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값이라는 게 있다. 나이를 돈 내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이에도 그만한 값이 있는 건 사실이다. 나이라는 의미가 가지고 있는 속성의 무게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싸면 쌀수록 함부로 대하게 되고 비싸면 비쌀수록 조심하게 된다. 가격이 싸면 언제든 갈아 치울 수도 있고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도 있지만 비싸면 그럴 수가 없다. 즉 가치에 맞는 대우를 받는 것이다.
영화 ‘고령화 가족’은 이런 나이값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함께 있지만, 그 누구도 나이값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없다. 집 안에서 유일하게 대학을 졸업했으나 영화감독이 되겠다며 뜬구름만 잡고 있는 인모, 마흔이 넘도록 자기 손으로 돈 벌어 본 적 없이 엄마한테 얹혀사는 한모, 대책 없이 사랑에 빠지고 대채 없이 헤어지는 미연이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무서운 중2 민경이 있다.
이러한 캐릭터들에 대해 제작사는 ‘인생포기 40세 인모’, ‘결혼 환승전문 35세 미연’, ‘총체적 난국 44세 한모’, ‘개념상실 15세 조카 민경’, ‘자식농사 대실패 69세 엄마’라고 설명하고 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아하 하고 깨닫게 되는 설명들이다. 즉, 말해도 모를 테니 직접 보시라는 말이 가장 적절할 듯싶다.
사실 ‘고령화 가족’이라는 제목은 그다지 호감 가는 제목이 아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사회를 풍자한 것만 같아서 불편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실제로 이 영화는 우울한 영화다. 실제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대책 없이 나이만 먹은 한심한 인간들이다. 영화에 대해 악평이 쏟아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개그콘서트’에서 ‘패션의 완성’을 외치던 김기리의 톤으로 ‘막장의 완성’이라고 외쳐야 할 것만 같다.
이 영화는 아침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막장 코드가 모두 담겨 있다. 출생의 비밀도 있고 불륜도 있으며 폭력도 있다. 밥벌이 못하는 큰아들은 감방에나 들락거리는 한심한 놈팽이이고, 영화감독이라는 꿈만 꾸고 사는 작은 아들은 현실 부적응자라고 할 수 있다. 남자 갈아치우는데 이골이 난 딸은 잡부에 가깝고,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손녀는 비행청소년이다. 설정만 들어도 우울해질 정도다.
나이값 못하는 인생들이 모여있는 만큼 영화에는 갖은 욕설들이 난무한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저주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말 가족이 맞다 싶은 생각이 들게도 만든다. 보고 있는 관객들 입에서도 욕이 나올 지경이다. 그런데 그 욕이 귀에 거슬리지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울고 싶은데 뺨 맞는 격이랄까. 세상을 향해 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대신 욕을 해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영화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한심한 인생들이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고 있는 인생의 무게들이 무겁게 짓누르기는 해도 그다지 절망적이지는 않다. 죽네사네 하며 서로 욕하고 싸우면서 난리법석을 피우지만 결국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용서하고 제자리를 찾기 마련이다. 상투적이라고는 해도 가족이란 원래 그런 게 아니겠는가. 막장드라마를 보면서 통쾌하게 웃어보기는 또 처음이다.
고령화 가족
드라마 | 한국 | 112분 | 2013.05.09 개봉 | 감독 : 송해성
출연 : 박해일(인모), 윤제문(한모), 공효진(미연), 윤여정(엄마), 진지희(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