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볼라벤’

태풍’볼라벤’이북상중이다.어제저녁까진태풍전야로고요했다.잠을설치고새벽에눈을떴는데까치두마리가그악스럽게지저긴다.이런까치소린처음이다."까치야,은비가시끄럽대,응?"알아들을리만무지만한마디했다.그런데,풀벌레들까지오전10시가되도록소리를멈추지않고있다.우리집안방에선우리정원보다앞집정원이더가까운데풀벌레가평소와는다르게자신의존재를드러내는일은처음이다.

지진이나해일이시작되면쥐나개미등이높은지역으로이동하거나이상한행동을한다고한다.새벽부터미물들의소리가심상치않다.이상기류를감지한것일까.태풍이내가사는지역에가까워지자하늘엔거대한먹구름이빠르게움직이며비바람이세차게불고있다.나뭇잎들이공중에서군무를벌이는데새떼인줄알았다.볼라벤은한반도를덮는2000년이후가장큰태풍이라고한다.태풍의영향권에서벗어난제주와남녘에선가로수가넘어지고정전과주택침수,자동차파손등피해사항이속출하고있다.불보다폭우를동반한바람이더무섭다.한순간에모든것을폐허로만들어버리기때문이다.

이번태풍은전봇대를쓰러뜨릴만한위력의바람을동반하고있어외출을삼가고충격을흡수하여깨지지않도록유리창에는젖은신문지를붙여놓으라고한다.또한정전을대비해양초와하루쯤먹을음식을준비해두는것도좋겠다.동네주민센타에서는방송을통해계속주의를당부하고있다.일이손에안잡혀재난특집방송에만귀를기울이고있다.인간은자연재해앞에서속수무책이다.어서지나가기만을기다리며피해가크지않도록간절히기도한다.

고정 관념

"찹쌀떡!찹쌀떡!"한여름밤들리는소리가구수하면서도묘한여운을던진다.장자외물편에"自其異者視之肝膽超越也自其同者視之萬物皆一也"라는글이있다.다르다는점으로보면간과쓸개의사이는아득히멀지만,같다는점으로보면만물은다하나라는사자성어肝膽楚越의유래이기도하다.

계절에대한고정된시각으로들으면여름저녁찹쌀떡장수의외침은전혀어울리지않는다.추운겨울이라야당연하게받아드려지고여름엔도통어울리지않다는사고방식의저층엔고정관념이깔려있었던것이다.반복해서듣자니,함박눈이펑펑내리는어느겨울저녁을연상시키고있어잠시더위를잊게해준다.그것참,자신도모르게고정관념속에함몰되어유동성을인정치않으려하다니,겨울과여름의간극이멀게느껴져도사계안에있음이분명하다.그러니여름과겨울,어느계절이든떡장수의외침은당위성이있는것이다.

무엇에대해이것이다라고뇌에입력을해버리면바뀌지않는것이고정관념이다.이것은편견만큼이나위험하다.자신의신념이옳다고하는사람은남의의견에귀를기울이지않는독불장군이될수도있기때문이다.여름저녁찹쌀떡장수의소리가고정관념의틀속에서탈피하라는의미로들려왔다.

소나기

저녁산책을하다가소나기를만났다.뿌연서녘하늘에서빗방울이떨어지기시작하더니바로장대비로변해축구장옆정자로피했다.30분이지나도그칠기미를보이지않는다.비그치길기다리다가엉뚱한생각을하였다.장소와등장인물은달라도황순원의소나기가연상되는것이었다.은비는처음당한일에적응이안되는지젖은몸을털며반짝이는눈망울로나를보더니안아달라고하였다.은비의발이푹젖어안아줄수가없었다."은비야,조그만기다려."

비는여전히내리고축구장에선젊은이들이비를맞으며공을굴리고있다.경기장을밝히고선스포트라이트를바라보니무수히쏟아지는빗줄기가싸락눈처럼보인다.하늘에서내리는것이아니라열다섯개의등이쏟아내고있는듯하다.사위가어두워그렇게보이는것이다.집엔어머님만계시니우산을가져다달라할사람도없고난감했다.조금그치는듯하여걷다보니다시쏟아져이번에는여성화장실로대피했다.나를이용객으로인식한자동화장실에선전등을켜주고클래식음악을들려주었다.공원화장실이가정집처럼깨끗하고쾌적하다.

거기서또10분을기다리다가아차,기도해야지싶었다."예수님,저와은비가집에가야합니다.20분정도만비를좀그치게해주세요.네?"2-3분더쏟아지더니거짓말처럼한줄기바람이불어오며비가그쳤다.잰걸음으로집에올때까지비는다시내리지않았다.매일산책을다녀도오늘처럼많은양의소나기를만난건처음이다.비를맞으면서도기분이나쁘지않은건젊은날의낭만이슬그머니고개를든까닭이었을까?비가오면오는대로,바람이불면부는대로,눈이오면오는대로즐거웠던시절이아련하게떠오르는저녁,윤형주의’우리들의이야기’를흥얼거려본다.

우리들의이야기/윤형주

머잖아 등을 보이게 될 무더위

막바지더위가이어지고있다.올림픽열기만큼이나더위가맹위를떨쳤다.그야말로찜질방이따로없어잠시라도밖에다녀오면옷이땀에젖곤한다.어제가가을이시작된다는입추였다.기세등등한더위가쫓겨갈날도머지않았다.한줄금소나기가내린후온도가2도쯤내려가고바람이살랑불어시원함을느끼는산책길이다.개울가풀에서조금씩짙어지는가을냄새가맡아진다.강아지풀을뽑아은비를간지럽혀도반응이없다.은비는묵묵히걷다가풀밭으로들어가해찰을한다.녀석이해찰을부린횟수에따라시간이조금씩늦어지기도한다.

저녁7시30분개울가온도계가30도를가리키고있다.소금쟁이들군무물위에서어지럽고,청둥오리네가족이늦은새끼를부화하여아기오리들을데리고나와수영연습을시킨다.다른오리새끼들은이미다자랐는데왜늦었을까?애잔한풀벌레소린가을을예감하는듯하여듣기에좋은반면그닥곱지않은막바지매미소리절실하게들린다.잉어한마리뛰어올라퉁소리로점프하며제존재를드러낸다.개울물소리여전히돌돌제길따라흐르고,오늘도자전거와달리기,걷기운동을하는사람들이지난다.어른셋이바지를걷어올린채개울에서탁족을즐기고있다.물에서사는오리들이부러울때가요즈음이아닌가싶다.

나와은비의그림자가생겨달이떴는가했더니언덕위에가지등이하나둘켜지고있다.매일저녁묵묵히제할일을다하는가로등처럼우리도자신의자릴굳게지키며주어진삶을성실하게감당해야겠다.은혜가주일학교에빠르게적응하고있다.일주일동안얼마나더웠는지온몸에땀띠가솟아제엄마가병원까지데리고갔다.주일학교를마치고시원한교회에서성가대연습까지데리고있다가집으로왔다.이제기도를배웠는지두손을모으고기도하는폼이귀엽고사랑스럽다.새싹처럼믿음이예쁘게자라는모습에보람을느낀다.

우리친구들이물감을손에묻혀천국의꽃을표현

나는야은혜공주!~

주일학교에빠르게적응하는은혜

풍성한어휘력으로말을잘해나를놀라게하는사랑스런은혜

저녁산책이 기다려진다

저녁식사는별다른일이없는한6시정도에마친다.7시가지나면산보에나선다.은비와보폭을맞춰말없이걷다보니오래전읽었던파트리스쥐스킨트의’좀머씨이야기’가떠오른다.은둔자로살고있는작가자신을그린거라고도하는데간섭받기싫어하는현대인의심리를다룬글이었다.한편으로인간의근원적인고독에대하여성찰케하기도했다.한시간여산책길에주위의동식물,곤충들과교감하며지나노라면어느땐작품구상도자연스레떠오른다.은비는시각보다는후각을주로많이쓴다.친구가영역표시를해둔곳에이르러서는꼭쉬하는포즈를취한다.

개울가에는억새가가을을준비하느라쑥대와함께쑥쑥자란다.크로버는여전히밥풀꽃을매달고,가을에피는개미취류의흰꽃과쑥부쟁이과의보랏빛꽃도피었다.다리아래쯤이르자개울건너버드나무에서찌이찌이산솔새소리곱다.오른쪽살구나무에선제딴에는노래를잘한다는것인지매미의불협화음에귀가따갑다.쉬잇!~하니알아듣는듯조용해진다.해가지자고추잠자리떼가개울물가까이날며날개에물을적시기도하며더위를식힌다.어느새새끼인지어미인지구별할수없을정도로자란청둥오리들은바위에앉아털을정돈하기도하며저녁을맞는다.왜가리도물위를천천히걷는다.한발로서있을때는꼭비오는날도롱이를걸친농부의포즈같다.

30분을걸으면구름화장실이나온다.계단을20개올라가낮은언덕에위치하고있는데깨끗하고비누거품이채워져있는공중화장실이다.그곳에서유턴해서돌아온다.두번째찻길아래를지나다알수없는벌레에게팔을깨물렸다.메뚜기같기도한벌레가팔을스쳤는데약간발갛더니가렵다.그근처에거미한마리가사는지내가올때쯤이면거미줄을쳐두어얼굴이나손목을휘감는다.미물들에게도질서가있다.매미의차례는지나고풀벌레소리뚜루뚜루낮게깔린다.자전거에아내를태우고지나는남자가가을기다림을노래하더니돌아가는길엔강촌에살고싶다는나즉한목소리를흘린다.두사람의첫사랑을회상하며그리워하는지낭만을아는사람이다.산책길에만나지는자연과의호흡이자연에대한외경심을일깨워준다.날마다좋은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