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찬사를 쏟아내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침을 튀기면서 비난하는 부류도 있다. 그 사이에 중간은 없어 보인다. 따지자면 나는 후자다. 그의 영화를 보고 나서 개운했던 적이 없었고 오히려 불쾌한 기분으로 극장문을 나서야 했던 기억이 그의 안티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헐리우드 자본이 투자된 영화는 다를까?
영화는 감독 혼자 만의 작품이 아니다. 물론 김기덕 감독이나 홍상수 감독처럼 시나리오와 연출 그리고 카메라까지 직접 개입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으나 대부분의 영화들은 그렇지 못하다. 시나리오를 위한 작가가 있고 카메라를 담당하는 카메라 감독이 있는 상황에서 감독은 그저 현장에서 연출을 담당할 뿐이다. 영화에 투입되는 인원이 수십 명에서 수백 명에 달하니 영화는 감독 혼자가 아닌 그들 모두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와 달리 작가주의(作家主義)라는 말은 그런 환경에서도 영화에서 중심적인 인물은 감독이며 따라서 감독은 작가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개념을 적용한 이론이다. 영화에서도 만든이의 개성이 반영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작가주의 영화란 ‘감독의 개성이 잘 드러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서스펜스 장르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알프레드 히치콕이다.
박찬욱 감독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느닷없이 작가주의를 꺼내 든 것은 박찬욱표 영화에 대한 표현의 한계 때문이다. 그가 연출을 맡았다고 해서 박찬욱표라고 하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한국에서도 아니고 물 건너 헐리우드로 가서 외국 자본으로 외국 배우와 함께 외국인이 쓴 극본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해도 그래야 하는가. 그래도 되는가.
혼란스러운 일이다. 개인적인 성향으로는 박찬욱표 영화라면 외면하는 게 맞을진대 위와 같은 이유가 겹치다 보니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다. 헐리우드 자본으로 만들어진 김지윤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The Last Stand, 2013)’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Snowpiercer, 2013)’와 달리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Stoker, 2013)’만 외면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박찬욱 감독의 헐리우드 진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스토커’에 대해서는 박찬욱 감독에 대한 평가처럼 극과 극으로 나뉜다. 역시 박찬욱 감독은 어쩔 수 없다는 실망도 있지만 역시 박찬욱 감독은 대단하다는 찬사도 있다. 그러한 찬사에는 극본의 엉성함을 지적하면서 열악한 극본으로 이 정도의 완성도를 뽑아낸 것은 박찬욱 감독의 역량이라며 칭찬하기도 한다.
애당초 영화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박찬욱표 영화는 그를 아끼는 절대적인 지지층과 그를 비난하는 절대적인 안티로 나뉠 수밖에 없는 숙명 때문이다. 영화를 영화로 평가하기보다는 박찬욱이라는 인물을 개입시켜서 평가하기 마련이다. 영화가 재미있고 재미없고를 말하기보다 박찬욱 영화에 대한 평가가 앞선다. 그의 한계이기도 하고 그의 영화의 한계이기도 하다.
어쨌든 ‘스토커’는 그리 잘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세계적인 배우 니콜 키드먼이 타이틀 롤을 맡았지만, B급의 향취가 물씬 풍긴다. 이를 박찬욱표 영화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억울해 보인다. 문제는 연출이 아니라 시나리오인 탓이다. 억지 설정과 억지 전개로 일관하다 보니 99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러닝타임도 무척 지루하게 만들고 있었다. 극본이 그 모양이니 연출로 커버하기에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여전히 선입견은 계속된다. 박찬욱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적지 않은 무게 때문일 게다. 그러고 보면 편견이란 대단히 무서운 감정이다. 그 어떤 이유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이유에서다. 지난 2013년 2월 23일 개봉된 ‘스토커’는 누적관객수 378,874명의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이쯤 되면 박찬욱표의 한계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것도 편견일 테지만 말이다.
스토커(Stoker, 2013)
스릴러 | 미국, 영국 | 99분 | 2013.02.28 개봉 | 감독 : 박찬욱
출연 : 미아 바시코브스카(인디아 스토커), 매튜 구드(찰리 스토커), 니콜 키드먼(이블린 에비 스토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