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를 침략했다 패퇴했다는 이유로 우리에게는 과소 평가받고 있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평가받는 인물이 있다. 고조에 이어 당나라 2대 황제에 오른 태종 이세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8세의 나이에 옥좌에 오른 당 태종 이세민은 국가 제도를 정비하여 국정을 안정시키고 당나라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창출하는 데 힘써 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으며 ‘정관의 치’라고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룩한 인물이다.
이세민은 한 고조 유방과 위 무제 조조의 기량을 한몸에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방의 호탕함과 뛰어난 용인술, 그리고 조조의 지모와 용병술을 모두 지녔다는 말이다. 그는 자신과 맞섰던 위징을 중용하여 단소리뿐만 아니라 쓴소리 듣기에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과거제도를 통해서 출신을 가리지 않고 유능한 인재들을 등용하였다. 또한, 당시 세계 초강대국이던 이슬람 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겨눌 만한 강건한 국가를 만들기도 했다.
당 태종의 등장은 많은 점에서 조선 태종 이방원을 떠올리게 만든다. 당나라와 조선의 개국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큰 공을 세웠음에도 장자가 아니라는 이유(이세민은 둘째, 이방원은 넷째)로 후계자가 되지 못했고 이후 ‘현무문의 난’을 통해서 형제들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는 과정이 이방원의 ‘왕자의 난’과 흡사하기도 하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처럼 이세민이 후대에도 존경받는 위대한 군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원래부터 영민하고 용맹스러웠으며 언변이 뛰어났기도 했지만 그와 함께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부친을 따라 18세부터 전장터를 누빈 터라 학문을 깊이 배울 기회가 없었으나 황제에 즉위한 뒤에는 문교에 힘을 기울이고 혼란에 빠진 세상을 다스리는 방도에 유념하였으며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그를 위해 태종은 위징, 우세남, 소덕언 등에게 영을 내려 역대 제왕의 치국과 국정운영 사료를 정리해 책으로 편찬하도록 하였다. 그 내용은 1만 4천여 부, 8만 9천여권의 고적에서 선발한 것으로, 위로는 오제부터 아래로는 진대에 이르기까지 6경과 4사, 제자백가에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관련된 핵심내용을 발췌하였으며 총 50권, 50여 만 자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당 태종을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만들어준 책이 바로 ‘군서치요(群書治要)’다. 책이 완성되고 난 뒤, 위징은 서문에서 “후세에 전하여 자손들에게 훌륭한 역사를 거울로 삼을 수 있게 하며, 후세에 전하여 자손들에게 훌륭한 방략을 제시할 수 있는” 치세의 보전이라 하였다. 군왕이 되기 위한 일종의 학습서 혹은 자습서라 할 수 있겠다.
군서치요에 감명받은 태종은 “짐이 어려서 무력을 숭상하고 학업에 정진하지 않아, 선왕의 도는 아득하기가 바다를 건너는 듯했다. 편찬된 이 책을 읽으면서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고 듣지 못한 것을 듣게 되니, 짐이 국가의 안정과 평안을 위한 정치를 펴는 데 옛일을 고찰하여 유익한 적용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의 정무를 처리하면서 의혹이 없어졌으니, 그 수고로움이 참으로 크지 아니한가!”라는 친필조서를 남기기도 했다.
방대한 분량 중에서 문학동네 싱긋에서 발행한 ‘군서치요’는 천도(天道), 덕치(德治), 인의(仁義), 예치(禮治), 악치(樂治), 교육(敎育), 용인(用人), 치정(治政), 민본(民本), 경제-외교군사, 납간(納諫), 이치(吏治), 재난대처, 인과(因果), 우환(憂患) 등 17개 부문으로 나누어 그 일부분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 만으로도 500여쪽이 넘을진대 원서는 얼마나 방대할런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는 ‘뛰어난 군주가 백성을 다스리면 백성은 군주의 존재만 알 뿐이다'(천도), ‘덕으로 정치를 하고 효를 덕의 근본으로 삼는다'(덕치), ‘인을 근본으로 삼고 의로써 다스린다'(인의), ‘나라를 다스리며 예를 잃게 되면 혼란이 찾아온다'(예치), ‘인재를 임용함에 끝까지 믿고 맡기며 간사한 자를 제거함에 머뭇거리지 않는다'(용인), ‘치국의 도는 반드시 먼저 백성을 풍족하게 해야 한다'(민본) 등 오늘날에도 배워야 마땅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한때 사람들은 이 땅의 정치를 이끌어갈 사람이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밖에 없음에 한탄하곤 했었다. 언제까지 3김에 의지해야 하나 하며 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정계에서 물러난 지금은 3김만 한 정치인이 없음에 한탄하고 있다. 오랜 세월 정가에 몸담으면서 자신만의 정치철학과 강력한 카리스마로 정계를 주름잡았던 3김과 달리 시행착오만 거듭하는 초보 정치인들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랬으며 박근혜 현 대통령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리고 다음 대통령 역시 크게 기대되지 않는다. 야권의 선두 주자인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나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 의원 또한 준비된 정치인이라고 하기 힘든 탓이다. 그들 모두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만 힘을 쏟을지언정 정작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었다.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제대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표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도 ‘준비된’이라는 표현을 내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여당 대표나 야당 대표 모두 헛발질만 하고 있을 뿐 현실 감각도 부족하고 국정 운영 능력도 기대하기 어렵다. 대국을 차지하고도 나라와 백성을 위해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당 태종을 마땅히 본받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