽃

지하주차장을나와맨먼저마주하는사람이있다.건물주차관리아저씨.참친절하시다.늘활짝웃는아저씨와인사를주고받다보면기분이절로즐거워지곤했다.

해그림자길게누운여름오후,지하주차장을나오던나는차를멈추지않을수없었다.담밑에진분홍분꽃이초롱불보다더밝게내눈을사로잡고있었다.비온뒤돋아나는새풀잎처럼잎과꽃의대비가선명해길가는모든이들에게들키고야마는꽃.신부의머리위에얹혀진족두리에서움직일때마다신부의마음처럼가늘게떨리던장식같은꽃.분꽃을보면유년의사촌오빠혼례식에서보았던신부가생각난다.

참오랜날동안피어있었다.한낮이면새초롬이꽃술을감추고해질녘이면활짝속내를드러내는것이요염하기까지했다.

분꽃을보며절로즐거워진마음에심은사람을찾았더니주차관리를하는아저씨라했다.늘미소를잃지않던그분의촉촉한감성이전해지는듯하다.온통시멘트벽뿐인건물담밑약간의흙에어쩜고운분꽃을심을생각을했을까.언젠가차에키를두고문을잠가난감해할때,당신의일인양달려와친절을베풀어주기도했던그아저씨는분꽃이지기도전에훌쩍떠났다.내게스마일아저씨로가슴에새겨진마음고운그분은내년엔어느도시한모퉁이에다달빛보다더환한분꽃을심어오가는이들의마음을설레이게할른지…

아저씨가가고이번엔피부가검고어두운표정의아저씨가오셨다.의례하던대로차창을열고"수고하세요.""수고많으시네요."하며인사를건네보지만받지도않을뿐더러그냥무표정한얼굴이라내쪽에서무안했다.사람이다같을순없으니어쩌랴.이왕늘하던인사안받으시면어때라는생각을하며빠짐없이인사를드렸다.
한달쯤지났을까.아저씨의얼굴이조금씩밝아짐을느낄수있었다.

그동안분꽃은하나,둘지고열매처럼까맣게익어달려있는분꽃씨를받아내년엔아저씨대신내가심어보리란마음으로몇개의씨앗을거두고이,삼일간격으로가보았다.꽤많이익었을열매가하나도보이지않았다.누가나처럼내년에심으려고다받아갔나하며서성이는데아저씨가오셨다.씽긋웃으시며손을가리키는곳엔잘여문분꽃씨앗이한움큼놓여있었다.무엇보다아저씨의웃는모습을처음으로보게된것이다.

씨앗을수집하고있는나를위한배려와어둡던얼굴안으로훈훈한마음이있음을알게된것이내게큰기쁨이되었다.이젠미소로인사를받는아저씨를만날시간이기다려진다.

닫힌마음은부드러움만이열수있다는평범한진리를깨닫게된것은떠난아저씨로부터받았던아름다운미소가내안에서열매맺은것같기도하다.이제새아저씨가받아주신이많은분꽃씨를어디다심을까.나는벌써부터꽃부자가되어버린것만같다.아마내가심은분꽃씨를보는이들마다나와같은소망과기쁨도함께거둘것이다.저만치서아저씨의환한미소와분꽃이웃고있는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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