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샌프란시스코의 절망 또는 시카고 컵스의 희망
2회초 2사 1, 2루에서 시카고 컵스 투수 제이크 아리에타가 타석에 들어섰다. 정규 리그에서 65타수 17안타로 타율이 2할 6푼 2리이고 홈런도 2개나 기록하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에이스 메디슨 범가너(타율 1할 8푼 6리, 3홈런)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성적이었다. 범가너에게 시위라도 하듯이 아리에타는 샌프란시스코 선발 투수 범가너의 네 번째 공을 받아쳐 왼쪽 담장을 넘겨버렸다. 범가너가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 24이닝 만에 허용한 실점이기도 했다.
2연패로 벼랑 끝에 몰려있는 샌프란시스코로서는 절망적이었다. 필승의 의지로 에이스 범가너를 내세웠음에도 상대 투수에게 장타 그것도 3점짜리 홈런을 허용했다는 사실이 불길하게 느껴질 만도 했다. 아직 초반이고 2회에 불과하지만 올 시즌 103승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1위에 오른 시카고 컵스는 넘기 어려운 상대로 보였다.
2. 시카고 컵스의 절망 또는 샌프란시스코의 희망
한 점 차 리드를 지키기 위해 컵스에서는 마무리 아롤디스 채프먼을 조기에 투입했다. 무사 1, 2루의 실점 위기였지만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빠른 볼을 던지는 마무리 투수였기에 타오르는 샌프란시스코 타선을 진화시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채프먼은 108년 만의 우승을 위해 컵스가 뉴욕 양키스로부터 모셔온(?) 귀하신 몸이 아니던가.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채프먼은 헌터 펜스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았으니 나머지도 그렇게 잡아내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모두의 눈을 의심할 일이 생겼다. 5번 타자 코너 길라스피의 타구가 센터 깊게 날아갔고 중견수 덱스터 파울러가 잡아보려 했지만 미치지 못 했다. 2루 주자에 이어 1루 주자까지 홈을 밟아 승부가 뒤집어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채프먼이 무너진 것이다.
3. 샌프란시스코의 절망이거나 시카고 컵스의 희망
승리가 눈앞에 있었다. 채프먼을 상대로 3점을 뽑아낸 샌프란시스코는 9회초만 넘기면 4차전까지 끌고 갈 수 있게 된다. 절망 끝에 찾아낸 희망이었다. 하지만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웃 카운트 3개를 책임져주리라 믿었던 네 번째 투수 세르지오 로모가 선두 타자 파울러를 볼넷으로 내보내더니 크리스 브라이언트에게 동점 투런포를 허용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9회말 정규 이닝 마지막 공격에서 샌프란시스코는 2번 타자 브랜든 벨트의 볼넷으로 무사 1루의 기회를 잡았다. 다음 타자는 3타수 3안타의 버스터 포지. 포지는 컵스의 여섯 번째 투수 마이크 몽고메리의 세 번째 공을 받아쳤고 타구는 우측 코너로 날아갔다. 끝내기 안타가 될 것으로 보였던 포지의 타구는 컵스 우익수 앨버트 알모라의 그림 같은 호수비에 잡혔고 이미 스타트를 끊은 1루 주자마저 횡사하게 만들었다.
4. 시카고 컵스의 절망이거나 샌프란시스코의 희망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던 연장 13회. 먼저 기회를 잡은 쪽은 컵스였다. 13회초 선두 타자 에디슨 러셀이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난 후 하비에르 바에즈와 윌슨 콘트레라스의 연속 안타가 터졌다. 1사 1, 2루. 그리고 타석에 대타 크리스 코글란이 들어섰다. 2B2S에서 친 코글란의 타구는 유격수에게로 향했고 소득 없이 병살로 마무리되었다.
샌프란시스코도 13회말에 득점 기회를 잡았다. 선두 타자 브랜든 크로포드가 오른쪽 2루타로 포문을 열었고, 다음 타자 조 패닉의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가 이어졌다. 엎치락뒤치락하며 5시간 동안 펼쳐진 희망과 절망의 대서사시가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5. 드라마 없이 너무 싱거운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
한편, 내셔널리그의 또 다른 디비전시리즈인 워싱턴과 LA다저스 경기에서는 워싱턴이 8:3으로 승리하고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전날 우천으로 취소됐던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인 클리블랜드와 보스턴 경기에서는 클리블랜드가 4:3으로 승리했다. 3연승을 달린 클리블랜드는 역시 3연승으로 텍사스를 꺾고 올라온 토론토와 챔피언십 시리즈를 펼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