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끝났습니다. 카메라에 기록된 파일 수는 400을 넘습니다. 중간에 지운 것을 포함하면 500번 이상 셔터를 눌렀겠지요. 셔터를 누르기 전 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판단을 했을 테고 거기에 시간과 심력이 들어갔을 겁니다.
중요한 건 내가 여행을 가서 뭘 했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내 속에는 아무것도 담지 못하고 카메라만 들여다보다 온 꼴입니다. 여행을 다녀온 건 내 카메라이지 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디 여행을 갔다 오면 남는 건 사진밖에 없더라”는 말을 흔히 합니다. 정작 그 사진이라는 것에 내가 담겨 있지 않으니 누가 찍어도 똑같을 사진이지요.
다음 여행에는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풍경이 꼭 필요하면 엽서를 사지요, 뭐. 그 엽서를 친구들에게 부치면 사진 파일 받는 것보다 훨씬 반가워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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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설때면 의레 카메라부터 챙기게 됩니다. 기억은 짧지만 기록은 영원하다는 소신때문이겠지요. 필름 카메라를 쓸때는 카메라에 필름이 들어있나만 챙기면 됐었는데 디지털카메라를 장만하고 나서는 메모리와 배터리, 충전기도 같이 챙겨야 합니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카메라는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탓입니다.
여행길에 전망 좋은 곳에 이를때면 그 경치에 빠져 편안히 감상하기 보다는 카메라를 꺼내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모습도 찍고 하늘도 찍고 꽃도 찍습니다. 맑으면 맑은대로 흐리면 흐린대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담고 싶다는 욕망으로 셔터를 누르곤 합니다.
하지만 돌아와서 지난 여행을 떠올릴때면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은 많지 않고는 합니다. 지나온 길들을 가슴에 담아두기 보다는 사진에 담아두었기 때문입니다. 찍어온 사진을 통해 여행길에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뒤늦게 느끼곤 합니다. 앞뒤가 바뀐 것이지요.
그렇다고 여행길에 카메라를 안가져갈 수 있을까요? 저로서는 작지않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여행의 감동을 가슴에 담아오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카메라에 담아오고 싶으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