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바둑이라는 게 있다. 실력이 떨어지는 하수에게 바둑 돌 몇 개를 미리 놓게 하는 바둑을 말한다. 그래야 중반까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할 수 있게 되고, 끝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처음부터 이미 결정 난 승부라면 바둑을 두는 사람도 재미없거니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도 흥미가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4일 인천에서 벌어진 한화와 SK 전을 보고 있노라면 접바둑을 떠올리게 만든다. 시작하자마자 SK가 넉 점을 거저 받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화 선발 투수 심수창은 SK 선두 타자 이명기와 2번 타자 조동화를 풀 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으로 내보냈고, 3번 타자 최정마저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보냈다. 무사 만루라는 밥상이 거저 차려진 셈이었다.
심수창이 맞은 안타는 단 한 개였다. SK 4번 타자 정의윤은 심수창의 여섯 번째 공을 잡아당겨 좌측 담장으로 넘겨버렸다. 비거리 115m짜리 그랜드 슬램이었다. 볼넷 3개와 안타(홈런) 하나를 허용한 심수창은 즉시 장민재로 교체됐다. 선발로 나와서 단 하나의 아웃 카운트도 잡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간 심수창이 던진 공은 고작 23개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4점을 거저 얻다시피한 SK는 또다시 안타 2개와 볼넷 하나로 2사 만루의 득점 기회를 잡았지만 추가 득점을 뽑아내지는 못했고, 경기는 계속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3회 2사 1-2루, 6회 무사 1루, 1사 2루, 2사 3루, 2사 1-3루, 2사 만루, 7회 무사 1루, 1사 1-2루의 숱한 득점 기회를 맞았으나 단 한 점도 추가하지 못 했다.
물론, SK 타자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무너진 마운드에서도 꿋꿋이 무실점으로 버텨낸 장민재, 박정진, 송창식, 윤규진으로 이어진 한화 계투진을 칭찬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그러나 SK 타자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서두에서 밝혔듯이 4점이라는 적지 않은, 아니 상당히 많은 점수를 거저 얻은 탓이다. 그러고도 손쉽게 이기지 못한다면 분명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비가 오락가락하고 바람도 강하게 불었던 3일 경기에서도 SK 선수들은 집중력이 부족한 모습을 자주 보였었다. 오히려 한화 선수들이 더 근성 있는 자세로 경기에 임했다. 어제오늘 두 경기만 놓고 보면 SK가 어떻게 두산에 이어 2위에 올라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