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돌아온 원더우먼을 보고 실망한 것은

원더우먼

 

오래된 기억은 단편적으로 남기 마련이다.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당시 정황이나 분위기처럼 여러 가지가 혼합되기도 한다. 심지어 그 기억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가끔 왜곡되기도 하고 취사선택되기도 하는 기억의 특성 때문이다. 여럿의 입을 맞추고 나서야 그 기억이 정확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미국 드라마 ‘원더우먼’의 경우 예쁘고 날씬한 여배우가 주인공인 드라마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일 게다. 그 여배우의 이름이 린다 카터(Lynda Carter)이고 미스 아메리카(Miss World USA 1972) 출신이라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녀가 왜 수영복 차림으로 뛰어다니고 신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 드라마를 보기에는 너무 어렸던 게 사실이다. 그냥 예쁜 배우가 아니라 정말 예쁜 배우라는 것도 커서야 깨닫게 됐으니까.

1975년부터 시작되었으니 벌써 40여 년이 훌쩍 넘은 드라마다. 흔히 말해서 강산이 바뀌어도 네 번은 바뀌었을 세월이다. 100% 확실하다고 확신하는 기억조차 왜곡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예쁘고 날씬한 여배우가 나오는 드라마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영화 ‘원더우먼'(Wonder Woman, 2017) 개봉 소식을 듣고 기억의 파편을 맞춰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원더 우먼’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다. 린다 카터라는 미녀배우를 대신할 여배우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는지가 궁금했다. ‘600만 불의 사나이’가 리 메이저스여야 하고 ‘소머즈’는 린제이 와그너여야 하며 ‘맥 가이버’가 리처드 딘 앤더슨이어야 하는 것처럼 ‘원더 우먼’도 린다 카터여야 하지만 40년의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 최소한 비슷한 분위기라도 내주길 바랬다

영화로 ‘원더 우먼’을 본 솔직한 심정은 ‘다소 실망스럽다’였다. ‘원더 우먼’역을 맡은 갤 가돗(Gal Gadot)은 린다 카터처럼 여리하지 않은 데다 지나치게 우람하기까지 했다. 물론 갤 가돗 역시 미스 이스라엘 출신으로 미스 아메리카 출신인 린다 카터처럼 미인 대회 출신이기는 하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기준이 여성미만 강조하던 예전과 달리 건강미까지 추구하는 걸로 바뀌다 보니 아무래도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원더 우먼은 그냥 여자라고 할 수 없다. 남자 못지않은, 아니 어느 면에서는 웬만한 남자보다 더 강인한 여전사다. 그러니 린다 카터처럼 가녀린 여자가 맡을 역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미스 아메리카 출신인 린다 카터가 원더 우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섹스 어필을 통한 남자들의 눈요기 거리의 목적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그 중간을 지향하고 있다. 갤 가돗으로 하여금 적당히 예쁘고 적당히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린다 카터만큼 예쁘지 않거니와 ‘에일리언 2’의 시고니 위버처럼 강인한 여전사의 모습도 아니었다. 갤 가돗은 2016년 작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2016)에서 이미 원더 우먼으로 출연했다지만 그 영화를 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갤 가돗의 원더 우먼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스토리도 다소 불만이다. 영화 ‘원더 우먼’은 다이애나의 출생의 비밀을 시작으로 그녀의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활약을 그리고 있는데 히어로 영화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그런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다 보니 실망스럽게 다가왔다. 이미 마블 영화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히어로 액션을 원더 우먼에서도 보아야 한다는 것은 정서적으로 피곤한 일이었다. 문득 린다 카터의 오리지널 원더우먼이 보고 싶어졌다. 어쩌면 이 영화보다 더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원더 우먼 (Wonder Woman, 2017)
액션, 모험, 판타지, SF | 미국 | 141분 | 2017 .05.31 개봉 | 감독 : 패티 젠킨스
출언 : 갤 가돗(다이애나/원더우먼), 크리스 파인(스티브 트레버)

하이드는 없고 지킬박사만 남은 한석규 주연의 영화 프리즌

프리즌

 

돌담병원 김사부는 괴팍하기는 해도 실력 하나는 알아주는 외과 과장이다. 때로는 불량할 정도로 터프하지만 때로는 한없이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이중인격자로 보이기도 했다. 그 두 가지 성격은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불의를 외면하지 못하고 정의를 지키려는 모습은 진정한 사부의 모습이기도 했다.

한석규라는 배우에게 김사부라는 인물은 비교적 잘 맞는 역할이었다. 아니 한석규가 아닌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역할로 보이기도 했다. 한석규가 있었기에 김사부도 있을 수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낭만닥터라는 수식어까지 한석규를 위해 만들어낸 말 같았다. 지난해 연말 드라마가 끝나기도 전에 SBS에서 한석규에게 연기대상을 안겨준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런 한석규가 이번에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중에서 지킬 박사의 얼굴은 감추고 하이드의 얼굴로만 나타난 것이다. 2017년 3월 23일 개봉한 영화 ‘프리즌'(The Prison, 2016)을 통해서다. 이 영화에서 교도소 내부를 장악하고 있는 정익호로 출연한 한석규는 한없이 극악무도하고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익호가 장악한 교도소는 정익호에게 있어 회사나 마찬가지였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누구든 손봐줄 수 있었다. 필요하면 외부로 출장 나갈 수도 있었다. 교도소의 절대권력인 교도소장도, 죄수들을 감시하는 간수들도 모두 정익호의 손안에 있었다. 교도소에서 정익호는 왕이자 절대자였다. 누구도 그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참혹한 댓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무조건 화부터 내고 보는 사람이 아니라 웃으면서 화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하면 그럴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보다 더 무서워진다는 말이다. 배우 한석규가 악역을 맡는다면 양아치 같은 비이성적인 모습보다는 치밀하면서도 계산적인 즉, 이성적인 악역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한석규는 그리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한석규의 모습은 사실 식상하기 그지없다. 낭만닥터로 불리는 김사부의 모습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모습이 적절히 조화되었기 때문인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조화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이전에 그가 출연했던 영화 중에서 악역만 모아놓은 듯 보는 이로 하여금 피로감만 쌓이게 했다.

그렇다고 영화의 내용이나 소재가 신선한 것도 아니다. 범죄 조직 내부로 잠입해서 진실을 깨려고 한다는 설정은 ‘신세계'(New World, 2012)와 같고 교도소 소장과의 거래는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1994)을 비롯한 다른 교도소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과 비슷하다. 뭔가 거대한 음모를 파헤친다는 기대감보다는 여기저기서 조금씩 가져와 짜깁기한 느낌이 강하다.

영화는 올 3월에 개봉했지만 만들어진 것은 지난해 봄이었다. 2016년 2월 14일 크랭크인 해서 5월 22일 크랭크업 한 것으로 되어있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11월부터 전파를 탔으니 한석규는 영화 먼저 찍고 드라마에 출연한 게 된다. 김사부의 후광을 등에 업은 영화는 전국에서 290만의 관객을 불러 모아 나름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프리즌(The Prison, 2016)
범죄, 액션 | 한국 | 125분 | 2017 .03.23 개봉 | 감독 : 나현
출연 : 한석규(정익호), 김래원(송유건), 정웅인(강소장), 김성균(김박사)

관객을 뻔하게 울리려하는 조정석, 도경수 주연의 영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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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는 보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대체로 뻔하다는 것이다. 뻔하다는 말.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이 어려워야 끝까지 긴장하면서 지켜볼 텐데 이미 뻔한 결과가 예상되다 보니 싱겁기 그지없다는 뜻이다. ‘안 봐도 비디오’라고나 할까. 아무리 한국 영화가 질적으로 발전했다고 해도 아직 많은 사람들은 한국 영화를 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뻔한 내용이라 해도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뻔하지 않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게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역량이고 극본을 쓰는 작가의 역량이다. 옛날 영화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다시 만드는 리메이크 수준이 아니더래도 사람 사는 모습이 다 거기서 거기일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해 아래 새것이 없다’라는 말까지 할까.

여기 또 한 편의 뻔한 영화가 있다. “남보다 못한 형제의 예측불허 동거가 시작된다!”는 포스터 문구조차 신파적으로 보이는 영화 ‘형'(MY ANNOYING BROTHER, 2016). 제목만 듣고 혹은 포스터만 보고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두 형제는 사사건건 티격태격할 테고 극한 상황까지 갔다가 결국에는 화해할 것’이라는 줄거리가 떠오른다.

유도 국가대표 선수 고두영(도경수)은 경기 도중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게 된다. 그런 고두영 앞에 15년간 연락이 끊겼던 형 고두식(조정석)이 나타난다. 시력장애자인 고두영을 돌봐주기 위해 교도소에서 1년간 가석방으로 풀려난 것. 호적상으로는 형 동생이지만 둘의 관계는 남보다 못하다. 영화 포스터에는 “남이면 좋겠다! 제발”이라는 말로 둘 사이를 설명하고 있다.

한때 고두식도 좋은 형이었던 때가 있었다. 고두영 역시 고두식을 믿고 따르던 착한 동생이었다. 그런 둘 사이가 갈라진 것은 물론 오해 때문이다. 그 오해 역시 지나치게 상투적이다. 죽기 전까지 두영 모가 두식을 기다렸다는 설정 역시 식상하다. 새로운 영화라고 해서 지금까지 없었던 일만 늘어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관객들로 하여금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이 나오면 곤란하지 않을까.

어쨌든 오해와 갈등 속에서 둘은 조금씩 관계를 회복해가고 두식의 열정적인 지원 속에 두영은 다시 유도를 시작하게 된다. 코치 이수현(박신혜)의 눈물겨운 헌신으로 두영은 장애인 월드컵에 출전해서 메달까지 따지만 두식은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 이유 역시 다들 짐작한 그대로다. 네이버에서는 장르를 코미디, 드라마로 표시했지만 신파라는 장르가 있다면 그쪽으로 분류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신파극의 패턴은 관객으로 하여금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 역시 조정석이라는 배우로 인해 관객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물론 나처럼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로서는 상영시간이 무척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흥행 성적은 나쁘지 않아 전국 2,982,142명의 관객을 불러들여 230억(23,129,611,893) 원의 매출을 올렸다.

형(MY ANNOYING BROTHER, 2016)
코미디, 드라마 | 한국 | 110분 | 2016 .11.23 개봉 | 감독 : 권수경
출연 : 조정석(고두식), 도경수 디오(고두영), 박신혜(이수현)

라라랜드를 누르고 아카데미 작품상에 오른 문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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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선택할 수 없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피부색이고 다른 하나는 성별이다. 부모도 바꿀 수 없기는 하지만 입양이라는 형식이 그를 보완해준다. 같은 의미에서 국적도 다르지 않다. 태어난 곳은 선택할 수 없어도 이민이라는 제도를 활용하면 된다. 결국 남은 건 피부색과 성별이다. 세월이 흘러도,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져도 바꿀 수 없다.

미국의 44대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흑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대통령에 올랐다. 야구 선수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 42번은 메이저리그 전 구단 최초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흑인들은 아직도 불우하게 태어나 불우하게 자란 후 불우하게 살다 불우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받아야만 하는 멸시와 천대 역시 여전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샤이론(알렉스 R. 히버트)의 피부는 검은색이다. 태어나고 자란 곳 역시 흑인 빈민가이고 엄마(나오미 해리스)는 몸을 팔아 돈을 버는 매춘부다. 아버지가 모른 채 불우하게 태어난 샤이론은 빈민가에서 아이들에게 이유 없이 괴롭힘을 당하며 불우하게 자라고 있다. 세상 어디에도 탈출구는 없어 보였다.

그런 샤이론 앞에 구세주처럼 후안(메어샬라 알리)이 나타난다. 주눅 들고 연약해 보이는 샤이론이 안쓰러웠던 후안과 그의 여자친구 테레사(자넬 모네)는 샤이론에게 든든한 기둥이 되어 준다. 그들은 샤이론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이유 없이 괴롭히는 아이들로부터, 날로 괴팍해지는 엄마로부터 피난처가 되어주기도 했다.

샤이론에게 후안은 친구 이상이었다. 자신에게 아빠가 있다면 후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샤이론에게 후안은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마”라는 충고를 들려준다. 후안이 더 오래 살았더라면 샤이론의 앞날도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마약상이었던 후안은 젊은 나이에 요절하면서 갑작스럽게 샤이론의 곁을 떠나고 만다.

샤이론에게 친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래 중에서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케빈이 있었다. 소심한 샤이론이 학교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케빈의 영향이 컸다. 샤이론에게 후안이 기댈 수 있는 나무 같은 존재였다면 케빈은 잠시 쉴 수 있는 의자 같은 존재였다. 그랬기에 잠깐일지라도 케빈의 일탈은 샤이론에게 충격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월 열렸던 제89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라라랜드'(La La Land, 2016)를 누르고 작품상에 올랐던 영화 ‘문라이트'(Moonlight, 2016)는 흑인으로 태어나 흑인으로 자라 흑인으로 살아야 하는 흑인에 대한 이야기다. 거기에 더해서 영화는 선택할 수 없었던 그래서 더욱 원망스러웠던 피부와 성 정체성에 대해서도 말한다.

영화는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다. 그저 담담히 자라는 흑인 소년(애쉬튼 샌더스)과 그 소년이 자라 청년(트레반트 로즈)이 되는 과정을 그려 나간다. 피부색이 검지 않아도 충분히 우울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란 소년 그리고 그 소년이 청년이 되는 과정. 매춘부 엄마, 마약상 후견인 그리고 그의 죽음, 절친했던 친구와 그의 일탈, 그 속에서 소심했던 소년은 건장한 청년으로 탈바꿈해간다.

성년이 된 샤이론은 예전의 소심한 리틀이 아니었다.”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마”라던 후안의 충고에 따라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키워갔다. 그럼에도 샤이론(블랙)은 겉모습은 건장해졌지만 속은 여전히 여린 리틀이었다. 오랜만에 케빈(안드레 홀랜드)과 해후한 샤이론을 바라보는 눈빛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드는 것도 그 때문일 게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으로 호명된 작품은 ‘라라랜드’였다. 하지만 잘못 발표된 것이 확인되었고 이내 ‘문라이트’로 변경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라라랜드를 상업영화라고 한다면 문라이트는 예술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두 영화 모두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라라랜드’의 결말도 훌륭했지만 ‘문라이트’의 결말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문라이트(Moonlight, 2016)
드라마 | 미국 | 111분 | 2017 .02.22 개봉 | 감독 : 배리 젠킨스
출연 : 마허샬라 알리(후안), 나오미 해리스(폴라), 트래반트 로즈(블랙), 자넬 모네(테레사)

재미있거나 지루하거나, 영화 범죄의 여왕

범죄의여왕

 

서울 고시촌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공부에 방해될까 봐 전화 한 번 마음대로 하지 못한 엄마(미경)는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지만 고시공부에 지친 아들의 목소리에는 짜증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수도요금이 지난달보다 많이 나왔으니 생활비 좀 넉넉히 보내달라는 말이었다.

혼자 공부하는 아들의 수도요금이, 그것도 일찌감치 학원으로 나섰다가 저녁에 들어와서 잠만 자다시피 하는 아들의 수도요금이 백만 원 넘게 나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방에서 미용실을 하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하루 종일 머리 감기는 게 일인 미용실에서도 한 달 내내 써봐야 그보다 턱없이 적은 수도요금 고지서를 받는 이유에서다.

모르긴 몰라도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공부밖에 모르는 숙맥인 아들을 이용해서 잇속을 차리는 놈들이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아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돈이나 부치라고 했지만 엄마는 서울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아니 아깝기는 하다). 잘못된 게 있다면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도대체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박지영 주연의 ‘범죄의 여왕'(The Queen of Crime, 2015)은 이처럼 아들이 전해온 믿을 수 없는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누진제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뛰기 마련인 전기 요금이나 소액결제나 게임 아이템 구입에 사용되는 전화 요금이 아니라 수도요금이 백만 원 넘게 나왔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경우 대부분 세 가지 정도를 의심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관리소에서 농간을 부린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상수도 파이프가 터져서 물이 샌 경우(또는 계량기가 고장 난 경우)이며, 마지막 하나는 정말 물이 많이 필요한 일이 생긴 경우다. 유약한 아들을 대신해 엄마는 나름대로 추리와 수사를 진행해 나간다. 그러면서 하나씩 진실에 접근해 간다.

영화의 배경은 신림동 고시촌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하숙 형식의 고시원이 아니라 개개인이 따로 방을 얻어 사는 오래된 아파트다. 지내기에는 고시원이 낫겠지만 이런저런 간섭 없이 지내기에 적합한 형태일 것이다. 오래된 건물인 만큼 분위기가 칙칙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가 고시원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의 장르는 스릴러지만 적당히 코믹을 첨가해서 버무렸다. 음침해 보이던 개태 역의 조복래가 나중에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개같이 태어났다고 해서 개태란다). 또한 고시촌에 살면서 고시에는 관심도 없고 지나다니는 여자나 훔쳐보는 덕구 역의 백수장도 영화를 이끌어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의 결론은 뻔하게 흘러간다. 추리극에서 반전을 꾀하지 못하고 뻔한 결론으로 흘러간다는 것만큼 치명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단점을 코미디로 극복했다. 소름 끼치게 무서운 장면보다는 툭툭 튀어나오는 개그 코드가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코드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면 그다지 재미없는 영화라고 생각될 것이다.

박지영이라는 배우를 처음 본 건 SBS ‘오박사네 사람들’이라는 시트콤을 통해서였다. 그녀의 프로필을 보면 1989년 미스 춘향 선으로 데뷔한 후 같은 해 MBC 19기 공채 탤런트로 뽑힌 것으로 되어 있던데 정작 그녀를 알린 대부분의 작품이 SBS라는 점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이러고 보면 프로필이 정확한 것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이 영화에 대해 박지영은 처음으로 손익분기점이 신경 쓰였다고 한다. 마이데일리 인터뷰에서 “한낮에 영화를 보러 갔는데 몰입이 안 되는 거에요. 제가 관객들의 수를 세고 있더라고요. 하하. 그때 주부들을 공략하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 작품은 꼭 엄마들이 봐야 하는 영화입니다.”라고도 했다.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영화는 43,823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범죄의 여왕(The Queen of Crime, 2015)
스릴러 | 한국 | 103분 | 2016 .08.25 개봉 | 감독 : 이요섭
출연 : 박지영(엄마 미경), 조복래(개태), 김대현(아들 익수), 허정도(403호), 백수장(덕구)

조진웅 때문에 선택하고 후회한 영화 보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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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증(obsession)이란 게 있다.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생각이나 장면이 떠올라 불안해지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질환’을 말한다. 일종의 정신병적 증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질병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크고 작고 혹은 많고 적고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영화 ‘보안관'(The Sheriff In Town, 2016)은 이런 강박증을 소재로 하는 영화다. 흔히 강박증을 소재로 했다고 하면 음산하거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네이버 영화 소개에는 범죄, 코미디 영화로 되어 있을 정도로 밝은 분위기다. 겉으로만 보면 강박증에 대한 영화로 보기 어렵다. 전직 형사의 끈기와 인내가 주된 소재로 보일 정도다.

영화는 그것을 집념이라고 주장하지만 내가 강박증이라고 말하는 것은 종진 역을 맡은 조진웅에 대한 대호 역을 맡은 이성민의 병적인 집착 때문이다. 한 가지 일에만 달라붙어 정신을 쏟는다는 의미의 집념과 마음이 늘 그리로 쏠려서 잊히지 아니 함이라는 의미의 집착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것이 긍정적인 상황일 때는 집념이지만 부정적일 때는 집착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마약 수사반 대호는 실적에 대한 의욕이 앞서 단독으로 마약거래 현장을 급습한다. 하지만 검거하고자 했던 일식은 놓치고 대호와 함께 현장을 찾았던 파트너는 칼에 찔리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진다. 범인은 범인대로 놓치고 파트너는 파트너대로 다치게 만든 대호는 결국 과잉수사로 짤리고 고향으로 낙향한다. 그런 그의 앞에 5년 전 현장에서 만났던 종진이 성공한 사업가로 나타나면서 대호의 심기를 건드린다.

5년이 지났지만 대호는 여전히 가슴속에 응어리를 간직하고 있었다. 다 잡았던 마약범 일식을 놓쳤다는 아쉬움과 자신의 무모함으로 파트너를 죽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이었다. 그로 인해 경찰을 그만두어야 했다는 억울함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응어리는 누군가에게 화풀이로 나타나게 마련이고 그 대상이 바로 종진이었다.

문제는 종진에 대한 대호의 시선이 범인을 잡기 위한 집념이 아니라 집착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것이 집념이기 위해서는 결정적이지는 않더래도 어떤 단서라도 있어야 하는데 영화는 그에 대한 논리적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그저 전직 형사의 직감만 믿으라고 할 뿐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집착이 아니라 집념이라고 주장한다.

‘식스 센스'(The Sixth Sense, 1999)나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 1995)가 충격요법으로 성공한 후 요즘 영화들은 모두 반전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전반부와 다른 후반이 있어야 관객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고 좋은 평가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문제는 그만큼 억지도 늘어난다는 점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반전만 있으면 된다는 일종의 강박이라 하겠다.

이 영화 역시 반전이 있지만 그리 신선해 보이지 않는다. 조진웅이 출연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2013년작 ‘끝까지 간다'(A Hard Day, 2013)를 잠깐 떠올리기도 했으나 수준은 한참 못 뒤진다. 범죄물이라면서 긴장감도 없고 코미디라면서 웃기지도 않는다. 심지어 드라마보다 허술할 지경이니 이런 영화를 끝까지 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조진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2016년 동안 주연으로 찍은 작품이 이 영화를 포함해서 대장 김창수, 안투라지(tvN), 사냥(The Hunt, 2016), 아가씨(The Handmaiden, 2016), 시그널(tvN) 등 무려 6개나 된다. 그나마도 특별출연으로 나왔던 국가대표2(Run-Off, 2016), 마차 타고 고래고래(Blue Busking, 2016) 등은 제외한 게 그 정도다.

오랫동안 공백기가 있었던 이경영이 다작의 상징이 되었지만 그가 주로 조연에 머물렀던 반면 조진웅은 주연급으로도 상당히 많은 영화를 찍고 있는 셈이다. 야구 선수가 모든 타석에서 안타를 칠 수는 없고 축구선수가 출전한 모든 경기에서 골을 넣을 수는 없듯이 배우도 출연한 모든 영화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흥행과는 상관없이 그 자체로도 인정받을 수는 있어야 한다. 많은 관객들이 내용보다는 배우만 보고도 영화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성민을 믿고 이 영화를 선택한 관객보다는 조진웅만 보고 이 영화를 선택한 관객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진웅은 많은 작품보다는 좋은 작품을 선별할 때도 되었다고 본다. 다시는 이런 영화에서 조진웅이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안관(The Sheriff In Town, 2016)
범죄, 코미디 | 한국 | 115분 | 2017 .05.03 개봉 | 감독 : 김형주
출연 : 이성민(대호), 조진웅(종진), 김성균(덕만), 조우진(선철), 김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로 만든 영화 밀레니엄 시리즈

밀레니엄4

 

전 세계 46개국에 걸쳐 6천만의 독자를 사로잡은 초대형 베스트셀러. 이런 대단한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흥행은 따놓은 당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는 소설처럼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후속편마저 무산되고 말았다.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이자 2011년 데이빗 핀처 감독에 의해 스크린으로 옮겨졌던 영화 ‘밀레니엄'(Millennium) 이야기다.

소설 ‘밀레니엄’에는 ‘다빈치 코드’와 ‘해리포터’를 잠재울 불멸의 베스트셀러라는 홍보 문구가 붙어있다. 사실인지 아니면 출판사의 희망사항에 불과한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작가의 모국인 스웨덴에서 350만 부가 팔린 것을 시작으로 미국 900만 부, 영국 700만 부, 프랑수 330만 부, 독일 560만 부, 이탈리아 320만 부, 스페인 35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은 팩트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스웨덴 인구 910만 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인구의 1/3 이상이 이 책을 샀다고 할 수 있으며,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는 인구의 1/5 이상이 이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었다. 또한 미국에서는 매일 5만 부씩 판매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런 대단한 원작을 영화계가 가만 놔둘 리 없다. 2005년부터 3년에 걸쳐 출간된 소설은 2009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의 버전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작가의 모국인 스웨덴 버전이고 다른 하나는 할리우드 버전이다. 스웨덴 버전은 2009년에 영화화됐고 할리우드 버전은 2011년에 만들어졌다. 스웨덴에서는 2009년에 3편이 모두 만들어졌지만 할리우드에서는 2011년에 1편이 먼저 만들어진 후 속편의 소식을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제6대 007 다니엘 크레이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세븐'(Se7en, Seven, 1995), ‘파이트 클럽'(Fight Club, 1999)의 데이빗 핀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나 재미를 보지는 못했고 한국에서도 처참한 성적을 남겨야 했다. 그나마 할리우드 판은 개봉관에서 개봉이라도 했지 스웨덴 버전은 예술 영화 전용관에서 상영되어 개봉했는지 모른 채 지나가야 했다.

‘밀레니엄’의 스웨덴 판을 보고자 했던 것은 할리우드 판을 너무 지루하게 본 탓에 스웨덴 버전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서였다. 할리우드 판의 정사신이 상당히 농후했었기에 스웨덴 버전은 어떻게 묘사했을지도 궁금했었다. 할리우드 판보다 먼저 만들어진 스웨덴 버전을 보면 할리우드 버전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할리우드 판에 비하면 스웨덴 버전은 영화라기보다는 미니시리즈에 가까웠다. 일단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유명 배우를 내세웠던 할리우드 버전에 비해 주인공의 임팩트가 약했다. 음모를 추적하는 밀레니엄 잡지의 편집장 미카엘 블룸크비스트 역을 미카엘 니크비스트라는 스웨덴 배우가 맡았는데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다.

이는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할리우드 판이 아니라 스웨덴 버전을 먼저 봤다면 또 다른 의견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할리우드 버전을 먼저 본 것을. 미카엘이 스웨덴에서는 유명 배우인지는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그저 낯선 배우일 뿐이었다.

3부 중에서 1부만 제작된 할리우드 버전은 158분 짜리다. 그에 비해 스웨덴판 밀레니엄 시리즈를 모두 보려면 7시간(1부 152분, 2부 129분, 3부 148분)이 필요하다. 여자 주인공 리스베트의 수난이 주된 내용이었던 1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이후가 궁금하다면 소설을 읽는 방법도 있겠으나 스웨덴 버전 영화로 보는 방법도 있는 것이다.

원작자인 스티그 라르손은 원래 10부작으로 펴낼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3부까지만 마치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할리우드 버전을 통해 2부부터는 다니엘과 리스베트가 팀이 되어 사건들을 처리하나 싶었는데 스웨덴 판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끝까지 리스베트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뿐이었다. 잡지 편집장으로서는 대단한 사건일 수도 있겠으나 관객 입장에서는 그다지였다는 점은 유감이라 하겠다.

사실 할리우드 버전을 보고 나서 도대체 왜 이 소설이 대단하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원작 소설 1편을 사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소설 역시 나하고는 맞지 않았다. 끝까지 읽지 못했고 2편과 3편은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스웨덴 버전을 보고자 했던 것은 그때의 감정을 다시 확인하고자 하는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나 소설이 괜찮았다는 후기도 있는 것을 보면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기는 한가보다.

밀레니엄 제1부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Man Som Hatar Kvinnor,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2009
밀레니엄 : 제2부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Flickan Som Lekte Med Elden, Millennium – the film part2 – The Girl Who Played with Fire
밀레니엄 : 제3부 벌집을 발로 찬 소녀
Luftslottet Som Sprangdes, Millennium – the film part3 – The Girl Who Kicked the Hornet’s Nest
범죄, 스릴러 | 스웨덴, 덴마크, 독일
출연 : 미카엘 뉘키비스트(미카엘 블롬피스트), 누미 라파스(리스베트 살란다)

 

http://blogs.chosun.com/journeyman/2702

악마의 퍼즐을 맞춰라! 밀레니엄

밀레니엄

화제작들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이 영화를 보게되었던가. 굳이 그 이유를 대라면 단연코 제목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밀레니엄’이라는 제목은 뭔가 비밀 결사대를 말하는 듯도 보였으나 그보다는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라는 부제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고 말이다. 저속한 줄은 알지만 이 영화를 대하는 나의 심정은 솔직히 그랬던게 사실이었다.

요즘들어 영화를 선택하기에 앞서 영화 내용에 대해서 사전 조사하는 과정을 생략하다 보니 순전히 제목에 이끌리는 경우가 많았다.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 심오한 깊이의 철학적인 내용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화려한 눈요기를 기대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들인 시간과 비용이 허무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요즘들어 얼마나 많은 영화들이 내게서 시간과 돈을 갈취해 갔던가.

‘밀레니엄’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은 그리 낯선 인물이 아니다. 2006년 ‘카지노 로얄’에 출연하면서 파란눈의 007로 불렸던 인물, 바로 다니엘 크레이그다. 하지만 나는 007의 21번째 작품이었던 그 영화를 보지 않았으므로 그에 대해서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나하고 인연이 없는 것인지 하나같이 보지 못했던 영화들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본 영화인 2001년작 ‘툼 레이더’에서 그의 모습은 아예 기억이 나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안심이 되었던 것은 어쨌든 전혀 모르는 배우는 아니라는 점이었다. 내용도 모르고 보는 영화에 대한 불안이 그로 인해서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와 반대로 그의 출연으로 인해 본의아니게 선입견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007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전력의 배우이다 보니 추리극이고 액션활극일거라는 얼토당토않은 편견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 그런 나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말았다. 추리극이기는 하지만 액션극은 아니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맡은 미카엘 역은 잡지사 편집장일뿐 슈퍼맨이나 배트맨 심지어 제임스 본드로 변신하지도 않았다. 사건을 해결함에 있어 머리를 쓸지언정 몸을 쓰지는 않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 그런 시간을 나름대로 즐겨야 한다는 점이었다. 무려 158분이라는 적지않은 시간 동안.

그래도 이 영화에 대해서는 비교적 호평이 더 많은 편이다. 그도 그럴것이 전 세계 46개국에 걸쳐 6천만의 독자를  사로잡은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니 스토리 만으로도 어느 정도 먹고 들어간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만큼 스토리는 탄탄한 편이다. 이는 영화가 아닌 소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베네스트룀 스캔들이나 방예르가가 살고있는 섬이 마치 실제처럼 비교적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이 영화의 미덕이라면 지루해질 때쯤 한번씩 등장하는 화끈한 베드신이다. 굳이 그 상황에서 그 장면이 필요했을까 싶은, 어찌보면 말초신경 자극을 목적으로 끼워넣은 자극적인 섹스신이기는 하지만 만일 그 장면이 없었다면 지루함에 관객들의 집중력이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비교적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졸다가도 깨어나서 다시 보게되는 효과도 없지 않을게고.

영화 ‘밀레니엄’을 통해서 주목을 받는 인물은 파란눈의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가 아니라 그의 상대역인 리스베트 살란데르 역의 루니 마라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나서 그녀의 자유분방한 매력에 흠뻑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는 그렇지가 못하다. 어쩌면 예쁜 여배우를 선호하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배우 내 관점으로는 개성적이기는 한데 그리 매력적이지는 못하다.

이 영화에서 살란데르라는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중하다. 블롬크비스트라는 인물 혼자서는 버티기 힘들었을 158분이라는 긴 시간을 이끌어 가는 것도 그녀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볼때 블롬크비스트는 24시의 잭 바우어와 닮았다. 테러 진압을 위해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잭이지만 그녀에게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클로이가 없었다면 잭의 확약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잭의 가장 큰 능력은 클로이를 갈구는 능력이라고도 하더만.

많은 분들이 이 영화에서 긴장감을 느끼셨다고 하던데 사실 나는 그렇지가 못했다. 대부분 이런 영화에서 범인은 내부에 있게 마련이고 그것도 주인공과 가장 가까운 인물 가운데 하나일게 뻔하니 말이다. 다만 그 과정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관건이겠는데 나로서는 몇가지 눈요기거리 외에는 별다른 긴장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초반 부분에 졸았던 것도 이유가 되기는 하겠지만.

거기에 덧붙여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라는 자극적인 제목도 다소 불만이다. 서두에 밝혔듯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제목 때문이었는데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활약이 미진(?)해 보였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녀는 어디에’ 정도가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원작처럼 ‘용 문신의 소녀(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로 하던가. 물론 그랬다면 쳐다 보지도 안았을지 모르지만.

이 영화는 두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미국 판이고 다른 하나는 스웨덴 판인데 2009년에 만들어진 스웨덴 버전은 독립영화 취급을 받으며 아트하우스 모모, 필름포럼 등 소극장에서만 상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소설까지 보면 그랜드 슬램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이 작품의 원작자 스티그 라르손은 10편을 계획했지만 3부까지만 쓰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영화는 3부작 중에서 가장 첫편에 속하는 작품이다.

밀레니엄 1부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2011)
스릴러, 드라마 | 미국 , 스웨덴 , 영국 , 독일 | 158분 | 개봉 2012.01.11
감독 : 데이빗 핀처 / 주연 : 다니엘 크레이그(미카엘 블롬크비스트), 루니 마라(리스베트 살란데르)

남자를 울리는 영화 이병헌의 싱글라이더

싱글라이더

 

오를 만큼 올랐다고 생각했다. 가질 만큼 가졌다고도 생각했다. 젊은 나이에 중견 증권사 지점장이 되었으니 조직에서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었고, 아내와 아들을 호주로 조기 유학 보냈으니 아빠로서 할 만큼 했다고 할 수 있었다. 더 바랄 것도 없었다. 그냥 이대로 지속되기만 바랄 뿐이었다. 그 이상의 욕심은 없었다. 영화 싱글라이더의 주인공 강재훈 이야기다.

흔히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고 한다. 살면서 계속 위로 올라가기만 하는 인생은 없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내리막 앞에 서면 당황스럽고 막연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처음 대하는 내리막길이라면 더욱 그렇다. 끝이 없을까 더 두렵기까지 하다. 추락을 거듭하다 재기의 기회도 없이 그대로 소멸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만 하다.

강재훈(이병헌)은 성실한 증권사 지점장이었고 자상한 남편이었으며 상냥한 아빠였다. 누구보다 잘 살아야 할 자격이 있는 남자였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시련이 닥쳤다. 회사의 거짓 정보만 믿고 고객들에게 투자를 권유했던 게 문제였다. 부실한 회사는 오래 버티지 못했고(마치 동양증권을 보는 듯) 투자자들의 돈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고객들의 원성은 당연히 증권사 지점장인 강재훈에게로 향했다.

오르막길이 끝나고 나타난 내리막길에서 강재훈이 떠올린 건 호주에 있는 아내(공효진)와 아들이었다. 아들이 보내준 호주 휴양지 타즈매니아의 영상이 잠시나마 그에게 위안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가족이 보고 싶기도 했고 타즈매니아에서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과 함께 하지도, 그런 곳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살아왔다는 데 대한 후회와 반성이기도 하다.

강재훈은 무작정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난밤 충동적으로 비행기 표를 구매한 후 앞뒤 돌아보지 않고 서울을 떠난 것이다. 일상을 잊기 위해 핸드폰도 집에 두고 왔다. 이제 아무도 강재훈을 찾을 수 없다. 회사는 물론이고 가족들마저 강재훈과 연락할 수 없다. 오직 강재훈만이 그들에게 연락할 수 있을 뿐이다.

위로를 받기 위해 찾아온 길이지만 정작 그를 반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내는 이웃집 남자와 다정하게 지내고 있었고 아들은 그럭저럭 호주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남편이 없고 아빠가 없어도 아내와 아들은 잘 지내고 있는 걸로 보였다. 그러라고 보낸 호주였는데 막상 와서 두 눈으로 확인하니 왠지 억울하기도 하고 그런 아내가 야속하기도 했다.

견실했던 회사도 지점장이라는 직책도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고, 행복한 가정도 파탄의 위기에 놓여있다. 그걸 확인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었는데 이제 강재훈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옆집 남자더러 아내에게서 떨어져 달라고 애원해야 하나, 아니면 호주에 남으려고 하는 아내에게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사정해야 하나.

이제는 월드 스타라는 수식어가 부족하지 않은 이병헌 주연의 ‘싱글라이더'(A single rider, 2016)는 이처럼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남자의 이야기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남자. 현재만 참고 기다리면 더 좋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었던 남자. 소리 내어 울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남자.

이 영화에서 이병헌은 ‘내부자들'(Inside Men, 2015)에서의 안상구와 ‘마스터'(Master, 2016)에서의 진회장과 달리 담담한 연기를 선보인다. 오랜만에 ‘번지 점프를 하다'(Bungee Jumping Of Their Own, 2000)의 서인우로 돌아갔다고 할 수 있겠다. 제작보고회에서 이병헌은 “처음 ‘싱글라이더’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번지 점프를 하다’ 대본을 받았을 당시의 충격과 버금갔다”고 하기도 했다.

결국 강재훈은 홀로 타즈매니아로 향한다. 가족과 함께 가고 싶었던 곳이었지만 혼자 가야 하는 현실을 덤덤히 받아들여야 했다. 옆집 남자에 대한 아내의 감정이나 현지에 직업을 얻어 자리 잡으려고 하는 아내에 대한 오해는 풀렸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남자라면 가장으로서 어깨에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가 새삼 무겁게 다가오기 때문일 게다.

PS : 싱글라이더의 사전적 의미는 일인 탑승객 즉 홀로 떠난 여행객을 말한다.

싱글라이더(A single rider, 2016)
드라마 | 한국 | 97분 | 2017.02.22 개봉 | 감독 : 이주영
출연 : 이병헌(강재훈), 공효진(이수진), 안소희(지나)

일확천금의 꿈과 이병헌 주연의 영화 마스터

마스터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산다. ‘一攫千金(일확천금)’이란 말은 한 번에 천금을 얻는다는 뜻이니 그야말로 떼돈 버는 꿈이라 하겠다. 하지만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다.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돈일 수도 있고 땀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들어가는 게 있어야 나오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흔히 콩 심은 데서 콩 나고 팥 심은 데서 팥 난다고 한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은 식상하기조차 하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헛된 꿈을 좇는다. 먹고살기가 힘들고 세상 살이가 어려워질수록 그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적게 뿌리고도 많이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아니 뿌리지 않고도 거둘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영혼까지 팔겠다고 할는지도 모른다.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은 조건에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혹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과 불안감도 한몫한다. 그런 불안은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이른바 묻지마 투자로 이어지게 만든다. 늦었다는 생각에 무리수까지 두어 가면서 만회하고자 하는 생각에서다.

이병헌 주연의 영화 ‘마스터'(Master, 2016)는 이처럼 유사 수신을 바탕으로 하는 다단계 회사(일명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폰지사기(Ponzi Scheme)다. 시중 은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금리 이자는 물론이고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어마어마한 수수료로 유혹하니 누군들 그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랴.

여기에 진회장(이병헌)의 화려한 언변과 수려한 용모까지 받혀주니 감히 사기로 의심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주변에서 아무리 피라미드라 쓴소리를 해도 들리지 않는다. 평생 고생해도 흙수저 인생인 인간들, 달콤한 꿈이라도 꾸게 해주고 싶었다는 진회장의 말씀이 곧 진리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나만 잘 먹고 잘 살수 없으니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가 되기도 한다.

수익의 근본은 투자다. 투자 없이 수익이 있을 수 없다. 성경에 보면 주인이 먼 길을 떠나기 전 세 명의 하인들에게 각각 5달란트와 2달란트, 1달란트를 준다. 5달란트 받은 하인과 2달란트 받은 하인은 열심히 굴려서 두 배의 수익을 내지만 1달란트 받은 하인은 땅에 묻어두기만 할 뿐이었다. 즉 수익은 얻은 두 명은 투자를 했고, 아무런 수익을 내지 못한 한 명은 투자 자체를 하지 않은 셈이다.

다단계 유사 수신의 경우 고금리를 약속하면서도 수익활동을 하지 않는다. 투자로 돈을 벌어 이자를 주는 것이 아니라 뒷사람이 낸 돈의 일부를 앞사람에게 건네주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는 1920년대 미국 찰스 폰지(Charles Ponzi)라는 사기꾼의 이름을 따서 폰지사기라 부른다. 폰지는 45일 후 원금의 50%, 석 달 후에는 원금의 100%에 이르는 수익을 약속했었다.

영화 ‘마스터’는 서민들의 꿈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그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막대한 다단계 사기를 벌여놓고 죽음으로 위장하는 방식은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조희팔을 떠올리게 만든다. 조희팔은 2004년에서 2008년까지 의료기기 대여업으로 30~40%의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자 3만여 명의 돈 4조 원을 가로챘었다.

이 영화는 이병헌과 강동원이 동시에 출연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두 명의 톱스타에 비하면 김우빈은 차라리 감초에 가깝다. 이병헌은 여전히 매력적인 배우지만 1년 전 개봉한 ‘내부자들'(Inside Men, 2015)과 비슷한 분위를 풍긴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다.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해야지’라는 희대의 유행어를 남겼던 ‘내부자들’ 안상구의 임팩트가 너무 컸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대사 하나. “꿈에는 세금이 없다”라는 말이다. 누구나 꿈꿀 때가 가장 행복할 때일 것이다. 그 꿈에서 깨어나면 참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차라리 깨지 않기를 바랄 지도 모르니까. 언제부터인가 나도 로또를 사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도 허황된 꿈을 좇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로또 당첨번호가 발표될 때까지는 나름대로 희망을 품게 되는 건 사실이니까. 그 종말은 한숨뿐일지라도.

마스터(Master, 2016)
액션, 범죄 | 한국 | 143분 | 2016.12.21 개봉 | 감독 : 조의석
출연 : 이병헌(진회장), 강동원(김재명), 김우빈(박장군), 진경(김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