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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좀비가 아닌 세균재난으로 읽히는 영화 월드워z - Journeyman이 바라본 세상
좀비가 아닌 세균재난으로 읽히는 영화 월드워z

월드워z2

잘 만들어진 컬트영화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좀비 영화에 불과한가. ‘월드워 Z(World War Z, 2013)’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대하는 자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컬트적인 분위기 속에 열광적인 광신도를 양산하는가 하면 남량특집성 좀비 영화라는 생각에 시큰둥한 반응도 적지 않다. 꼭 봐야 한다며 침을 튀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절대 보지 않겠노라며 다짐하는 사람도 상당수다.

말하자면 나는 후자에 속한다. 빈약한 스토리에 이따금 보는 이로 하여금 경기만 일으키게 만드는 좀비 영화는 딱 질색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고 해도, 출연진이 화려하다고 해도, 재미있다고 난리들이어도 좀비 영화라면 일단 접고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돈 내고 내 시간 들여가면서 스스로를 학대할 이유가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잠이나 자고 말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재난 영화도 마찬가지다. 좀비 영화 만큼이나 억지로 가득한 탓이다. 재난이 발생하는 것도 그렇고 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눈물의 감동도 그렇고 재난을 극복하는 결론도 마찬가지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세상은 오직 주인공을 위해서만 돌아간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런 영화를 보느라 들인 돈도 돈이지만 시간이 더 아깝다.

그런데 이 영화 묘하다. 그렇게도 싫어하는 좀비 영화이건만 재미있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나름대로 스릴을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이 놀라울 정도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재난영화이기도 하다. 좀비 영화에 재난영화. 내가 싫어하는 두 장르가 합쳐진 셈이다. 그런데도 재미있다니. 도대체 무슨 영화이길래, 그리고 어떤 영화이길래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영화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원인 모를 이유에 의해 사람들이 좀비로 변신하기 시작하고 좀비들이 시민들을 공격하면서 도시 전체가 통제 불능 상태의 좀비화 되어간다는 지극히 평면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다. 물론 주인공의 생사를 뛰어넘는 활약으로 치료제를 개발하게 되고 인류를 좀비의 공포에서 구해낸다고 하는 부분도 다른 좀비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 도대체 이 영화는 무엇 때문에 특별하다는 말인가.

사실 이 영화는 좀비 영화라고 할 수 없다. 물리자마자 좀비로 변신하게 만드는 무지막지한 존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좀비 영화라기 보다는 사실상 바이러스에 의한 재난 영화에 가깝다. 좀비의 습격은 바이러스가 퍼져가는 과정과 닮았다. 인간의 힘으로는 항거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어쩌면 바이러스의 공포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좀비만큼이나 적절한 존재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다른 좀비 영화와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는 좀비로 표현되었을 뿐이므로 다른 좀비 영화에서 느껴야 했던 역겨움이나 억지스러움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비슷한 영화로 ‘디스트릭트 나인(District 9, 2009)’이 있다. 이 영화는 지구에 투항한 외계인에 대한 지구인의 차별을 그리고 있지만, 외계인을 흑인으로 바꾸면 인종차별이라는 문제의식은 더욱 분명해진다.

물론 약점도 있다. 재난 영화이므로 영웅담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 제리 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 역시 좀비들이 생기게 된 이유와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산 넘고 물 건너 죽을 고생을 다 한다. 그러면서도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결국에는 백신을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재난영화의 전형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볼만하다.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영화 ‘배틀쉽(Battleship, 2012)’에 빠져드는 것과 같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서 한국에 대한 부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남과 북이 모두 언급된다. 남한은 좀비가 최초로 언급된 보고서가 올라온 곳이고 북한은 좀비들을 효과적으로 물리친 유일한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제리가 미군기지가 있는 평택을 가장 먼저 찾는 이유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유포지가 한국이라던 영화 ‘아웃브레이크(Outbreak, 1995)’가 생각나게 만들지만 반응은 그때와 다르다. 의식이 성숙해진 것일까, 아니면 불감증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월드워 Z(World War Z, 2013)
드라마, 스릴러, SF, 액션, 모험 | 미국 | 115분 | 2013.06.20 개봉 | 감독 : 마크 포스터
출연 : 브래드 피트(제리 레인), 미레일 에노스(카린 레인),  다니엘라 케르테스(세겐), 파나 모코에나(티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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