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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블랙홀

사랑의블랙홀8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컵에 반정도 담겨있는 물을 보고 ‘에게 요거밖에 안 남았네’하며 아쉬워하는 사람과 ‘아직 이만큼이나 남았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전자는 부정적인 시각을 대변하고 후자는 긍정적인 시각을 대변한다. 물이 아니라 시간으로 바꿔도 그 의미는 동일해진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못한다는 사람과 시간이 이만큼이라도 남아있으니 할 수 있다는 사람이 되겠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매사에 삐딱한 필(빌 머레이)은 모든 게 못마땅하다. 출중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조그만 TV방송사에서 기상 통보관으로 일하는 것도 그렇고 추운 날씨에 별 볼 일 없는 작은 시골 마을에 가서 취재를 해야 한다는 것도 불만이다. 자기 정도의 실력이면 더 큰 방송사에서 더 대단한 프로를 맡고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그저 짜증스러울 뿐이다.

필이 취재를 떠난 곳은 펜실베니아 펑추니아 마을이다. 매년 2월 2일이면 열리는 성촉일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이날은 마못이라고 하는 동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그림자를 보게 되면 봄이 늦어지고 겨울이 더 길어진다는 전설에 따라 진행되는 행사다. 자신 같은 거물(?)이 촌구석에서 이런 하찮은 행사나 취재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저 한심할 따름이었다.

그러니 갑작스러운 폭설에 길이 막혀 발이 묶여야 했을 때의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게다가 그 지긋지긋한 성촉절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으니 가뜩이나 불편한 심기가 폭발할 지경에 이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전 6시 라디오 알람과 함께 필이 눈을 뜨고 맞이하는 날은 매일 같은 날이었던 것이다.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았지만, 필이 만나는 세상은 언제나 2월 2일이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필은 하루하루를 허송할 뿐이다. 내일이 없으니 희망도 없고 의미도 없다. 촌구석에 틀어박혀서 보내야 하는 날들이 지루하기만 하다. 그런 그에게 우연히 만난 술친구가 들려준 이야기가 바로 컵에 든 물 이야기다. 내일이 없으니 걱정도 없고 숙취도 없으니 마음껏 살아도 되겠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필은 실행에 옮긴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어차피 결과는 똑같으니 우울하게 지낼 필요가 없었다.

1993년 작 ‘사랑의 블랙홀’은 이렇듯 하루를 반복적으로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다. 절망에서 희망을 찾은 사나이는 반복되는 매일을 즐기는 방법을 찾게 되고 결국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법을 깨닫게 된다. 절망이라고 생각했던 마법이 풀리는 날 폴은 상당히 멋진 남자가 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연인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었다. 저주가 준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의 묘미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변화다. 오늘 낸시라는 여자의 신상정보를 파악해서 내일 낸시를 꼬시는데 써먹기도 하고 오늘 현금수송차 경로를 파악해서 내일 털기도 한다. 리타에 대해서도 하나씩 알아내서 마치 예전부터 그랬던 듯 연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은 다음에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게 되면서 늘 불만스러웠던 세상이 살만한 세상으로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오랫동안 별러올 정도로 꼭 보고 싶었던 영화 중의 하나였었다. 하지만 좀처럼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 어디에서도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DVD는 절판 상태였고 굳다운로드를 통해서 유료로 구매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돈 주고 사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니 우연히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얼마 전 KBS 1TV 명화극장에서 해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번에 놓치면 언제 또 기회를 잡을 수 있을런지 기약할 수 없는 일이니 닥치고 본방사수를 외쳐야 했다. 명화극장의 묘미는 더빙에 있다. 필 역을 맡은 빌 머레이의 목소리는 배한성이 맡았고 그의 상대역 리타의 목소리는 송도영이 맡았는데 송도영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매력적이다. 영화를 더욱 감미롭게 볼 수 있었던 요인이라 하겠다.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1993)
멜로/애정/로맨스, 코미디, 판타지 | 미국 | 101분 | 1993.12.04 개봉 | 감독 : 해롤드 래미스
출연 : 빌 머레이(필 코너), 앤디 맥도웰(리타), 크리스 엘리어트(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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