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락 칼국수가 전국적인 별미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드라마의 영향이 컸다. 80년대 후반 MBC 인기드라마 ‘보고 또 보고’에서 허준호(기풍)가 윤해영(금주)을 꼭 안으며 비 오는 날은 제부도에 바지락 칼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말하던 대사가 그 시초라 할 수 있겠다. 아무튼, 비가 오든 말든 바람이 불든 말든 서해에 가면 바지락 칼국수부터 먹고 볼 일이다.
탄도항은 대부도 남쪽에 있는 항구다. 불도, 선감도와 함께 대부도와 방조제로 이어지면서 연육도가 되었다고 한다. 탄도항은 요트축제가 열리는 전곡항과 탄도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모양새다. 탄도항이 있는 방조제 이쪽이 행정구역상 안산시라면 방조제를 건너 저쪽 편은 화성시다. 방조제 이편의 대부도가 안산시라면 방조제 저편의 제부도는 화성시인 것이다.
선재도에서 탄도항까지 달렸던 것은 선재도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영흥도 수산시장에서는 회를 먹을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았었지만, 선재도 윈드빌(바람의 마을)에서의 숙박과 상업화된 목섬에 그만 정나미가 떨어지고 말았다. 늦은 아침과 이른 점심을 선재도에서 해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찾아 나선 곳이 바로 탄도항이었던 것이다.
탄도항 수산물직판장은 끝내주는 전망을 자랑하고 있었다. 1층에서 메뉴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가면 왼쪽으로 전곡항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누에섬이 보인다. 특히 누에섬은 제부도처럼 바닷길이 열리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하루 두 번 4시간씩 열린다고 한다. 2층 난간에는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있으므로 난간에 기대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경치를 감상할 수도 있다.
누에섬은 해무가 많이 끼기 때문에 햄섬(해미섬)이라고 불렸으며 누에처럼 생겼다고 하여 누에섬이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이 섬에는 두 가지의 볼거리가 있는데 하나는 바닷길을 따라 늘어선 풍력발전기(풍차)이고 다른 하나는 등대전망대다. 누에섬에 들어가려면 물때를 확인해야 하므로 가급적 시간을 조절할 필요가 있겠다. 식사를 먼저 하던지 누에섬을 먼저 다녀오던지 하는 결정은 물때가 정해줄 것이다.
바지락 칼국수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뜻하지 않았던 메뉴가 눈길을 끌었다. 주변의 예약손님이 주문했다는 조개찜이었다. 바지락 칼국수만 생각하고 온 탓에 다른 메뉴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었는데 막상 조개찜을 직접 보니 강하게 당기는 구미를 어찌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조개찜의 비주얼은 환상적인 수준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조개찜을 맛봐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까지 솟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문이 이미 들어간 상태라 변경은 어렵고 굳이 먹겠다면 추가로 주문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대식가라 해도 적지 않은 양의 바지락 칼국수와 조개찜을 모두 먹기에는 무리가 아닐 수 없었고 예산 문제도 고려해야만 했다. 그저 입맛만 다시면서 다음을 기약할 뿐이었으나 그나마도 바지락 칼국수를 먹으면서 어느 정도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다.
탄도항 바지락 칼국수에는 배추김치 대신 갓김치와 열무김치가 딸려 나온다. 갓김치의 쌉싸름한 맛과 열무김치의 시원한 맛으로 기억되는 곳이라 하겠다. 누에섬을 바라보며 갓김치와 열무김치에 곁들여 먹는 바지락 칼국수의 맛, 이 하나만으로도 탄도항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물론 다음에 갈 때는 조개찜을 꼭 먹어야겠다고 다짐하며 돌아서기는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