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작 ‘관상’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스파이’를 밀어내고 단숨에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첫 주말 대결에서 ‘관상’은 780,149명의 관객을 불러들여 163,442명에 그친 ‘스파이를 멀찍이 따돌렸다. 누적관객수에서도 개봉한 지 사흘밖에 되지 않은 ‘관상’이 1,917,229명인데 비해서 일주일이나 먼저 개봉한 ‘스파이’는 1,511,661명에 머물고 있다.
당분간 뚜렷한 경쟁작도 없는 상태이므로 ‘관상’의 독주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송강호, 김혜수, 이정재, 백윤식, 조정석, 이종석 등 초호화 캐스팅에 나름 흥미로운 소재의 팩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관상’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 할 것이다. 내가 ‘관상’의 개봉과 동시에 극장을 찾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심한다면 깜짝 놀랄 수도 있으니 조심할 필요도 있다.
첫째, 러닝타임이 두 시간이 넘어?
요즘 영화들의 러닝타임은 대개 100분 내외다. 그 시간을 넘어가면 우려가 앞서는 게 사실이다. 너무 많은 얘기를 해야 해서 길어진 경우도 있지만, 정리가 안 돼서 늘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관상’의 러닝타임은 139분이다. 저녁 8시 30분에 시작되는 영화의 종영시간은 11시 3분이었다. 시작 시간만 보고 예매했다면 끝나는 시간을 보고 난처해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관상’은 그렇지를 못하다. 주인공 내경(송강호)의 활약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필요 이상으로 확대하려다 보니 우연이 난무하고 스토리는 핵심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길어진 것이 아니라 정리가 안 돼서 늘어진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둘째, 코미디야 아니면 사극이야?
사실 송강호가 출연한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봐야 했지만 ‘관상’은 사극이라기보다는 코미디에 가까워 보인다. 중반 이후 수양대군이 등장하면서 팽팽한 긴장이 시작되지만, 송강호, 조정석이 펼치는 내경-팽헌 콤비는 싸구려 코미디를 남발한다. 그나마 조정석의 연기는 감초처럼 감칠맛이라도 나지만 송강호의 연기는 그렇지를 못하다. 주인공으로서 진중한 맛이 없다는 점은 영화를 가볍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화제작 ‘건축학 개론'(2012)에서 납득이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조정석은 ‘관상’에서도 특유의 넉살 연기를 마음껏 펼쳐 보인다. 나이 먹은 납득이를 보는 듯 자연스러웠다. 반면 송강호는 딱 예상한 만큼이었다. 조정석의 연기는 다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어 보였지만 뭔가 아쉽게만 느껴지는 송강호의 연기는 다른 배우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게 만든다. 코미디라면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사극이라면 그렇지 않은 셈이다.
셋째, 이정재가 나온다고?
영화 포스터를 보았거나 대강의 영화 정보를 읽어 보았거나 출연진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정재의 출연이 당연하게 생각되겠지만 그러한 사전 정보 없이 보러 간 입장에서는 이정재의 등장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도 이정재의 등장은 영화가 시작된 지 1시간이나 지나서야 나온다. 영화 ‘신세계’로 상종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관상’에서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문종의 명을 받아 각 대군들의 관상을 보러 다니는 내경(송강호)이 수양대군(이정재)과 만나는 장면이다. 조선 최고의 관상쟁이 내경이라면 수양대군에게서 모반을 읽어내지 못할 리 없을 텐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내경은 그럴 위인이 못 된다며 문종에게 보고한다. 수양대군이 다른 이를 내세워 내경을 속였던 것. 나중에 이정재가 등장할 때 내경도 그랬지만 관객인 나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러 갔기에 얻을 수 있었던 짭짤한 수확이었다.
넷째, 광해 짝퉁 아냐?
‘관상’은 여러모로 흥행작 ‘광해(Masquerade, 2012)’와 비교된다. 2012년 9월 13일에 개봉된 개봉 시기(관상은 2013년 9월 11일 개봉)도 그렇고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결합한 팩션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사건의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다. 이 점은 의외로 크게 작용해서 ‘관상’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만다.
즉, ‘광해’는 광해군의 치적이 사실은 광해군이 아니라 광해군을 닮은 하선의 작품이었다는 상상력으로 신선한 재미를 안겨주었으나 ‘관상’은 이미 역사적으로 알려져 있는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므로 흥미가 반감된다. 그러다 보니 ‘광해’의 하선이라는 허구적 인물처럼 내경이라는 인물을 부각시키려 애쓰고 있으나 주제의식이 분명하지 않다 보니 전체적으로 산만할 뿐이다.
관상
드라마 | 한국 | 139분 | 2013.09.11 개봉 | 감독 : 한재림
출연 : 송강호(내경), 이정재(수양대군), 백윤식(김종서), 조정석(팽헌), 김혜수(연홍), 이종석(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