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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의 서로 다른 세상, 신세계

신세계6

범죄자가 주인공인 영화나 드라마는 그리 유쾌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아무리 허구의 내용이라 할지라도 보고 나서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 없거니와 현실을 반영한 작품이라면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극장 문을 나서기도 무섭기 때문이다. 외화라면 그럴 수 있으려니 하겠지만,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라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요즘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한참 상한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하정우 주연의 ‘추격자(The Chaser, 2008)’도 그랬다. 이웃집의 그저 평범해 보이던 청년이 사실은 잔인한 연쇄 살인범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란 말인가. 극 중에서 하정우가 맡았던 지영민이 김미진(서영희)의 관자놀이에 정을 대고 망치로 내리치려고 했을 때의 그 소름 돋는 장면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찜찜한 기억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영화 ‘신세계’에 대한 첫인상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홍콩 영화 ‘무간도(無間道: Infernal Affairs, 2002)’와 같은 소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필히 핏빛 폭력이 난무할 것이고 험한 욕설이 가득할 것으로 예상되는 탓이다. 홍콩을 배경으로 하는 ‘무간도’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데 비해서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절대 객관적일 수 없다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영화 묘하다. 예상한 대로 험한 말이 오가고 눈을 감고 봐야 할 정도로 끔찍한 장면도 없지 않은데 개봉 이후 연일 구름 관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개봉 일주일 만에 ‘7번방의 선물’의 기세에 눌려 상승세가 꺾인 ‘베를린(The Berlin File , 2012)’에 비하면 오히려 독주체제에 들어간 듯도 하다. 단순히 조폭 영화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설명이 부족해 보이는 이 영화에는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당초 ‘신세계’를 ‘무간도’에 비유했던 것은 ‘내부의 적’이라는 설정 때문이었다. ‘무간도’에서는 양조위가 경찰 신분으로 조직에 잠입한 진영인 역을 맡았고 그에 맞서는 유덕화는 조폭 출신으로 경찰이 된 유건명 역을 맡았다. 즉, 양조위는 경찰이자 조폭이고 유덕화는 조폭이자 경찰인 셈이었다. 필연적으로 서로의 정체가 언제 어떻게 밝혀질지가 핵심일 수밖에 없다.

‘신세계’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2인자인 정청(황정민)의 오른팔 이자성(이정재)이 사실은 경찰이 심어놓은 스파이라는 설정은 스포에 해당될 만큼 중요한 부분이지만 ‘무간도’와 같은 내용이라는 소문 때문에 맥이 풀리기는 했다. 마치 누가 범인인지를 알려주고 시작하는 추리소설 같기도 하고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 1995)’를 보기 전에 ‘절름발이가 범인이다’라는 외침을 듣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누가 스파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첫 장면부터 정청 휘하의 조직원들이 경찰의 끄낙풀이를 찾기 위한 린치가 시작되지만 결국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가 아니라 ‘그래서 뭐?’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영화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 임무인 줄로만 알았던 이자성은 또다시 상부로부터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고 괴로워하지만 끝내 경찰이 쳐놓은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 영화의 매력은 완벽에 가까운 스토리다. ‘베를린’이 탄탄한 스토리보다 현란한 액션을 강조했다면 ‘신세계’는 액션보다는 스토리에 더 치중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가끔 이해하기 힘든 상황(송지효의 단독 플레이와 같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요즘 한국 영화들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빈약한 스토리에 대한 문제는 최소한 이 영화에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강한 여운에 잠기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무간도’와 비슷한 영화라는 말은 취소되어야 한다.

출연진들의 호연 또한 영화를 빛나게 하는 요소다. 신세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강과장 역의 최민식은 묵직하게 영화 전반을 지배하고 있고 걸쭉한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정청 역의 황정민은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섬뜩하게 무자비한 조폭 2인자의 역할을 소화해냈다. 황정민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그처럼 완벽하게 정청 역을 소화해내지는 못했으리라.

여기에 여전히 ‘모래시계(1995, SBS)’부터 떠올리게 만드는 이정재의 발견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이 영화의 하일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일명 땀 신에서는 표정만으로도 극도의 긴장을 표현하면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고 최민식과의 독대 장면에서는 분노로 이마가 떨리는 섬세한 연기를 완벽히 처리해냈다. 이 영화를 통해서 비로소 이정재는 ‘모래시계’의 그늘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있다. 정청의 조직 내 맞수 이중구 역을 맡은 박성웅이다. 이정재나 최민식, 황정민과 달리 그는 주연이 아니라 조연에 이름을 올려놓았을 뿐이지만 이 영화를 말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특히 그의 광기 어린 눈빛은 이 영화에서 그 누구보다도 빛을 발했다고 할 수 있었다. 흡연 장면이 많은 이 영화에서 가장 맛깔나게 담배를 피우면서 분위기를 주도하기도 한다.

물론 이 영화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조폭 세계가 지나치게 미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아무 죄의식 없이 벌이는 폭력과 살인 장면도 거북하기 그지없다.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지만 아무래도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미성년자 관람불과라는 딱지가 붙기는 했지만 언젠가는 보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대단히 잘 만든 수작임은 부정할 수가 없다.

신세계(2012)
범죄, 드라마 | 한국 | 134분 | 2013.02.21 개봉 | 감독 : 박훈정
출연 : 이정재(이자성), 최민식(강과장), 황정민(정청), 박성웅(이중구), 송지효(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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