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대추나무

유년시절고향마을은영산강이들락날락거리던남녘의바닷가입니다.달작지근한삐비를뽑아먹고진달래,아카시아를따먹기도하던진진봄날,엄마는밥에엿기름을넣어발효시킨단술을만들어주기도하셨습니다.그날은단술이아닌술밑을먹으며마루에앉아밭일을가신엄마를기다렸습니다.책을읽다가노래도부르다가정게에가사각나무틀을딪고올라가福자가그려진사발을꺼내는순간,살강아래유난히윤기가반질반질한항아리가눈에띄었습니다.뚜껑을열어보니뽀얀국물에밥알갱이가둥둥떠있었습니다.사발로조금떠서마시니맛이제법괜찮았습니다.

술밑은밀쳐두고꼬마는정게에들어가일을벌입니다.사카리를찾아술사발에넣었더니달콤한게어찌나맛있던지요.엄마는왜이렇게맛있는것을주지않고틉틉한술밑을주고가셨을까.갸우뚱갸우뚱하며마루끝에앉아홀짝홀짝마시다가대추나무에는왜올라가고싶어졌는지요.이제막황연두꽃이송올송올피기시작한대추나무가저를불렀을까요?토담을딛고올라가대추나무가지에발을딪는순간,정게옆에달아낸선반짚더미에서암탉이알을낳았다는신호를우렁차게보내는동시에한발을허공에놓아버렸습니다.그대로흙바닥으로곤두박질을쳐정신을잃고말았습니다.

하늘이노랗습니다.머리가어질어질속이미식거리고토할것만같습니다.이렇게죽는구나.잠시,아주잠시스처간생각밖에는기억이없습니다.

그시절우리동네는자동차를가진사람이없었습니다.소나말이끄는달구지나손수레정도뿐이었습니다.엄마와오빠는손수레에나를태우고시오릿길약국을향해달렸습니다.울퉁불퉁한시골길을달리느라얼마나힘들었을까요?오빠는오직동생을살려야한다는일념으로온몸이푹젖도록땀을흘리며손수레를끌고엄마는뒤에서밀었을것입니다.

"가시내가먹으라는술밑은안묵고술은왜묵었으까이.대추나무는뭐할라고올라가고.참말로지앙스럽기도해라."

그때사어렴풋이들려오는엄마의목소리에귀가열립니다.약국앞에다와서야깨어난것입니다.농주한잔에한바터면목숨을잃을뻔했습니다.그사건이있고난후부터막걸리를보면고향처럼엄마품처럼푸근하게다가옵니다.막걸리와고향집대추나무는내의식의한부분을차지하고앉아시시때때로그리운시절의향수를불러내곤합니다.고향도사람도달라졌지만이즈막이면내기억속대추나무는황연두꽃을싱그럽게피워냅니다.대문을밀치고들어서면토담곁에선유년의대추나무,후둑후두둑장대에맞아떨어지는대추소리,오늘은그고향집이무척이나그립습니다.

추억마시기

최연숙

찌그러진양은주전자주둥이에꽂힌

젓가락두개가때랑거릴때마다

막걸리한모금마신죄뿐이었다

논두렁이벌떡일어나뺨을후려쳤다

之자를그리며집에올때까지는좋았다

엄마가끓여준술찌게미를먹다가목이메여

살강아래빤들거리는항아리뚜껑을열었다

풀어진밥풀이동동떠있는

희멀건국물이아구까지차있었다

까치발을딛고살강에서

福자가그려진사발을꺼내홀짝홀짝맛보았다

황연두빛대추꽃이그녀를불렀을까마는

토담위이엉머리를부여잡고

대추나무에한발을막올려놀참

도구통을밟고뛰어오른암탉이

정게처마위짚더미에다

알을낳았다는신호를우렁차게보내왔다

허공에다그만한발을디뎌버렸다

울퉁거리는흙길위에서

오빠의손수레는마구트위스트를추었을것이다

시오릿길을달려도포리약국앞에서

"가시내가지앙스럽기도해라"

엄마의細雨같은한마디에

흐릿한세상이차즘차즘열렸다

그녀가마신것은고향이었다思親이었

추억을송두리째마셔버린것이다.

『문예춘추』발표

아이스케키

아이스케에키~!아이스케에키~!

장마가지나고불볕더위가시작되면토담위

대추나무에선매미가목청을높입니다.

이무렵이면아이스께키를파는아저씨가자전거페달을

힘껏밟으며아이들을부르는소리가들려옵니다.

얼룩덜룩감물든옷에검정고무신을신은개구쟁이들이

순식간에모여듭니다.창현,동수,미숙,행준,순애는아저씨

주위를빙둘러서서입맛을쩍쩍다십니다.

고무신떨어진것,놋수저부러진것,참빗으로머리빗으실

때마다빗에딸려나온엄마머리칼뭉쳐놓은것까지엿으로

다바꿔먹은나도침을꿀꺽삼키며서있습니다.

그러다아저씨가옆동네로가려고자전거에오르면

엄마를조르기시작합니다.엄마가주신이십원을가지고

한달음에뛰어가니아저씨는벌써점님이네집앞둠벙가에

까지갔습니다.

아이스케끼가들어있는양철통은빨간페인트로쓴

아이스케키라는글자가흘러내려괴기스러움마저

느끼게합니다.숨을헐떡이며이십원을내밀자아저씨는

기다렸다는듯이통을엽니다.통안에서하얀김이모락모락

나옵니다.하나,둘,세며손에쥐어주더니재빨리통을

닫아버립니다.하나더줄까기대했다가

실망한마음입니다.

아이스케끼를사먹지못한아이들은부러운눈으로

나를쳐다봅니다.한개를유난히눈이큰내짝창현이에게

줍니다.창현이는내가필통을집에두고간날몽당연필

한자루를가지라고준적이있습니다.아이스께키는금방

녹아손가락사이로흘러내립니다.

집앞사립문앞에도착할즈음이면빈나무막대만달랑

손에남습니다.

“엄마,날이겁나게덥네요”
“아이스께키는사묵었냐”
“겨우두개여요.하나는창현이줬구요.”
툇마루에서고구마순을다듬던엄마는물한바가지를

가지고오셔서펌프에붓고손잡이를올렸다내렸다

하십니다.
장난기가발동한나는
“나도해보고싶은디요.”
손잡이는종일햇볕에달궈져뜨끈뜨끈합니다.
열심히힘을다해올렸다내렸다해보지만소리만나고

물은나오지않습니다.
“푸쉬푸쉬!”
엄마는웃으시며물을두바가지더넣고손잡이를몇번

움직이시니시원한물이콸콸쏟아집니다.
“와,시원하다아”
대야에물을붓고얼굴이며팔,다리를물속에넣었다

꺼냈다합니다.
“윗도리벗어라.”
“물이찬디요.”
엄마는엎드려있는내등에손을넓게펴신후그위에

물을부으며닦아주십니다.
“차,차요.엄마찬찬히요!”
내엄살에엄마는즐거우신지자꾸만등을문지르십니다.
“엄마도윗도리벗으세요.”
“그러마.”
엄마등에흉내내기를해보지만작은내손은

엄마의등을가리기에는역부족입니다.차거운물을

연신갇다부어도엄마는별반놀라시지도않고

시원하다는말씀만하십니다.

엄마는벗어놓았던베적삼을입으시고흰수건을

머리에쓰신후나무광에서마른보릿대를꺼내정게로

들어가십니다.정게아궁이에서보릿대타는소리

타닥타닥들려오고저녁밥냄새구수하게코끝을

스칩니다.


굴뚝을빠져나온연기는뒤란탱자울을넘어

대나무숲으로마실나가고나는마당에깔아논동그란

멍석위에누워초저녁별을헤이다달콤한잠속으로

빠져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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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무렵

논가장자리벼부터낱알이황금색으로

투명하게익어갈때면아침저녁으로쌀쌀한

바람이분다.아침일찍아랫배미논에가시는

아부지뒤를따라가노라면풀섶에이슬방울이

발꿈치를스칠때마다찬기운에몸이

움찔거려진다.

아부지의반쯤걷어올린바지아래맨살이

새파랗다.삽으로물고를손질하시고논고랑

맑은물에검정고무신을서너번헹궈신으면

나도까치고무신을아부지만큼헹구어신는다.

읍네오일장에서사다주신까치고무신은

아껴신어야한다고말씀하셨다.

논가운데길을아부지의빠른걸음을따라가려

반쯤은뛰어간다.“찌걱찌걱”아부지의신발에서

재미있는소리가나면나도발을이리저리

움직여보며찌걱소리를흉내내며따라간다.

쑥부쟁이꽃꺾어귀에꽂고메뚜기,방아깨비도

잡아강아지풀에꿰며콧노래부르며아부지뒤를

따라간다.

추석을며칠앞두고논한쪽귀퉁이의벼를벤다.

그즈음이되면논마다아이들머리에이발기계가

한번지난자국처럼듬성듬성비어버린모습이

참재미있다.베어낸벼를마당으로가져와

쇠가락이하늘을향해뽀쪽뾰쪽한수동탈곡기에

한줌씩끼워낱알을털어낸다

털어낸낱알은검은무쇠솥에김이한번

오를때까지불을땐다.비땅(부지깽이의고향

사투리)으로재를이리저리뒤적이며아침에

잡아강아지풀에꿰여온방아깨비를아궁이에

살짝던져넣으면방아깨비는금방날개를쫘악

펴면서빨갛게익어간다.알을품은채잘익은

방아깨비는맛도색다르다.

벼가다쪄지면마당에멍석을깔고말린다.

솥에서막퍼낸벼에서는구수한냄새가나며

김이모락모락오른다.삼사일말린후에

절구통에찧게되는데쪄서말린벼는껍질이

잘벗겨지지않는다.껍질을벗은쌀이름을

올베쌀이라부른다.

처음익은벼란뜻이다.그쌀로한가위날

밥을지어놋주발에가득담아차례를지낸다.

군것질이흔치않았던그때의우리들은

간식거리로종그래미나주머니에담아가지고

다니며먹는데쫀득하고고소해한번먹게되면

좀체로그만두기가어려우리만치맛이좋다.

시장가는길에가끔그쌀을사서먹어보지만

내놀던고향이달라진것처럼올베쌀맛도

내어릴적맛이아니었다.

추석전날,엄마는읍네오일장에서사다놓은

차례지낼제수를꺼내손질하기바쁘시다.나는

송편만들기를고대하며분주한엄마뒤를따라

다닌다.부뚜막에앉아있으면뒷산에서따온

솔잎향기가시루에서솔솔풍겨나온다.아궁이에

불을조금씩때면서송편을빚으시는엄마를

따라어설프게빚어보던송편,엄마가빚으시던

예쁜모양의송편은지금껏기억속에또렷이남아,

나도비슷한모양의송편을빚으며엄마를생각한다.

둥근보름달을보면외할머니얼굴이보인다고

하시던엄마,올추석엔나도보름달속에서

엄마의얼굴을찾을수있을까요?

무더위

<무더위>

뒷동산나뭇가지에서매미가요란스럽게울어댈때면태양은온
동네를뜨겁게달구기시작합니다.앞산,뒷산과마을초입우리
밭에는온통초록물이들어손을내밀면금방이라도초록빛으로
물이들것만같습니다.호미를들고나서는어머니뒤를따라밭

에갑니다.

앙증맞게귀여운초록주머니같은고추가줄줄이달려제각기

뽐내고있습니다.콩밭의콩도여물어가고서숙(조)도위잎사

이로열매가살며시고개를들기시작합니다.고구마도집을자

꾸만넓혀가구요.서너두렁반듯하게골라놓은흙은생명의

잉태를꿈꾸는씨앗을품을날만기다립니다.김장배추,무우

씨를기다리는것입니다.

콩밭을매시는어머니의베적삼이땀에배어축축하게젖어옵니다.
덥습니다.이럴땐실바람이라도살짝불어오면반가울텐데요.어

머니는목에두르신수건으로연신땀을닦습니다.고구마밭에앉

은나도가슴에땀이주르르흘러내림을느낌으로알수있습니다.

고구마두렁은기차보다더깁니다.끝이보이지않으니까요.이제

어머니를따라집으로향합니다.농사일이란하루에다끝낼수가

없습니다.내일도모레도계속해야합니다.

마을에는우물이두개있습니다.물은옛부터신성하게여겨왔나
봅니다.어쩔수없이장례행렬이우물앞을지나게될때면커다

란뚜껑으로우물을덮습니다.그냥두면물이뒤집힌다나요.아무

리생각해도알수없는불가사의한일일뿐입니다.나는밭에들

고갔던주전자에두레박으로물을퍼서담습니다.차가운물이담

긴주전자표면에물방울이송송맺혀떨어집니다.종아리를살짝
살짝스칠때면어찌나시원하던지요.

사립문을들어서니토방아래바둑이도더위에지쳤나봅니다.주

인을보고도어슬렁어슬렁잠시꼬리를치다이내제자리로가눕

고맙니다.닭들도탱자나무아래서꾸벅꾸벅졸고돼지도낮잠을

쿨쿨잡니다.요술나라의공주가요술을부려놓은듯모든게정지

된시간입니다.

어머니는상추를씻으시고나는봉숭아,백일홍,채송아,맨드라미

가예쁘게커가는화단옆장독대에서된장을퍼옵니다.어머니께

듣던대로노란된장을한숫갈퍼낸후꾹꾹눌러덮습니다.알맞

게익은열무김치와상추,여린고추는여름내내가즐겨먹던반찬

입니다.보리밥에물을말아고추를된장에콕찍어먹으면어찌그

리시원하던지요.졸음이쏟아져옵니다.마루에누우니뒤란대숲

에서댓잎이서걱이는소리가들립니다.곧,바람.바람이불어올

것입니다.그바람에잠이나청해야할까봅니다.

장마

<장마>

장마가시작되면

마을사람들의손길이분주해집니다.
둑하나사이로바다와들판이있어서바닷물이

범람이라도하면어쩌나하는조바심에

마을엔일순긴장이감돕니다.
바닷물이넘치면들판에한해벼농사를

망치게되기때문입니다.

마을어른들께선비닐우의를입고

삽을어깨에둘러메시고논에물고를터놓으러

가십니다.물고를터놓는것도비가많이오면

아무소용이없어지고맙니다.

장대비가내린후에는누구네논인지전혀구별을

할수없이윗들,아래들이온통물바다가되어

버리기때문입니다.

아이들은마을어른들의이런염려에도

아랑곳하지않고붕어잡는재미에마냥즐겁기만

합니다.가뭄에농업용수로사용하기위해물을

가둬놓은방죽에물이넘쳐흐릅니다.
물이내려오는곳은폭이넓고비스듬히시멘트로

만들어놓은곳입니다.

아이들은바지와치마를걷어올리고

나란히서서물살에붕어가넘어오기만기다립니다.

붕어가은빛비늘을반짝이며팔딱팔딱재주를넘습니다.

어떤녀석은뛰지않고약삭빠르게물살에숨어가만히

내려오지만이내붙잡히고맙니다.

가지고간양철바께쓰가금방차오릅니다.

나는바께쓰를들고오빠뒤만졸졸따라다닙니다.
"잡았다"하는소리가들리면재빨리바께쓰를갇다

놓아야하니까요.잠시들꽃에한눈이라도파노라치면

오빠의목소리는더욱커집니다.

"빨리바께쓰가지고와~"하면서말입니다.

동네모퉁이에있는방죽에서집까지는

한참을와야합니다.붕어가가득담긴바께쓰를들고

오빠의휘파람소리를들으며집으로향하는발걸음이

가볍기만합니다.

또하나의즐거움은

다음날어머니의맛있는붕어찜을먹을수있다는

것입니다.매운고추를따서절구통(고향에선도구통이라
함)에갈아지난해말려두었던고구마줄기에양념을
듬뿍넣어보글보글끓인붕어찜의맛은일품입니다.

유년의붕어잡이는그후로지금까지이어집니다.

비록꿈속에서지만말입니다.어쩜..붕어를손안에

꼬옥쥐고있는감각까지느껴지는지요.

꿈은자라지않나봅니다.

오늘처럼짜락비가주룩주룩내리는날에는

마음은벌써고향방죽가를서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