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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풀어쓴 채근담

채근담2

못된 짓을 하고 남이 알까 봐 겁내는 것은 아직 착함이 그 사람 마음속에 남아서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착한 일을 하고서 바로 알아주기를 바란다면 그 착한 일을 그르치고 도리어 악한 뿌리가 되어 그 사람을 망치고 마는 것이 된다. 잘못하고 곧 뉘우치면 그는 바른길을 찾게 되고 잘하고도 욕심부리면 큰 잘못에 빠지기 쉽다.(爲惡而畏人知하면 惡中猶有善路요, 爲善而急人知하면 善處卽是惡根이니라.) – 채근담 67편

좋은 글을 대할 때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마치 오염되지 않은 아침 이슬을 마시는 것 같고, 그 누구도 다녀가지 않은 연못에 몸을 담그는 것 같은 상쾌함이다. 16세기 명나라 시대에 쓰여진 ‘채근담(菜根譚)’도 그러한 책 가운데 하나다. 동양의 ‘탈무드’라 불리는 이 책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할 기본 도리에 대한 깨우침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채근(菜根)이란 ‘채소(菜)의 뿌리(根)’라는 의미로 중국 송대의 유학자인 왕신민이 ‘사람이 나물 뿌리를 씹어 먹을 수 있다면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다’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무리 궁핍한 삶을 살아도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잊지 말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탐욕으로 가득 찬 이 시대를 향한 가르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여러 번역본이 있지만, 시인 전재동이 편역한 ‘채근담’에는 ‘시로 풀어쓴’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홍자성의 원문을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 형식으로 표현했다는 말이다. 원문 자체가 어록체 형태로 운문의 효과까지 띠고 있으므로 어쩌면 채근담을 담아내는 데 있어서 최적의 표현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쉽게 읽힌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라 하겠다.

앞에서 말한 내용에 대한 다른 표현을 보면 “선한 일을 하는 것은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선행은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진정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거짓으로 선한 일을 하다 보면 결국은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기 때문이다.”처럼 다소 딱딱한 훈계처럼 들리는 데 비해서 ‘시로 풀어쓴 채근담’의 내용은 친숙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지나친 의역으로 인해 어디까지가 원문의 내용이고 어디부터가 해설을 위해 보충한 부분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원문의 내용을 확인하려면 하단의 원문을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가령 전집 137편을 보자. ‘爵位不宜太盛(작위불의태성) 太盛則危(태성칙위) 能事不宜盡畢(능사불의진필) 盡畢則衰(진필칙쇠) 行誼不宜過高(행의불의과고) 過高則謗興而毁來(과고칙방흥이훼래)’.

이는 곧, “벼슬은 지나치게 성해서는 안 되니, 지나치게 성하면 곧 위태롭다. 능한 일은 힘을 너무 다 쓰지 말아야 하니, 지나치게 소비하면 곧 쇠퇴한다. 행실은 너무 고상해서는 안 되니, 너무 고상하면 비방이 일어나고 헐뜯음이 다가오리라.”로 해석되는데 ‘시로 풀어쓴 채근담’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벼슬이 너무 높으면 위태롭다. 능한 일에 모든 힘을 쓰지 마라. 다 쓰고 한계점에 이르면 남은 길은 쇠퇴뿐이다. 관직이 높으면 위해가 생기고 능력 발휘도 다 하고 나면 인기가 떨어지고 만다. 세속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라. 경주 최부자 가훈에 벼슬은 진사까지만 하고 재산은 만석까지만 가지라 했다. 이는 세상과 조화를 이루어 살자는 것이다.” (P146)

분명 매끄럽게 읽히기는 하는데 이래도 되는 것인지 확신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채근담은 채근담인데 채근담이라고 해도 되는지에 대한 혼란스러움 때문이다. 이번에는 ‘恩裡由來生害(은리유래생해) 故快意時須早回頭(고쾌의시수조회두) 敗後或反成功(패후혹반성공) 故拂心處莫便放手(고불심처막편방수)’라는 전편 10편을 보자.

이는 “은혜로운 속에서 재앙은 싹터 나온다. 그러므로 마음에 만족할 때 모름지기 머리를 돌려야 한다. 실패한 뒤에 혹 도리어 일이 이루어지는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마음에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여 문득 손을 놓아 버려서도 안 되리라.”라는 말로 해석되는 데 비해서 ‘시로 풀어쓴 채근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인의 은총이 두터우면 시기와 질투를 부르고 드디어 몸이 위험해지기 쉽다. 그러니 속히 머리를 돌려라. 몸의 영달에 미련 두지 말고 물러나라. 실패의 쓴잔 뒤에 성공한 이가 많다. 그러니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해서 속히 포기하지 마라.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일어나야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다. 다 이루었다 느낄 때는 빨리 돌아서라. 누리고 있다가 불화를 만날 수 있다. 늘 깨어 조심하고 실패해도 다시 하여라” (P19)

이 책의 추천사는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가 맡았다. 그는 추천사에서 기독교적 시각으로 해석된 ‘시로 풀어쓴 채근담’을 통해 참 행복의 길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본문 어디에서도 기독교적 시각이라고 볼만한 내용은 없었다. 기독교 서적도 아닌데 억지로 꿰어맞춘 듯한 추천사를 보니 눈살이 찌푸려질 뿐 더러 혹여나 그의 명성을 이용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닌지 씁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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