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최고급 호텔이지만 내부는 시골 여관방 같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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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여유가 생기면 딴생각을 품기 마련이다.

먹고 살기 바쁠 때는 자신을 돌아볼 생각도 못 하다가 한숨 돌리고 나면 그제서야 행색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제는 먹고 살 만하니 옷도 사고, 신발도 사고, 가방도 사자고 한다.

더 여유가 있으면 차도 바꾸고 그런 다음에도 집도 바꾸고 싶어진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 하니 문제일 뿐 자기가 가진 것으로 자기가 누린다고 하면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그런 생각이었던 듯하다.

그가 보기에 서울은 해외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할 때 지극히 초라하다고 여겼나 보다.

이제 한국도 먹고 살 만해졌으니 그에 맞게 서울도 가꿀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물론 오 전 시장의 의도를 아주 좋게 해석해 줄 때만 그렇다.

내 생각에 그는 서울을 창피하게 여겼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용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보이기에만 급급한 건물들이 그를 증명한다 하겠다.

그는 ‘디자인 서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워 세빛둥둥섬을 만들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만들었다.

어마어마한 세금이 투입된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지금도 어마어마한 세금을 들여 운영되고 있다.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다.

문제는 그럴 가치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겉보기에만 그럴듯할 뿐 전혀 실용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야구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동대문 야구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세운 DDP의 경우 그 거대한 건물이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웅장한 외양에 비해서 내부 공간이 비효율적인 탓에 정체성에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겉은 최고급 호텔인데 내부는 시골 여관방인 셈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동대문 야구장을 허물었으며 DDP를 지은 것인가.

전임 시장이 싸지른 거대한 똥 덩어리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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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쌈지길에서 느껴본 똥 씹는 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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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씹은 표정.

무언가 못마땅한 일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표정을 말한다.

똥을 직접 먹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진대 그게 어떤 맛인지 상상이 되는 것은 왜일까.

인사동 쌈지길 꼭대기에는 똥을 테마로 하는 카페가 있다.

이름하야 ‘또옹카페’다.

그렇다고 똥을 직접 내주는 것은 아니다.

내용물이 아니라 그것을 담아주는 용기, 즉 그릇이 변기 모양이다.

음료는 물론이거니와 식사마저 그렇다.

누군가는 고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또 다른 누군가는 고약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그릇만 그런 것도 아니다.

방석도 똥모양이고 바닥에 재래식 변기가 놓여 있기도 하다.

선반은 여러 가지 모양의 요강으로 장식되어 있기까지 하다.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잔해야지~”라던 이병헌 주연의 영화 ‘내부자들’을 통해서 유명해진 모히또 카페라떼(6,000원)를 주문했다.

수세식 변기 모양의 컵에 박하잎이 띄워져서 나온다.

호기심으로 한 모금을 마셔보니 모히또 맛이라기보다는 박하 맛 나는 라떼일 뿐이다.

게다가 달기는 또 왜 그리도 단지.

똥을 씹어서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아니라 너무 달아서 일그러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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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는 북서울 꿈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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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이사올 때만 해도 이곳의 이름은 드림랜드였다.

그해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과 눈썰매를 타던 기억도 아직 생생하다.

그후 놀이공원은 철거되고 도심 속의 공원으로 탈바꿈했다는 소식만 들었다.

집에서 멀다고는 할 수 없어도 교통이 불편해서 찾아가기 쉽지 않았던 곳.

드림랜드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북서울 꿈의 숲’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곳.

깊어가는 가을에 찾아간 ‘북서울 꿈의 숲’은 고즈넉한 정취를 품고 있었다.

산책하기에도, 좋고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좋고, 카페에 들러 차 한 잔 하기에도 좋은 곳.

성북구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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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향한 애뜻한 마음이 숨어있는 홍천 은행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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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떠나 강원도 홍천에 자리 잡은 사내가 있었다.

만성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아내와 함께였다.

오대산 광천수인 삼봉약수가 위에 좋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사내는 아내의 쾌유를 빌면서 은행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심기 시작한 나무는 어느덧 숲을 이루었으나 누구에게도 공개하지는 않았다.

마을 사람들에게도 비밀의 숲으로 불려질 정도였다.

그런 은행나무숲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

1985년에 홍천으로 내려와 자리잡은 후 25년 만이었다.

자연이 선사한 노란 은행잎 물결을 모두와 함께 누리기 위한 결단이었다.

그렇다고 은행나무숲이 사시사철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10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일년에 단 한 달만 공개된다.

이 기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도처에서 몰려오므로 주차장은 꽉 차고, 도로 양쪽으로도 주차된 차들로 가득하다.

개인 사유지이지만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대형 관광버스도 여럿 눈에 띈다.

그렇다고 가볍게 다녀올 곳은 아니다.

서울에서 무려 3시간 반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홍천 은행나무숲에서 노란 은행잎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일주일 정도 남았다.

코스모스 축제가 끝난 구리 한강 시민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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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끝났다.

영원하리라 믿었던 시간은 속절 없이 흘러갔고

화려했던 날들은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음악은 멈췄고 조명도 꺼졌다.

축제의 현장에 남은 건

순간을 불 태우고 남은 기억의 잔해들 뿐…

축제를 기대하고 찾아간 길이건만

일찍 찾지 못한 아쉬움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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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한강 시민공원을 찾았다.

한강변을 가득 메운 코스모스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현장에는 축제의 잔해들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화사한 꽃잎보다

시든 꽃잎이 더 많아

가슴이 시려왔다.

진작 왔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에

속절없이 셔터를 눌러보지만

공허한 가슴은 채워지지 않는다.

남양주 피아노 폭포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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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에는 근사한 이름을 가진 폭포가 있다.

이름하여 피아노 폭포.

폭포의 모습이 왠지 피아노 모양을 하고 있을 것만 같고

아니면 물소리가 피아노 소리와 닮았을 것만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피아노 폭포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리 없으리라.

무려 61.5m에 달하는 폭포의 위용도 근사하다.

한국 폭포 중에서 이보다 큰 규모의 폭포도 많지 않지 싶다.

그러나 아쉬운 일이지만 피아노 폭포는 인공 폭포다.

게다가 피아노 폭포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폭포 때문이 아니라 화장실 때문이라는 점도 적지 않게 충격적이다.

폭포 앞에 자리 잡은 화장실이 피아노 형상인 탓이다.

그중에서도 남자 화장실이 폭포를 감상하기에 제일 명당자리다.

일(?) 보면서 폭포를 감상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

피아노 폭포는 화도 하수처리장에 자리 잡고 있다.

폭포 물 역시 하수 처리된 방류수다.

일종의 혐오 시설이 주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일부러 먼 길을 찾아오라고 추천하기에는 주저되나 오다가는 길에 들러볼 만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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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다시 찾은 안성 오하포도농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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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이었다.

경기도 안성 오하농원.

우연히 들러 너무도 맛있게 포도를 맛보았던 곳.

그곳을 20년 만에 다시 찾았다.

물론 예전의 좋았던 기억 때문이었다.

하지만…

포도농원은 생각보다 작았고

포도 맛은 기억보다 못했다.

추억은 추억대로 간직했어야 했을까.

아니면 내 기억에 보정이 필요한 것일까.

가볍게 포도밭을 걷다

농원에서 여러 종류의 포도를 맛보려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이미 포도 수확이 끝난 터라

농원에는 포도가 남아 있지 않았고

바쁘다며 예전처럼 챙겨주지도 않았다.

먼 길을 일부러 찾아갔건만…

2kg에 2만 원짜리 포도를 2개 주문했다.

5가지 종류라 포도 종합선물세트라 할만하다.

20년 후에 다시 찾는다면

그때는 또 어떤 기억으로 떠올리게 될까.

마음을 비우니 더 잘 보이던 밤송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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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돌아가려 했다.

아무리 찾아도 속 빈 밤송이만 보이던 터라

미련 없이 일어서려 했다.

미련도 후회도 없었다.

1만 원 내고 받아든 양파망에는

이미 주워 담은 밤들로 가득했다.

본전치기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기본은 한 셈이었다.

그러나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찾아다녀도 보이지 않던 녀석들이

마음을 비우고 나니

오히려

눈에 더 잘 들어온 탓이다.

그것도 상하지 않고 제대로 영글진 녀석들이었다.

하나를 주우니 다른 녀석도 눈에 들어왔다.

그마저 주우니 또 다른 녀석이 버티고 있었다.

가야 하는데

이제 그만 일어서야 하는데

자꾸만 그 녀석들이 눈에 밟힌다.

자꾸만 그 녀석들이 발목을 잡는다.

자꾸만 그 녀석들이 발길을 가로막는다.

이런 게 바로 사람의 욕심이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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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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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시인의 시 중에 ‘그 꽃’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시입니다.

‘순간의 꽃’이라는 시집에 담긴 시인데 짧은 시로 제목이 따로 없습니다만 편의상 ‘그 꽃’으로 부르는 것이지요.

시는 위의 세 줄이 전부입니다.

그럼에도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울림은 상당합니다.

이병헌이 주연으로 나왔던 ‘싱글라이더’라는 영화 도입부에도 이 시가 나오죠.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대인들의, 위만 향해 치닫으려 하는 남자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잠깐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쉬움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산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올 수 있지요.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은 내려오면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그러지 못합니다.

시간이든, 기회든 한 번 놓친 것을 다시 돌이킬 수는 없으니까요.

디지틀조선일보에서만 20년을 보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 역시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합니다.

이제 잠시 숨을 고르려 합니다.

내 젊은 날이 숨쉬고 있는 광화문이 무척 그리울 듯합니다.

떠나기 전 광화문에 대한 추억을 연작으로 남기려 했는데 그 역시 이루지 못했네요.

그동안 함께 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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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디에서 목을 축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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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노가리. 이게 상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워낙 ‘노가리 1000원’이라는 글씨만 큼직하게 간판에 박혀있는 탓이다. 이름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아도 1,000원만 있으면 노가리를 안주 삼아 술 한  잔 할 수 있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노가리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1,000원은 강렬한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집 근처에 하나 생겼으면 하던 집이었다. 귀가길 버스 타고 K대 앞을 지날 때마다 K앞에 있는 ‘노가리 1000원’이라는 문구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일부러 내려서 들릴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1,200원의 버스비가 추가로 들어가게 된다. 1,000원짜리 노가리가 아니라 2,200원짜리가 되는 셈이다.

어느날 귀가길 집 근처에서 ‘노가리 1000원’이라는 간판을 만날 수 있었다. 드디어 바라던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평소 노가리를 즐겨 먹지는 않았으나 공짜라면 양잿물이라도 먹는다고 했는데 1,000원이면 거의 공짜와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귀가길에 들러 가볍게 먹기에 딱 좋았다.

노가리 1,000원을 강조했지만 1,000원 한 장으로는 노가리를 주문할 수 없었다. 2개가 기본이었으니 사실상 2,000원짜리였다. 그래도 노가리 두 마리와 함께 맥주 두 잔을 마신다한들 8,000원에 불과했다. 한 잔 더 마셔도 11,000원이면 된다. 다른 술집이라면 안주값보다도 적은 금액이었다.

맥주도 시원했다. 한 여름의 더위를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처럼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주인이 프로야구 LG트윈스 팬인지 LG트윈스와 관련된 장식물들이 많았고 벽 한쪽에는 프로젝트를 이용해서 프로야구가 틀어져 있었다. 혼자서도 야구 보면서 맥주 마시기 좋은 곳이었다.

얼마지 않아 2마리가 기본이었던 노가리는 1마리만도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그에 대한 불평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언젠가는 노가리를 주문했는데 손바닥만한 왕쥐포가 나왔다. 잘 못 나왔다고 하니 그냥 드시란다. 나중에 계산할 때 자신들이 잘못이라며 1천원을 돌려준다. 노가리는 1천원이었지만 쥐포는 2천원이었기에 차액을 돌려준 것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술맛도 좋고 서비스도 좋은데 그다지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도 그런 것이 입지적으로 그리 좋은 자리도 아니었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도 아니었다. 그저 빈 가게가 나왔으니 덮썩 계약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오래도록 이 곳에서 노가리와 함께 술을 마시려면 장사가 잘 되어야 할 텐데 하는 걱정 아닌 걱정도 없지 않았다.

결국 그집은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초여름에 문을 열고선 가을을 앞두고 문을 닫았다.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젊은 사장은 열심히 하는 듯 보였으나 호락하지 않은 현실을 열정과 성실만으로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친구의 부음소식을 접한 듯 안타깝기만 했다. 더불어 이제는 어디에서 목을 축여야 하나 하는 고민도 생겼다.

그보다 먼저 다녔던 집은 봉구비어라는 곳이었다. 3천원짜리 감자튀김과 3천원짜리 맥주로 가볍게 술 한 잔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노가리집을 알게된 후 이집에 발길을 끊었던 것인데 나중에 다시 가보니 이집도 문을 닫고 사라졌다. 순식간에 두 명의 술친구를 잃은 셈이었다.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임대라는 글씨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어제까지 멀쩡하게 장사하던 집이 오늘 가보면 텅 비어있고 대신 임대 안내만 덩그러니 놓여있기도 하다. 그만큼 살기 힘들다는 방증일 게다. 그런 이유로 모두들 딴 생각하지 말고 직장에 붙어 있으라고 한다. 아무리 떠밀어도 딱 붙어 있으라고 한다. 그치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