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법이다. 직업의 귀천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신분에 의해 좌우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자체로도 고귀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설령 그 대상이 몸을 파는 술집 작부라고 해도 말이다. 사랑은 사랑의 감정,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지 다른 불순한 그 무엇이 개입되어서는 곤란하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배우 장진영 주연의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Between Love And Hate, 2006)’은 건달과 술집 작부와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들의 출신들이 그렇다 보니 영화는 그리 유쾌하지 못한 편이다. 욕설이 난무하고 때론 주먹다짐도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만드는 것은 남자를 향한 여자의 순수한 사랑 때문이었다.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지 그 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2013년 발렌타인 데이와 함께 개봉한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Silver Linings Playbook, 2012)’의 주인공들도 다소 특이하다. ‘사랑에 맛(?) 간 남자, 사랑에 훅(?) 간 여자’라는 홍보 문구처럼 이 영화는 정신병자들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 탓이다. 속된 말로 맛이 간 남녀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러면서 당신의 러브멘탈은 안녕하냐고 묻는다.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8개부문 후보에 오른 작품이니 작품성도 기대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정신병자들의 순수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정신없는 영화에 불과했다. 정신적으로는 조금 문제가 있어도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는 영화가 아니라 흔히 말하는 사이코들의 사이코적인 영화일 뿐이었다. 이런 남자와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 만큼 당신의 러브멘탈은 안녕하냐고 묻지만, 그보다는 이런 싸이코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을 만큼 당신의 인내력은 안녕하냐고 묻는듯하다.
물론 남자주인공 팻(브래들리 쿠퍼)이 폭력을 행사하고 정신병원에 갇혀야 했던 사정은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그의 사연은 이렇다. 어느 날 집에 들어갔더니 자신의 결혼식에 쓰였던 노래가 흐르면서 아내의 팬티가 바닥에 널려있고 아내는 샤워 중이었다. 그녀와의 질펀한 정사를 상상하며 샤워 커튼을 젖혔지만, 아내는 동료 남자 직원과 함께 알몸으로 있더라는 것이었다. 누구라도 순간적으로 돌아버리게 만들만한 일이 아니던가.
그런 사연으로 상대 남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다니던 학교에서 쫓겨난 후 정신병원에 수용당해야 했던 사연은 충분히 이해할만했다. 그 사건 이후 결혼식 노래가 나올 때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폭발한다는 설정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아내에 대한 집착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작 바람을 피운 당사자인 아내가 너무 당당하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와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자주인공 티파니(제니퍼 로렌스)에 대한 설정은 더 심하다. 경찰인 남편이 죽으면서 졸지에 미망인이 된 점은 안타깝고 충분히 탈선 사유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녀의 일탈은 이미 그전부터였다. 자막에서 ‘걸레’라는 표현을 쓰듯이 오래전부터 함부로 몸을 굴리던 여인이었고 남편을 잃은 후 그녀가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것도 문란한 사생활 때문이었다. 사실이었는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 그녀의 증언에 의하면 12명의 직장 직원 전부와 몸을 섞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당당하기만 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그렇게 ‘사랑에 맛 간 남자’와 ‘사랑에 훅 간 남자’가 만나 춤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게 이 영화의 줄거리다. 세상 어딘가에 이런 남녀가 없으리라는 법도 없고 이렇게 맛이 간 남녀라고 사랑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나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더구나 여자주인공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는 불과 1년 전 ‘헝거게임(The Hunger Games, 2012)’에서 10대로 나왔던 이십 대 초반에 불과하다. 몰입에 방해되는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다. 안젤리나 졸리를 제치고 선택되었다던데 차라리 안젤리나 졸리였다면 더 나았겠다 싶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 중에서 또 한 명의 배우가 눈에 띄는데 남자주인공 팻의 아빠로 등장하는 로버트 드니로가 그 주인공이다. 이번 아카데미에 남우조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리기는 했지만, 그의 등장이 그리 반갑지 않은 것은 그만큼 이 영화의 수준이 지나치게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의 연기는 여전히 안정적이었지만 연기파 노배우의 출연이 반갑기보다는 오히려 안타깝기만 한 것도 우울한 일이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Silver Linings Playbook, 2012)
코미디, 드라마, 멜로/애정/로맨스 | 미국 | 122분 | 2013.02.14 개봉 | 감독: 데이빗 O. 러셀
출연 : 제니퍼 로렌스(티파니), 브래들리 쿠퍼(팻 솔리타노), 로버트 드니로(팻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