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처음 타보는 야간열차지만 플랫폼에서 기다리다 시간 맞춰서 타기만 하면 되리라 믿었었다.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00:40분경에 도착한 열차가 내가 기다리던 기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멘붕이 왔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부터 못 말리는 아내 따라서 다녀온 독일에서의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1. 하마터면 베를린이 아니라 프라하로 갈 뻔한 야간열차 사건
역내 알림판에는 베를린행 열차가 이미 도착한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열차는 프라하행이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옆에서 지켜보던 외국인이 앞 열차가 베를린행이라고 알려준다. 다시 말해 열차 두 대가 붙어있는데 앞차는 베를린행이고 뒷차는 프라하행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같이 달리다 각각 베를린과 프라하로 나뉜다고 한다. 앞으로 열차 이용에 유의해야 할 중요한 교훈을 얻은 셈이었다. 쿠셋은 불편하다고 하던데 우리 일행은 거의 실신상태로 숙면을 취했다는.
2. 먼저 베를린 웰컴카드부터 구입
베를린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웰컴카드를 구매하는 일이다. 프랑크푸르트 카드처럼 베를린의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카드다. 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해서 빵으로 아침을 해결한 후 손쉽게 웰컴카드를 구입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역내에 마련된 자판기에는 취급하지도 않았고 어렵게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서야 구입할 수 있었다(4인 16유로). 베를린에서 겪어야 했던 시련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3. 분단의 상징에서 통일의 상징이 된 브란덴부르크문
베를린에 가서 브란덴부르크문을 보지 않으면 파리에 가서 에펠탑이나 개선문을 보지 않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에는 동서 분단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통일 독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 그런데 버스를 타고 가기가 다소 애매하다는 점이 문제였다. 차라리 걷는 게 낫겠다 싶어 중앙역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이날의 고난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4.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지게스조일레(전승 기념탑)
브란덴부르크문에서 나와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홀로코스트 추모비가 있다. 묘석을 연상시키는 콘크리트 구조물 2,711기로 유럽의 유대인 희생자를 추도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다 우연히 전승기념탑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다지 멀지 않아 보여 가볍게 들렀다 가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무척 멀었고 무엇보다 전망대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그 힘을 아꼈더라면 전망이 더 좋은 베를린 대성당 돔까지 오를 수 있었을 것을.
5. 돔에 오르지 못해 아쉬웠던 베를린 대성당
16유로나 주고 산 웰컴 카드를 처음 써본 것은 브란덴부르크와 전승탑에서 이미 기력을 모두 소진한 채 베를린 대성당으로 향할 때였다. 성당 앞에서 음료수로 간단하게 목을 축인 후 성당으로 들어갔는데 1인 입장료가 무려 7유로나 한다. 그나마 18세 미만은 무료이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억울할 뻔했다는. 그러고도 전승탑에서 기력을 다 빼앗겨 전망대가 있는 돔에 오르지도 못하고 나와야 했으니 이 얼마나 원통한 일이란 말인가.
6. 헬레니즘 건축의 최고 걸작이라는 페르가몬 박물관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 Museum)에 대해 독일 여행 책자에서는 ‘수많은 베를린의 박물관 중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박물관의 하나’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고대 컬렉션(Antiken Sammlung)은 반드시 보라고 했다. 고대 유적 안에 들어선 기분이 묘하기는 했지만,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제대로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영어 오디오 가이드가 무료로 제공되기는 한다. 베를린 대성당 바로 옆에 이웃해 있다.
7. 베를린 장벽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베를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베를린 장벽이 아닐까. 어디서 들었는지 아내는 여러 곳 중에서도 장벽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 꼭 가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몸도 마음도 지쳤고 밥때도 지난 상태라 웰컴 카드를 두고도 택시를 타기로 했다. 페르가몬 박물관에서 9유로 정도 나오는데 택시조차도 벤츠더라는. 하지만 공복 상태에서 장벽 끝에서 끝까지 걷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8. 소문난 총각네 슈니첼 가게
아내가 굳이 이스트 사이트 갤러리를 택한 이유는 또 있었다. 싸고 맛있는 슈니첼 가게가 그 근처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또다시 길에서 헤매야 하나 긴장했지만 ,다행히도 갤러리 끝 건너편 다리 아래에서 비교적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이 가게 슈니첼을 먹어보겠다고 찾아올 정도니 총각(?) 몇이서 떼돈을 벌고 있는 듯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잘 먹기는 했다.
9. 별 볼 일 없었던 포츠담 광장
포츠담 광장과 그 안에 있는 소니 센터가 대단하다는 말을 듣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포츠담 광장으로 향했지만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못했다. 때마침 영화 ‘론 레인저’의 주인공 조니 뎁이라도 오는 것인지 화려한 무대가 준비되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나 이미 강행군에 지친 입장에서는 그다지 관심사가 아니었다. 블록으로 재현한 베를린 거리로 유명하다는 레고 랜드에 가볼까 했으나 입장료가 무려 1인당 15유로나 하기에 포기하고 말았다.
10. 지나치게 상업적인 베를린 장벽 초소 체크포인트 찰리
이제부터 본격적인 초치기가 시작되었다.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려면 늦어도 5시 3분 기차를 타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남은 시간을 어디에서 보낼까 하다가 베를린 장벽 초소를 재현한 체크포인트 찰리로 향했다. 장벽이 붕괴되기 전까지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던 현장인 셈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기념촬영을 하려면 1인당 2유로를 내야 하고 여권에 스탬프를 찍으려면 12유로를 내야 한다. 왠지 씁쓸하더라는.
11.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선 베를린
첫 여행지다 보니 여러 가지로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서야 했다. 베를린에서는 차라리 순환버스인 100번(웰컴카드로 무제한 이용 가능)을 타고 돌던가 아니면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이 더 현명할 듯싶다. 그렇지 않으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일정은 일정대로 꼬일 수 있다. 아니면 야간열차로 왔다 다시 야간열차로 돌아가는 것도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겠다. 프랑크푸르트행 열차에서 마셨던 맥주 프랜치즈카너는 너무 맛있어서 여행 내내 입에 달고 살았다는… (3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