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작품 관객모독

관객모독1

누구든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묻지 마 폭행’은 이런 과정에서 나온다. 상대방의 의도야 어떻든 상관없이 순전히 자신의 감정에 이끌려 돌이키지 못할 일까지 벌이게 되는 것이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대사로 유명한 영화 ‘달콤한 인생'(A Bittersweet Life, 2005)의 끔찍한 결말도 알고 보면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전적인 의미로 ‘모욕(侮辱)’은 ‘깔보고 욕되게 함’이라는 뜻이다. ‘업신여길 모(侮)’ 자와 ‘욕할 욕(辱)’ 자를 쓴다. 비슷한 의미로 ‘모독(冒瀆)’이라는 말도 있다. ‘말이나 행동으로 더럽혀 욕되게 함’이라는 의미로 ‘무릅쓸 모(冒)’ 자와 ‘더럽힐 독(瀆)’ 자를 쓴다. 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모욕’은 치욕적인 감정인 데 비해서 ‘모독’은 그보다는 덜하다.

제목에서부터 관객들을 자극하는 연극 ‘관객모독’은 사실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고 관객들을 함부로 대한다고 하니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던 터였다. 원작은 196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초연되었고 국내에서는 1978년에 처음 공연되었다고 한다. 벌써 30년을 훌쩍 넘겨 40년에 가까워지는 역사를 자랑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이 연극의 연출자는 기국서로 1978년 초연 때부터 연출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당시에도 무대에 섰었던 그의 동생 기주봉은 이번에도 함께 무대에 서는데 그는 충무로와 여의도에서 명품조연으로 유명한 배우이기도 하다. 이름만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으나 형사반장 전문 배우로 얼굴을 보면 금세 ‘아하’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대단한 기대를 하고 극장으로 향했지만, 초반 부분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단촐한 무대에 오직 의자 4개만 달랑 있을 뿐이었고 배우들의 대사는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힘들게 대사를 외웠을 텐데 왜 저리도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나마 노배우 정재진의 재치있는 몇 마디가 박수와 함께 잠깐의 웃음을 불러올 뿐이었다.

일정한 스토리도 없고 주고받는 대사도 없다. 배우들은 쉬지 않고 떠들어대지만, 기존에 우리가 접했던 형식과는 전혀 다르다. 일종의 실험극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귀를 기울여 보면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포착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이 연극에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말한다. 모욕당할 준비가 되었느냐고.

50여 분의 시간이 흐른 뒤 약 30여 분짜리 막간극이 펼쳐지는 데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극에 대한 대사가 아니라 그저 연극학 개론에나 나올 법한 내용들을 서로 주고받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연극이 완성되고 있었다. 그 충격은 말로는 설명될 수 없는 성격이었다.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라는 감탄사가 터져 나올 정도였다. 여배우가 외치는 ‘극만이’라는 외침이 지금도 귀에서 아른거린다.

작품의 형식을 파괴하면서 시작부터 이미 관객들을 모독했지만, 이 작품은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다시 관객들을 향해 욕을 퍼붓기 시작한다.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러면서 관객들에게도 참지 말고 배우를 향해 욕설을 날리라고 주문한다. 그야말로 욕 배틀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욕을 내뱉지는 못하고 여전히 관조적인 자세에 머무른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입이 열리고 저절로 쌍욕이 터지는 신비한 경험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왜 그렇게 되는지는 비밀.

이 작품을 보러 갔던 날에서는 기주봉, 정재진, 안창환, 성아름, 김태훈이 출연했는데 그중에서 또렷또렷한 발음으로 좌중을 압도했던 성아름의 존재가 눈에 띄었다. 초반 극에 대해서 설명할 때에도 관객들에게 이해했느냐고 묻는 부분이 있는데 어떤 관객이 여배우님이 설명해 주시니 이해가 되더라고 대답할 정도. 하지만 그 대사는 이해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는 점은 함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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