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주고 마음도 준 그녀의 S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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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고 한다. 급한 볼일이 생겼을 때는 간이라도 떼어줄 것처럼 하다가도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이 말을 남녀 간의 연애 문제에 대입시킨다면 모텔에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들어가기 전에는 하늘에서 별이라도 따다 줄 것처럼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기고는 일을 치르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달라지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성향이 그렇기에 어른들은 여자들의 몸가짐을 강조하곤 한다. 몸을 주면 다 준 것과 다르지 않은 이유에서다. 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말처럼 남자로 하여금 ‘내 여자다’하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 주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여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흘러간다. 갑과 을의 위치가 정반대로 바뀌는 것이다. 여자가 더 영악해져야만 하는 이유다.

29살의 잡지사 기자 진희에게도 그런 아픈 상처가 있다. 그녀를 거쳐 간 남자들이 남긴 상처다. 첫사랑은 성당에서 만난 오빠였고, 두 번째는 대학교에 입학해서 만난 과 선배였으며, 세 번째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몸을 내던지다시피 하다 만난 연하의 애송이였다. 그녀가 사랑했고 그래서 그들에게 몸까지 주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들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모두 그녀를 두고 떠나간 남자들이다.

그런 진희가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남자들은 왜 잠자리를 하고 나면 달라질까 하는 점이었다. 순수해 보였던 첫사랑의 성당 오빠도 그랬고, 열정적이었던 과 선배도 그랬으며, 풋풋했던 8살 연하의 애송이 연하남도 그랬다. 자신은 사랑했기에 잠자리 요구까지 들어주었던 것인데 남자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을 성적 노리개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를 그들에게 복수해야겠다는 전의가 생겼다.

대학로 익스트림씨어터2관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S다이어리’는 이처럼 자신을 거쳐 간 남자들에 대한 한 여인의 앙큼한 복수극이다. 다소 선정적인 내용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낯붉힐만한 장면도 없거니와 오히려 유쾌한 웃음만 가득한 작품이었다. 출연진은 단 4명에 불과해도 관객들과 자연스러운 소통 속에 공연이 진행되다 보니 한 편의 마당극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게 만든다.

제목에서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이 작품은 2004년 김선아 주연의 영화 ‘S다이어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첫사랑 성당 오빠로는 이현우가, 열정적인 과선배로는 김수로가, 풋풋한 연하남으로는 공유가 출연했었다. 이미 영화를 본 사람은 그때의 인물들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고,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연극을 보고 나서 다시 영화로 보면서 두 작품의 출연진을 비교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지난 29일 출연진은 주인공 진희 역에 김민서, 진희 친구 동순이자 멀티녀 역에 김진여, 첫사랑 성당 오빠이자 애송이 연하남 역에 이준영, 열정적인 과 선배이자 밥맛인 식물전문가 역에 김호준 등 4명의 배우들이 공연을 이끌었는데 공연 내내 배꼽 잡고 깔깔대며 웃어야 했을 만큼 환상적인 팀플레이를 보여주었다. 특히 감초 역할을 맡은 두 배우 김진여와 김호준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5월에 결혼하려는 그녀들의 발칙한 속사정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던 말은 옛날 금성사 TV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게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을 해야했고 그 결과가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으니 말이다. 마치 MBC ‘인생극장’에서처럼 “그래 결심했어”라는 한마디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선택은 신중해야 하고 그에 대한 결과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의 몫이다.

신중하게 결정해야할 선택 가운데 결혼도 있다. 흔히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하는 결혼은 말 그대로 개인에게 있어 중요하고 큰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대학 입시처럼 한번 안됐다고 두번, 세번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신중의 신중을 거듭해야만 한다. 한번의 선택이 10년을 넘어 평생을 이어가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신중하게 결정해도 결국 후회하는게 결혼이거늘 그렇지 못한 결혼이라면 오죽할까.

여기 세명의 처녀들이 있다. 혼기가 꽉찬 스물 아홉의 동갑네기들이다. 그녀들은 매달 10만원씩 적금을 부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모은 돈이 무려 3,825만원이다. 집에 눈치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장성했고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들이다 보니 그녀들에게 있어 이 돈은 꿈을 현실로 만들어줄 요술지팡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세계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고 1년동안 실컷 먹고 마실 수도 있을게다. 갖고 싶었던 명품 백을 장만할 수도 있고 그럴듯한 스포츠카도 한대 뽑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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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명 중에서 두명에게 그 돈은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철없던 스무살 시절에 지나가던 말로 했던 약속 때문이다. 셋 중에서 가장 먼저 결혼하는 사람에게 몰아주기로 했고 그 돈은 선본 지 일주일 만에 결혼을 결심하는 지희가 독차지하게 생긴 탓이다. 애인없이 노처녀로 늙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피같은 돈까지 빼앗길 처지가 되자 다른 두 친구 세연과 정은은 6월 1일에 결혼하게될 지희보다 먼저 결혼해서 3,825만원을 가로채기로 한다. 그녀들이 6월이 되기전 5월에 결혼해야만 하는 이유다.

연극 ‘5월엔 결혼할거야’에 등장하는 인물은 4명에 불과하다. 세명의 여자친구 세연, 정은, 지희 외에도 세연의 절친 남자친구와 옛애인, 과외 제자, 아는 오빠 등이 등장하지만 이 모든 배역을 단 한사람이 소화해 낸다. 이른바 멀티맨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배역 또한 그였다. 그가 아니였다면 연극은 다소 싱겁고 맹숭맹숭했을 것이다. 여배우들의 부족한 연기력을 커버해 주는 것도 그의 몫이었고 다소 빈약한 스토리를 메워주는 것도 그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5월 한달동안 세연은 느끼한 아는 오빠부터 시작해서 언더 그라운드에서 무명가수로 활약하고 있는 과외 제자, 그리고 도망치듯이 유학 떠난 옛애인을 만나서 결혼을 떠 본다. 3,825만원을 눈뜬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결혼을 전제로 만나온 것도 아니고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는 사람끼리 한달 안에 결혼한다는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혼에 집착하면 할 수록 세연은 상처만 입게 될 뿐이다.

연극 ‘5월엔 결혼할거야’는 유쾌하고 발랄한 청춘극이다. 관객들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배우의 등장부터 웃음이 시작되고 그 웃음은 끝날때까지도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미숙한 여배우들의 연기력과 빈약한 스토리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게다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아니라면 공감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여배우들의 미숙한 연기력과 빈약한 스토리가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이 작품 선택에 대한 책임은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영화와는 또다른 재미를 주는 연극 ‘나의PS파트너’

도발적이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파격적이기도 하다. 김성수와 김서형이 출연했던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The Sweet Sex And Love, 2003)’이라는 제목도 있었지만 신인들이 출연하는 B급 영화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정상급(?) 배우 지성과 김아중이 출연하는 영화 제목이 ‘나의 PS 파트너(My PS Partner, 2012)’라니, ‘폰 섹스 파트너(Phone Sex Partner)’라니 지성과 김아중도 이젠 갈 데까지 간 건가 싶기도 하다.

도발적인 제목과 달리 영화는 순정적이었다. 어느 날 걸려온 폰 섹스에 지성이 자신의 몸을 맡기는 과정이 상당히 노골적으로 묘사되고 있었지만 별스럽게 만난 남녀가 어느덧 우정이라는 감정에 휩싸이게 되고 자연스럽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였던 것이다. PS, 즉 폰섹스는 두 남녀가 만나게 되는 동기를 위한 설정에 불과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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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를 이번에는 연극으로 만날 수 있다. 대학로 미마지 아트센터 물빛극장을 통해서다. 이선균, 최강희 주연의 ‘쩨쩨한 로멘스(Petty Romance, 2010)’나 김선아 주연의 ‘S 다이어리(S Diary, 2004)’처럼 요즘들어 부쩍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이 늘었는데, 그런 작품들을 영화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대부분 청소년관람불가인 19금 딱지가 붙었다는 점에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장 관심 가는 부분은 비교적 농도 짙은 정사 장면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영화에서는 여러 가지 장치로 혹시 모르게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할 수도 있고 편집의 힘을 빌릴 수도 있지만 관객둘 코앞에서 연기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장감도 살려야 하고 관객들의 기대(?)도 충족시켜야 하는 이중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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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작품은 꽤나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노골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을 특수효과(?)로 처리한 탓에 현장감은 현장감대로 살렸고 관객들의 기대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로 90분을 지켜볼 수 있었다. 출연 배우는 4명에 불과하고 좁은 소극장 무대였지만 팀워크도 좋고 무대 활용도 뛰어났다.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에 감탄이 절로 나오기도 했다.

황당한 폰섹스를 통해서 만나게 되었지만 현승과 윤정은 자들신의 고민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베프(베스트 프렌드)가 되어 간다. 어쩌면 서로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기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고민까지 나누는 사이가 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도 그랬지만 연극을 보면서 나도 저런 파트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섹스에 대한 고민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성인만화공모전과 쩨쩨한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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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말했다. 한 번도 안 한 여자는 있어도 한 번밖에 안 한 여자는 없다고. 20대 후반의 다림(허혜리)은 말하자면 전자에 속한다. 어려서는 자랑스러웠던 처녀성이건만 어느덧 자신의 처녀성에 부담을 느껴야 하는 나이가 되고 말았다. 그 나이가 되도록 경험이 없다고 한들 누가 믿어줄 리도 만무하거니와 그동안 뭐했느냐며 오히려 면박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대학로 SM아트홀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쩨쩨한 로맨스’의 야릇한 해프닝은 바로 그녀의 처녀성에서 비롯된다. 먹고 살기 위해 잡지사 계약직으로 취직했으나 워낙 성적 경험이 없다 보니 제대로 된 글을 써내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해야 하는 잡지사로서는 그녀의 피상적인 글이 불만일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 잡지사에서 짤리는 변고까지 당하고야 만다.

그런 그녀가 선택한 것은 만화가 정배(조완기)의 스토리 작가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남자에 대한 경험만 없을 뿐 글빨은 자신이 있었으니 충분히 해볼 만 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만들어 내야 하는 스토리는 자극적인 성인만화였으니 그녀로서는 최대한 경험이 풍부한 여자로 위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경험도 없는 그녀가 과연 제대로 된 성적 판타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성인 만화의 소재인 성적 판타지를 주제로 하는 성인 대상 연극이지만 이 연극은 그리 낯뜨겁지가 않다. 오히려 유쾌한 웃음이 만발하도록 만드는 작품이다. 남자와는 단 한 번도 잠자리 경험이 없으면서 뻔뻔하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다림이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남자들의 물건이 모두 팔뚝만 하지 않느냐며, 자신이 만난 남자들은 다 그랬노라며 팔뚝을 치켜드는 모습 또한 귀엽기 그지없다.

연극 ‘쩨쩨한 로맨스’는 최강희, 이선균 주연의 영화 ‘쩨쩨한 로맨스'(Petty Romance, 2010)를 떠올리게 만든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 그 영화를 떠올린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은 영화를 연극무대로 옮긴 작품이기 때문이다. 만화가인 이선균의 역을 조완기를 비롯한 3인이 맡고 있고, 스토리 작가인 최강희의 역을 허혜리 외 2명이 맡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모두 4명의 배우가 등장하는데 주인공인 정배(조완기)와 다림(허혜리) 외에도 정배의 친구 해룡과 멀티남으로 등장하는 이대호와 다림의 친구 경선과 멀티녀로 등장하는 김민지의 맹활약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특히, 김민지의 환상적인 몸매가 드러날 때면 남성 관객뿐만 아니라 여성 관객들까지도 탄성을 내뱉게 된다. 몸매 좋고 얼굴도 고운데 연기까지 잘하니 그야말로 천하의 명기가 따로 없겠다.

‘쩨쩨한 로맨스’를 이미 영화로 본 사람이라면 스토리 전개에 있어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 자신도 객석에 앉아 영화와 같은 내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적잖이 당황했었다. 하지만 무대는 스크린과는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영화가 개봉된 지 이미 3년이 지났기에 새삼스러운 부분도 있겠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극적인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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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만 자고 헤어지는 남녀가 있다. 일명 원나잇 스탠드 커플이다. 만나고 헤어짐에 있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서로가 원해서 하룻밤을 보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억지로 강요한 것도 아니고 돈으로 매수한 것도 아니다. 서로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헤어지는 것이다. 간밤의 일들은 그저 기억의 일부로만 남을 뿐이다.

여기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한 두 남녀가 있다. 여자는 신랑의 아기까지 가졌다가 지운 채 버림받은 비운의 여인이고, 남자는 신부의 배 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의 친아빠일지도 모르지만,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난 신부에게 차인 남자다. 신랑에게 버림받은 여자와 신부에게 차인 남자. 그런 개 같은 사연들을 안고 참석한 결혼식이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결혼식에 축복보다는 저주를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여자는 신랑에게 복수하고 싶었고 남자는 신부에게 받은 상처를 해소하고 싶었다. 그를 위해 여자는 자신의 몸을 신랑의 후배에게 던지고자 했고, 애써 외면하던 남자는 끝내 온몸으로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그와 그녀의 발칙한 원나잇이 성사되는 순간이다. 그리고는 격렬한 몸짓으로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다. 그야말로 ‘뼈와 살이 타는 밤’이라고 하겠다.

대학로 소리아트홀 1관에서 공연되고 있는 ‘극적인 하룻밤’은 이처럼 다소 자극적인 내용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뜨거운 키스는 기본이고 남녀 배우의 은밀한 속살과 속옷까지도 내비친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들이 낯뜨겁거나 흉하기는커녕 오히려 즐겁고 유쾌하게 다가온다. 이유 없이 벗기는 에로 장르가 아니라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헐벗은 두 남녀의 재치있는 표현들로 인해 장내에 폭소가 터지기도 한다.

이 작품의 출연진은 두 명에 불과하다. 100분의 시간 동안 그 흔한 멀티맨 하나 없이 둘이서만 이끌어 간다. 남자 한정훈 역에는 김성준과 김정호가 맡았고 여자 정시후 역에는 채송화와 한초아가 교체 맡았다. 주로 김성준은 한초아와 짝을 이루고 김정호는 채송화와 짝을 이루는데 3월 21일 딱 한 번 김성준과 채송화가 짝을 이룬다. 그마저도 5시 공연만 그럴 뿐 8시 공연에는 다시 한초아가 김성준의 짝이 된다.

내가 공연장을 찾았을 때에는 김정호와 채송화가 각각 한정훈과 정시후의 역할을 맡았는데 두 배우에게 홀딱 빠질 정도로 매력적인 공연이었다. 키 크고 몸매 좋은 김정호도 그렇지만 예쁘고 사랑스러운 채송화에게 헤어나올 수 없었다. 더구나 맨 앞줄에 앉아서 지켜봤으니 그녀의 매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100분을 유쾌한 흥분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작품이었다. 끝나고 나서 배우들과 기념사진이라도 찍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을 정도로.

한국 뮤지컬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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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매력적인 장르다.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면서 흥은 더욱 돋우고 슬픔은 더욱 애절하게 만든다. 인간 감정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일 것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함께 웃고 함께 울게 만든다. 감정을 노래로 표현하는 뮤지컬 이야기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Frozen, 2013)’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흥행 돌풍을 일으켰고, 대통령 선거가 열렸던 지난 2012년에는 거의 모든 대사가 노래로 이루어졌던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2012)’이 5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아바(ABBA)의 노래를 바탕으로 한 ‘맘마미아’도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뮤지컬 성적은 초라한 수준이다. ‘명성왕후’가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고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관객을 동원했고, ‘김종욱 찾기’가 대학로 흥행을 바탕으로 충무로까지 진출하기는 했어도 한국 뮤지컬의 희망을 봤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다음이 없는 이유에서다.

흔히 한국 사람들은 뮤지컬을 싫어한다고 한다. 노래로 인해서 감정 전달이 안 되고 그로 인해 집중이 힘들어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것은 뮤지컬이기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된 뮤지컬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즉 잘 되는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의 차이라고 할 것이다.

외국의 유명한 작품들은 단순히 대사를 노래로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감정을 흔드는 명곡이 들어있다. ‘캣츠(Cats)’의 ‘Memory’가 그렇고,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I dreamed a dream’이 그렇다. 이 노래들은 작품과 별개로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곡들이다. 심지어 이 노래를 듣기 위해 해당 작품을 보러 가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한국의 뮤지컬들은 다르다. 단순히 대사에 멜로디를 입힌 것에 그칠 뿐이다. 그야말로 감정 전달도 안 되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도 없다. 그렇다고 멜로디가 친숙하지도 않다. 왜 저 상황에서 노래를 부르는 건지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그저 뮤지컬이기 때문에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공식에 따른 것으로 보일 뿐이다.

백제 건국 과정의 일부가 그려진 ‘미스터 온조’라는 작품을 보면서 느낀 감정도 다르지 않다. 뮤지컬이기 때문에 노래를 하는 건지, 노래를 하기 위해 뮤지컬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를 정도다. 스토리는 엉성하고, 이야기 전개는 지루했으며, 무엇보다 노래가 들을만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도대체 왜 뮤지컬로 만들어진 것인지 의문스럽다.

무릇 새로 시도하는 일에는 시행착오가 따르기 마련이다. 한국 뮤지컬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실패가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모든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실패를 통한 깨달음이 있고, 그에 따른 학습이 있을 때 비로소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된다.

안타깝게도 한국 뮤지컬들은 여전히 대사에 멜로디를 입힌 수준에 불과하다.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은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조건은 하나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가 그것이다. 대사를 노래로 한다고 뮤지컬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대사 전달을 노래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 전달을 노래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건 이미 관객들도 알고 있는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다.

충격적인 작품 관객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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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묻지 마 폭행’은 이런 과정에서 나온다. 상대방의 의도야 어떻든 상관없이 순전히 자신의 감정에 이끌려 돌이키지 못할 일까지 벌이게 되는 것이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대사로 유명한 영화 ‘달콤한 인생'(A Bittersweet Life, 2005)의 끔찍한 결말도 알고 보면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전적인 의미로 ‘모욕(侮辱)’은 ‘깔보고 욕되게 함’이라는 뜻이다. ‘업신여길 모(侮)’ 자와 ‘욕할 욕(辱)’ 자를 쓴다. 비슷한 의미로 ‘모독(冒瀆)’이라는 말도 있다. ‘말이나 행동으로 더럽혀 욕되게 함’이라는 의미로 ‘무릅쓸 모(冒)’ 자와 ‘더럽힐 독(瀆)’ 자를 쓴다. 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모욕’은 치욕적인 감정인 데 비해서 ‘모독’은 그보다는 덜하다.

제목에서부터 관객들을 자극하는 연극 ‘관객모독’은 사실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고 관객들을 함부로 대한다고 하니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던 터였다. 원작은 196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초연되었고 국내에서는 1978년에 처음 공연되었다고 한다. 벌써 30년을 훌쩍 넘겨 40년에 가까워지는 역사를 자랑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이 연극의 연출자는 기국서로 1978년 초연 때부터 연출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당시에도 무대에 섰었던 그의 동생 기주봉은 이번에도 함께 무대에 서는데 그는 충무로와 여의도에서 명품조연으로 유명한 배우이기도 하다. 이름만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으나 형사반장 전문 배우로 얼굴을 보면 금세 ‘아하’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대단한 기대를 하고 극장으로 향했지만, 초반 부분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단촐한 무대에 오직 의자 4개만 달랑 있을 뿐이었고 배우들의 대사는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힘들게 대사를 외웠을 텐데 왜 저리도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나마 노배우 정재진의 재치있는 몇 마디가 박수와 함께 잠깐의 웃음을 불러올 뿐이었다.

일정한 스토리도 없고 주고받는 대사도 없다. 배우들은 쉬지 않고 떠들어대지만, 기존에 우리가 접했던 형식과는 전혀 다르다. 일종의 실험극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귀를 기울여 보면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포착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이 연극에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말한다. 모욕당할 준비가 되었느냐고.

50여 분의 시간이 흐른 뒤 약 30여 분짜리 막간극이 펼쳐지는 데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극에 대한 대사가 아니라 그저 연극학 개론에나 나올 법한 내용들을 서로 주고받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연극이 완성되고 있었다. 그 충격은 말로는 설명될 수 없는 성격이었다.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라는 감탄사가 터져 나올 정도였다. 여배우가 외치는 ‘극만이’라는 외침이 지금도 귀에서 아른거린다.

작품의 형식을 파괴하면서 시작부터 이미 관객들을 모독했지만, 이 작품은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다시 관객들을 향해 욕을 퍼붓기 시작한다.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러면서 관객들에게도 참지 말고 배우를 향해 욕설을 날리라고 주문한다. 그야말로 욕 배틀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욕을 내뱉지는 못하고 여전히 관조적인 자세에 머무른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입이 열리고 저절로 쌍욕이 터지는 신비한 경험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왜 그렇게 되는지는 비밀.

이 작품을 보러 갔던 날에서는 기주봉, 정재진, 안창환, 성아름, 김태훈이 출연했는데 그중에서 또렷또렷한 발음으로 좌중을 압도했던 성아름의 존재가 눈에 띄었다. 초반 극에 대해서 설명할 때에도 관객들에게 이해했느냐고 묻는 부분이 있는데 어떤 관객이 여배우님이 설명해 주시니 이해가 되더라고 대답할 정도. 하지만 그 대사는 이해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는 점은 함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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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싫어하는 군대이야기를 화끈하게 변신시킨 동작그만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야기 3위는 군대 이야기이고 2위는 축구 이야기라고 한다. 그럼 1위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나. 군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여자 입장에서는 남자들이 입에 침이 튀어가면서 얘기하는 군대 이야기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참고 들어주려 해도 도저히 공감대를 찾을 수 없는 이유에서다. 대화에 끼지 못하니 소외감마저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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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요즘에는 MBC ‘일밤’의 ‘진짜 사나이’ 덕분에 사정이 좀 나아진 편이다.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던 군대에서 개고생한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분위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나친 군 홍보 프로그램이라 평가절하되기도 하고 리얼이 아니라 각본에 의한 연출이라는 이유로 비난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군대에 대한 남자들의 특별한 감정에 대한 공감대가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군대를 배경으로 하는 에피소드 중에서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을 꼽으라면 80년대 중반 KBS 2TV ‘유머일번지’의 ‘동작그만’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비록 개그 프로이기는 해도 그 속에 군 생활의 애환이 그대로 녹아있기에 남자들로 하여금 웃고 울렸던 작품이었다. 메기병장, 뺀질이, 그리고 곰팽이라는 별명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그 캐릭터들은 아직도 이상훈, 이경래, 이봉원이라는 개그맨들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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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메기병장 이상훈과 곰팽이 이봉원이 의기투합해서 ‘동작그만’이라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기 때문이다. 왕십리 소월아트홀에서 공연되고 있는 ‘동작그만’은 ‘남자는 군대 다녀온 힘으로 인생을 살아간다’는 홍보 문구처럼 다분히 남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영화 ‘국제시장’이 일으킨 복고바람에 힘입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으니 꼭 남자들만을 위한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기본적으로 군대를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코메디콘서트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군대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이야기도 있고 노래도 있으며 화끈한 쇼도 있다. 이상훈과 이봉원이 주요 출연진이라고 해서 TV에서 보던 단순 코메디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대형 무대에 무려 16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초대형 블록버스터이기 때문이다. 배우와 관객이 함께 웃으며 즐길 수 있는 마당놀이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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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군대 위문공연 장면에서는 모든 관객이 어우러져 신명나게 즐길 수 있기도 하다. 분명히 기대 이상의 재미가 있는 작품이기는 하다. 남자 몇 명이서 펼치는 10분짜리 코메디를 두 시간으로 늘렸으리라는 생각이 빗나가도 한참 빗나가게 만든 작품이었다. ‘그리스’나, ‘토요일 밤의 열기’와 같은 해외의 유명 뮤지컬이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군대 이야기를 싫어하는 아내도 흥겹게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상훈과 이봉원이라는 유명 연예인을 지나치게 내세웠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두 사람이 ‘동작 그만’을 대표하는 캐릭터이기는 해도 두 사람만을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게 된다는 점에서 약이자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가 공연장을 찾은 날에도 이상훈과 이봉원이 출연하지 않은 탓인지 관객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열심히 공연하는 배우들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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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과 이봉원을 홍보 전면에 내세웠다면 최소한 둘 중의 한 사람만은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 둘의 출연을 기대하고 공연장을 찾을 게 분명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과는 다른 버전의 공연을 볼 수 있고, 다른 배우들에게도 공연 기회를 준다는 점은 바람직하나 두 사람이 출연하지 않음으로 인해 실망할 관객들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코메디콘서트 동작그만
장소 : 왕십리 소월아트홀
출연 : 곰팽이(이봉원, 유승을), 메기병장(이상운, 송요셉), 뺀질이 유승일, 김완순 신금숙 등

스물아홉 살 영희와 서른 살의 영희는 다르다? 철수영희

흔히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홉수에 접어들고 나면 누구든지 한번쯤은 심난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단 한살의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열아홉과 스물은 청소년과 성인의 구분이 되어주고 스물아홉과 서른은 청년이 중년(?)으로 넘어서는 시기다. 뿐만아니라 서른아홉과 마흔이 다르고 마흔아홉과 쉬흔이 다른다. 인생에 있어서 나이에 대해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시기가 바로 아홉수에 접어들었을 때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시기는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시기일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책임’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꺼내들어야 하는 시기인 탓이다. 20대와 달리 30대에는 자신을 비롯해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존재들도 의식해야만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20대와 달리 30대의 선택은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기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 20대의 객기나 호기는 사치일 뿐이다.

이러한 선택은 진로와 결혼으로 나뉜다. 20대 시절에는 떠밀리다시피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인생을 살아왔다 할지라도 30대에는 자신의 갈 길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하고 지금껏 하고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왔어도 30대가 되면 계속 이렇게 살아갈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결혼도 마찮가지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평생의 배필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다른 상대를 찾아보아야할 것인지 결정해야만 한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강요하는 것들이다.

여기 두명의 남녀가 있다. 모두 서른을 앞두고 있는 스물 아홉의 청춘들이다. 이 두명이 만나는 곳은 상대방 건물을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옥탑방에서다. 영화 감독의 꿈을 안고 사는 청년 철수가 옆건물 옥탑방으로 이사오면서 은행원 영희를 만나게 된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흥청망청 살아왔던 철수에 비하면 알뜰한 영희는 차곡차곡 시집갈 밑천을 마련해논 참한 색시다. 서로가 어울릴래야 어울릴 수 없는 처지다 보니 이따금 옥상에서 재회라도 하게될 경우 험한 분위기만 연출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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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앞둔 철수는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판이라는 곳이 안정적인 생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자신이 원했던 영화감독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도 확신하기 어렵다. 20대에는 좋아서 하던 일이었는데 30대에 들어서도 마냥 좋아하는 일이라고 계속할 수 있을거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 시대에 다른 일자리를 찾는다는 것도 쉽지 않다. 서른을 앞둔 철수의 마음이 심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직장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철수에 비하면 사정이 나아 보이지만 스물 아홉의 영희에게도 고민은 있다. 지금껏 사겨왔던 사람과의 미래가 불투명한 탓이다. 20대까지는 그럭저럭 지내왔지만 서른이 되어서도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는 불안감이 그녀를 흔든다. 20대까지는 로맨스였지만 30대부터는 현실이 시작된다. 하루라도 빨리 지긋지긋한 옥탑방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런 그녀에게 탈출구가 되어줄 남자는 속시원히 마음을 털어놓지 않는다. 스물 아홉의 영희가 불안해 하는 이유다.

내용은 달라도 서른을 앞둔 스물 아홉의 고민들은 본질적으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대를 보내는 아쉬움이 깊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물 아홉 이후의 삶이란게 그리 특별하지는 않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서른이 된다는 것은, 서른 이후의 삶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인 탓이다. 그저 한 살이라는 나이를 더 먹게될 뿐이다. 하지만 분명한건 스물 아홉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필요는 있다는 점이다. 그런 고민도 스물 아홉이기에 가능한 이유에서다.

연극 ‘철수영희’에서 스물 아홉의 철수는 고소공포증을 극복하면서 지금과는 달리 서른이 되면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자 다짐하게 되고 서른을 앞둔 영희는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사랑을 훌훌 벗어 던지고 유럽으로 떠난다. 서른의 철수는 스물 아홉의 철수보다 한뼘 더 커져 있을게고 서른의 영희는 스물 아홉의 영희보다 한결 성숙해져 있을게다. 스물 아홉의 철수와 영희는 그렇게 서른을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