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인문학관, 서울미술관 기행

아직남은잎새들의몸짓이고운날,평창동영인문학관을방문했다.이어령전문화부장관의자택겸부인강인숙여사가관장하는문학관에선"여류문인전"이열리고있었다.올해일흔임에도고운자태에온화한목소리로이번전시회취지에관하여,나혜석,모윤숙,노천명시인의삶에대하여간략한말씀도곁들여주셨다.자료는자손들에게기증받았다고한다.작고여류문인들을기리는뜻깊은전시회라흐뭇하였다.선배문인들의체취가담긴생전의육필원고와신문기사,사진,개인소지품,문방사우를차례로만났다.개화기의신여성인나혜석에서박경리까지였으며,생존하신분은김남조시인뿐이었다.생전에쓰던물건들이사진곁에다소곳이놓여고인의성품을말해주고있었다.

개화기신여성들가운데서양화가이자작가,언론인이었던나혜석의당찬결혼조건이재미있다.첫째,일생동안바람을피지않을것,둘째,그림을그리게할것,셋째,전실자식을키우지않는것이었다한다.그런그녀도두번의이혼으로평탄하지못한삶을살았고길위에서최후를맞고말았지만.그시절일본에유학중인인텔리남성들거의가가정이있었고그런그들과엮인신여성들의삶이자연히불행할수밖에없었던것이다.나혜석은뛰어난미모에여성의사회참여와권리등을주장하는여권운동의선구자였고다방면의재주를갖춘여성이었다.그녀와친구인김일엽은수덕사비구니로들어갔기에일찍요절하지않았던것같다고전해지기도한다.여류외교관으로서우리나라UN가입과단독정부수립에활약을했던모윤숙은일제를고무,찬양한글을써서노천명과친일파라는불명예를지고있다.그당시엔언론기관에근무하거나기관을운영하고있는사람거의가친일에서자유롭지못했다고하니암울했던역사의그림자에밟혀고통받았을그녀들의아픔을무조건단죄할수만도없는노릇이다.세월의간극이좁혀지며한세월을불꽃처럼살다간문인들의숨결이생생하게느껴졌다.

점심식사를위해오후의햇살이고즈넉하게내려앉은유기농쌈밥집으로갔다.다람쥐두마리는연신삶을돌리고,엎드린아름드리항아리들이고향의장독대를연상시키는음식점은정갈하여귀한손님을모시고싶은곳이었다.문앞에늦은다알리아와국화가이우는계절이아쉬운듯붉은미소로우리일행을맞아주었다.맛깔스런밑반찬,구수한숭늉까지만찬을즐기고일어섰다.

근처’이중섭’전이열리고있는서울미술관으로향했다.’소’의화가이중섭작품전에대한기대가커가슴이두근거리기까지했다.서울미술관개관의첫전시회인데,이중섭과동시대에활동하던화가들의작품도선보이고있었다.이번전시회의하이라이트인’소’는단한작품이었다.전체적으론생동감이넘치는데의외로눈빛이매우슬퍼보인황소였다.가족과떨어져살게된이중섭의외로운투쟁을잘보여주는대표작가운데하나였다.이중섭은피란시절가족과떨어져다시는만나지못하고생을마감했다.큐레이터에의하면그눈빛때문에지금의미술관관장이옥션에서경매를받게되었다고한다.일본에있는아내에게보낸그림편지가애틋하다.해,달,별을그려밤이나낮이나가족을그리는마음을전하고네사람의가족이얼굴을마주하고있는모습,가족을그리고있는자신의모습과,일본어편지글이다.군동화와담배은박지에그린은지화도인상적이었다.아이들과물고기,게등의모든사물이사람의신체와접촉하고있는모습에선그리운가족들과스킨십을원하는간절한마음이이입된듯하여안타까웠다.이중섭의자화상이지워지지않는다.손을피가나도록문지르는이상한행동때문에주위에서정신이온전치못한사람이라고하자,자신이정상적인사람이라는것을보여주기위해거울을보고그려조카에게주었다고한다.그때가30대였다고하나사진에서는50대와같았다.건강이안좋은상태였다니그럴만도하다.3층에선근대작가천경자전도열리고있었다.그동안닫아두었던미술관뒤뜰로연결된대원군의별장’석파정’도둘러보았다.수량이수백년된소나무와위엄이서린합각지붕의기와집,산책로인숲길에만산홍엽이마지막정열을불태우고있었다.

소설에자주등장하는지명인자화문밖평창동은큰고택이많아긴담장을타고내린붉은담쟁이넝쿨이인상적이었다.노란은행잎이나비처럼날리는조락의계절,분주한일상을잠시내려놓고내안으로그윽해지는하루를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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