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오는 뜰에서 2009/02/14 17: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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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해무가 자욱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아침이면 North Carolina Wilmington 부근 해역의 악천후 속에서 배가 육지에 좌초될 것 같다는 다급한 3항사의 전화 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쟁쟁하다.
지구의 자전 때문인지 Pacific Northwest 해안의 파도는 특히 치명적이다. 심야에 도선사가 조그만 pilot boat로 옮겨 타는 것을 보면 곡예가 따로 없다. 뱃전에 기대어 항해를 하다 보면 삶에서 1m 떨어진 곳에 죽음이 항상 따라 다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 그 가장 직접적인 증거는 호흡이다. 그러므로 몸에 갇혀 있고 호흡에 자유롭지 못한 한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물을 알지 못한다. 물속으로 돌을 던지면 그 돌은 결국 땅 위에 있게 된다. 우리의 대부분의 고뇌는 ‘나’라는 생각 때문에 나타난다.
연잎이 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흙탕물이 없으면 연꽃이 필 수 없다. 그러므로 흙탕물과 연은 따로 떨어질 수 없다. 이 모든 우주가 물리량의 합이 0(空)인 무한소에서 출발했다면 이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몸은 새장과 같다. 새장 밖에서는 하나를 차지하고 싶어 하지만 새장 안에 좀 살다가 보면 새장 밖으로 가보고 싶어 한다. 우리들은 몸이라는 옷을 벗을 때 보다 더 큰 진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우연히 참모습을 보게 되면 그대로 본래와 하나가 되며 더 이상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도 있다.
아이를 닮은 아버지
잠자기 전에 어둠 속에 다가와서 아들 녀석이 내 두 볼을 잡고는 “아이구, 귀여워라!” 하고 속삭인다.
재산은 놓고 가고 건강도 결국은 찾게 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선업과 깨달음의 체득이다.
한마음 같은 하나의 물방울인 이 세계에서 잠시 떨어져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한 평화와 고요가 온다.
꿈은 오관은 쉬되 의식이 쉬지 못하는 것이며 숙면은 호불호에 민감한 7식까지 쉬는 것이다.
2/14/’09 酉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