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시장은 어디나 시끌벅적하기 마련이다.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현장이기 때문일게다. 권태로운 업무와 삶에 지친 직장인들과 침체된 분위기 때문에 고민하는 회사들에게 제안을 제시하는 책이라는 ‘펄떡이는 물고기처럼'(FISH!, 2000)의 배경이 시애틀에 있는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Pike Place Market)인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런 요란한 소음의 많은 내용 중에는 흥정이 빠질 수 없다.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판매자와 조금이라도 더 깎으려는 구매자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소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여기에 목청 높여 외치는 호객행위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시장바닥이 되고 만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고 경험도 많은 사람이라면 즉석에서 흥정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살 것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비싼 돈 주고 사는 것은 아닌지 수산시장까지 와서 바가지를 쓰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수산시장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하지만 영흥도 수산물직판장은 달랐다. 지나가는 사람을 목청껏 불러대는 호객행위가 없다 보니 요란함도 없어졌을뿐더러 차분히 둘러볼 수 있는 환경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막무가내로 끌려 들어갈 걱정도 없고 이끌리다시피 들어가서 마지못해 주문해야 하는 상황도 없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가 가능해진 것은 영흥도 수산물직판장에서 실시하고 있는 정찰제 덕분이었다. 흥정이 사라지고 어디서나 같은 값을 받다 보니 공정경쟁의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호객으로 사람을 불러들이고 부르는 게 값이던 불공정 시대는 지나고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 모두가 투명하게 공개된 정보에 의해 거래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이란 말인가.
직판장에서 찾은 ‘원주민 수산’이라는 집에 걸려있는 가격표가 이를 증명한다. 광어와 우럭의 경우 kg당 양식은 4만 원이고 자연산은 5만 원이었다. 가격이 걸려있으니 불필요한 흥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메뉴를 고를 뿐 얼마인가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서비스로 주는 해삼과 멍게의 양이 말 한마디에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대세에는 변함이 없다.
어쩌면 인심 사납다고 할런지도 모른다. 서비스로 알고 있는 매운탕도 별도 1만 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가 피곤하게 흥정하지 않고 깨끗한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인 부분이었다. 그날 우리 일행이 먹은 것은 자연산 광어 2kg짜리 큰놈 하나와 산낙지 두마리 그리고 소주, 맥주 각 한 병씩 해서 117,000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