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기 마련이다. 무작정 반항하고 싶고, 기존의 제도들은 모두 부정하고 싶고, 하라는 건 아무 이유 없이 하고 싶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고 싶어지는 그럴 때가 누구에게든 한 번쯤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 시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도 하고, 사춘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지리도 말을 듣지 않는 시기라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좋아하는 준거집단의 제도와 규례는 반드시 따르려 하거니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는다. 그에 관해서라면 맹목적이기까지도 하다.
오래 전 유승준의 입국거부 문제가 다시 불거진 적이 있었다. 가수 성시경이 MBC 황금어장에서 이 문제를 유치하다고 비판한대서 비롯된 것인데 사실 맞는 말이다. 유승준에 대해 국가에서 내린 처분은 유치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 사람이 되든 미국 사람이 되든 국적 선택이야 개인이 판단해서 선택할 문제인데 입국거부라는 초강수의 조치를 취하다니 분명 과잉대응이 아닐 수 없다.
군입대를 앞두고 한국의 국적을 포기한 채 미국의 국적을 선택한 유승준(미국명 스티브 유)은 그렇게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 이후 그는 집안 경조사로 잠시나마의 체류는 허용되었으나 그는 어디까지나 무한정 머무를 수 없는 외국인의 신분. 당국에서 장기 체류를 허락하지 않는 이상, 그는 이 땅에서는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중국에서 한류의 바람을 타고 가수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다 건너 이야기일 뿐 이 땅에서 그가 설 자리는 아무 데도 없다.
성추행범도 버젓이 입국해서 당당하게 외국어 교사행세를 할 수 있는 나라에서 유승준에게만 너무 가혹하지 않냐고 반문하는 말에도 일리는 있다. 중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남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 것도 아님에도 그에게 너무 큰 심적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냐는 말에도 일리는 있다. 이유야 어쨌든 이 모든 것들이 그가 초래한 결과라는 말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유승준이라는 개인만 생각하지 말고 그를 따르고 동경하던 수많은 이 땅의 청소년들을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에게 입국금지라는 극단의 조치가 취해졌을 때 나는 오히려 국가가 모처럼 잘했다고 칭찬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조치에 속이 시원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유승준이라는 개인에게 원한이 있거나 그를 싫어하는 안티팬이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가위나 열정, 비전과 같은 그의 노래를 좋아하고 그의 연예활동에 애정이 어린 시선으로 보아왔던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 이유는 그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적 배웠던 신앙은 ‘세상에 미련을 갖지 말아라’였다. 유행가를 흥얼거리는 것도 금기사항 중의 하나였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금욕이 필요하다고 배웠던 것이다. 선택받은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유승준은 달랐다. 그는 크리스천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었다. 즉, 세상에서 벗어나 세상과 구별되는 신자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세상과 함께하면서도 신앙을 지키는 신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독교 신자도 멀쩡한 지구인이건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라니 처음부터 무리한 요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왠지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하는 부담이 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니 종교인으로서의 처신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중에 유승준은 이 시대에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오래전 누군가는 가스펠 앨범을 발표하면서 각종 인기순위에 가스펠을 올리기 위해 성도들이 가요 프로그램에 자신의 가스펠을 신청하는 엽서를 보내자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에 비해 유승준은 무리한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도 청소년 신자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지를 깨닫도록 만들어 주었다. 환자라고 놀림받으며 세상과 분리되어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와 반대로 오히려 적극적으로 세상으로 뛰어들 것인가. 유승준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유승준이 하루아침에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낙인 찍힌 이후 아이들이 느껴야 했던 상실감과 배신감은 과히 아노미에 버금가는 가치관의 혼란이었다. 나 자신조차도 그의 무책임한 행보에 분노를 느꼈으니 그를 따르던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굳이 종교적인 문제를 떠나서도 마찬가지다. 그의 비겁한 선택이 용인된다면 아이들은 쉬운 선택만을 찾으려 할 것이고, 말과 행동이 다른 무책임한 선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그러한 아이들을 탓할 수도 없게 된다. 정의가 지켜지지 않고 오히려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바보가 될 수도 있는 상황만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그를 유해 인물로 규정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과의 접촉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 말이다. 유승준이라는 개인에게는 안쓰럽고 불행한 일이지만 이 땅에는 아직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할 가치관이 있다. 그리고 그 가치관은 한국사람이 지켜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 살고있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