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가야겠어’
대입선발고사를 일곱 달 남겨두고 한 결심이다. 나는 그때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로 내 용돈은 물론 생활비까지 보태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캐나다 선교사 덕분에 할 수 있었던 영어 번역과 통역이 가장 큰 돌벌이 종목이었다. 그 외에도 초등학교 학생들의 과외선생, 임시 세무공무원, 클래식 음악실 DJ 등 시간이 허락하는 한 다양한 일을 했다.
번역일은 하이틴 문고용 연애소설이었는데, 나는 고졸이라는 이유로 대학생 아르바이트에 비해 번역료를 반밖에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을 고정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만도 감지덕지하며 부당한 대우를 짐짓 모른 체하고 있었다.
번역의 내용은 대개 멋진 여자와 멋진 남자가 멋진 곳에서 만나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는 뻔한 내용이었지만 나는 나름대로 어휘력과 문장력을 총동원해 번역하면서, 재미도 느끼고 곧 자신감도 얻게 되었다. 이제는 슬슬 이 ‘반값대우’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언니, 내가 번역한 건 다시 손볼 것도 없다면서?”
“그래, 네 번역이 아르바이트생 가운데서 제일 좋다고 하던데.”
“그러니까 내 번역료, 대학생들 하고 똑같이 쳐줘요.”
“얘는, 나도 그러고 싶지만 넌 대학생이 아니잖아. 출판사에도 규정이 있는데 …”
규정. 이게 말로만 듣던 ‘대학물값’이란 건가.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실력이나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애초부터 이 사회에 그어져 있는 선. 이것이 언니가 말하던 규정이었다.
난 자신이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은 고등학교면 충분할 것이라고. 그 후의 알차고 풍요로운 삶은 학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위해 얼마나 스스로 노력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곰곰 생각해 보았다. 이후에도 고졸자로서 당당하게 사회적인 편견과 부당한 대우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아니 그 벽을 뛰어넘을 자신이 있는가. 며칠 뒤 나는 대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 한비야,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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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사들의 학력위조 문제가 연일 신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어떤이는 실력보다는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를 탓하고 또 다른이는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속인 부도덕함에 분노하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와도 같은 학벌지상주의는 분명 청산되어야 할 악습임에는 분명합니다. 실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제도라는 틀 안에서는 제대로 대우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으로 유명한 바람의 딸 ‘한비야’님은 고등학교 졸업 5년만에 대입에 도전합니다. 세상을 탓하며 제도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에 맞는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지요. 벽 아래에서 절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벽을 뛰어넘기 위해 도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
승자와 패자의 차이는 단순한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열정의 차이라고 했던 영국의 교육자 토머스 아널드(Thomas Arnold, 1795~1842)의 말이 새삼 가슴을 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