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습득은 언중들의 사고방식과 문화에 대한 이해이다. 2010/02/16 10:26 | 추천0 스크랩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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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습득은 언중들의 사고방식과 문화에 대한 이해이다.
-‘영어 리딩 무작정 따라하기’를 읽고
뜰에 내려서니 며칠 사이에 내린 봄비와 훈훈한 바람에 젖은 담쟁이가 120살쯤 된 모과나무의 줄기를 타고 내려와, 어둠 속에서 이마에 닿는 덩굴 잎의 감촉이 촉촉하다. 지난 주 2월호에 출판될 논문의 최종 수정 본 원고를 마무리하느라 미루어 두었던 ‘영어 리딩 무작정 따라하기’의 남은 부분을 설 연휴 동안 모두 읽었다.
시골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를 시작하면서 부터였는데 일학년 몇 주 동안 알파벳 인쇄체 대문자 소문자와 필기체 대문자 소문자를 배우는데 몇 주가 지나갔다. 그리고 발음기호를 배웠는데 그때는 영어의 음운체계가 생소하기만 해서 고모에게 알파벳 말고 또 다른 하나의 영어 철자를 가르쳐 달라고 조르던 생각이 난다. 고모는 내가 영어 발음기호에 대한 질문인 줄을 모르고 무엇을 묻는지 몰라서 난감해했었던 것 같다.
그때 영어 교과서는 ‘Gateway’였다. 고교 시절 영문 독해를 하다가 ‘미국에서는 자동차로 한 시간 걸리는 120 마일까지를 이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을 접하면서 참 이상한 나라라는 생각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 이학년 국어 시간에 전화걸기와 받기에 대한 내용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하얀 다이얼전화기를 하나 가져와서 학생들에게 교탁에 나와서 실습을 해보게 하셨다. 지금의 학생들에게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면 불과 35년 전의 그 일들이 마치 뉴기니나 아마존의 원시인들의 생활처럼 여겨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구에서 고교에 진학해서 FM 방송을 듣다가 팝송이 나오면 신경질을 내면서 다이얼을 돌리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게 시작된 영어와의 인연은 1980년 6월 2일 여수에서 미국의 동부와 일본 한국을 오가던 M/V PAN FORTUNE호에 3등기관사로 승선해서 근무하면서 영어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산업혁명과 대항해 시대의 유산인 150 m가 넘는 선체와 추진 기관인 만 2천 마력의 주기관(main engine)과 발전기를 비롯한 약 150여 종 이상의 각종 보조기관들에 대한 부품 명칭과 정비 공구들 그리고 사용 설명서는 모두 그들의 고향에서 사용하던 영어로 기록되어 있었으며 4시간마다 기록하는 기관일지(engine log book)와 항차보고서(voyage report)를 모두 영어로 기록하고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다.
약 5년 동안의 승선 근무 중 북미와 중앙아메리카 그리고 카리브에서의 여행 경험은 그나마 서툴었던 발음 교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간의 경험으로 느낀 바는 영어에서도 국어의 모음조화와 자음접변같은 음운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언어를 익힐 때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언중들의 사고방식과 세계관 그리고 문화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987년 다시 의학을 공부를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의학 지식의 습득을 위해서 다시 영어와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는데 일반생물학 세포생물학 분자생물학 유기화학 물리화학 유전학 면역학 해부학 조직학 발생학 병리학 약리학, 이 모든 교재가 영어로 쓰인 원서였다. 게다가 모두 천여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라 잠을 줄이고 세수하는 시간을 포기해도 항상 시간이 모자랐다. 그러나 그처럼 혹독하게 학부생활을 치른 보답을 지금도 향유하고 있다. 가끔씩 그때 공부했던 책들을 찾아보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공부할 수 있었는지 교수님들께 고맙기만 하다.
이러한 교훈은 지금도 이어져서 학생들이 고통스러워 하기는 하지만 나는 지금도 약리학 교재를 학부시절 사용하던 ‘Goodman & Gilman’s The Pharmacologic Basis of Therapeutics’를 사용한다. 그리고 각 section의 총론은 강의를 해주지만 각론은 각자의 범위를 정해주고 공부해서 발표하고 토론하게 한다.
의과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교단에 세우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 학생들이 많고 지식의 파악과 습득이 그렇게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다. 이 책의 리뷰를 신청한 이유도 그렇지만 현재의 학생들은 발음과 듣기 훈련은 이전 세대에 비하여 매우 뛰어나나 책과 사전을 주고 책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여 요약하고 발표하거나 실행에 옮겨보라고 하면 학습 수행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되는데 많은 원인 중의 하나가 어릴 때부터 학습활동이 학원에서 이루어지고 항상 누군가가 앞에서 이끌어 주었고, 학습한 내용이 습득하기 쉽게 요리되고 잘 포장된 것만을 섭취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러한 학생들에게 스스로 공부하는 준비 단계로서 이 책을 이용하기를 추천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스스로 노력해서 학습을 해야 하나 그러한 과정에 진입하는 중간 과정으로 이 책의 장점을 취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은 모두 60개의 주제에 걸쳐서 한 페이지에 걸친 단문의 해석과 이어서 그 문장에 대한 분석 그리고 해당 문법에 대한 간단한 선택형의 문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자는 각 topic들을 학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최근의 흥미로운 표제로 구성해서 계속해서 학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으며 책의 구성과 디자인도 학생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노력한 흔적이 돋보인다. 또한 듣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듣기교제로 CD를 사용할 수도 있도록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 하나 영어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경험이 있었는데 나는 1994년 석사논문을 작성하기 위하여 맥킨토시 LC475를 구입했다. 그야말로 컴퓨터에게 사정을 해서 천신만고 끝에 석사학위를 그해에 마칠 수 있었다. 그 논문을 Experimental and Molecular Medicine에 1996년 발표를 했는데 약 1년 뒤에 미국 NCBI (National Center for Biotechnology Information)의 Entrez에 access number p14780의 reference로 등재되었다.
1996년 여름 본교의 교수 연구실에 인터넷이 연결되었다. 그때 NCBI에서 방대한 정보를 접한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보를 채집하고 정리하여 습득해 갔다. 이제 영어는 다시 정보의 습득이 아니라 정보의 처리를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수단이 되었고 영어는 인터넷상의 기본 언어로서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물론 이제는 한국의 포털 사이트도 일반적인 지식은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으나 기초과학과 의학을 비롯한 전문지식을 접하는 데에는 정보의 량과 정보의 정치함을 다소 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비록 학생들이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는 하겠지만 원서를 약리학 교재로 사용할 생각이다. 어차피 국경의 한계가 없어진 지구촌에서의 삶이라면 비록 한글만큼 훌륭하고 실용적인 언어가 없겠지만 영어를 제2의 통용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현실은 영어를 사용해야 더 선진화되었다고 여기고 불필요하게 영어를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자세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79년 실습기관사로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 San Pablo Bay의 북쪽 해안의 Venecia에 들렀다가 다시 북쪽 Columbia 강의 Astoria에 입항해서 저녁에 산책을 하면서 어떤 아이는 태어나면서 자기 차가 있고 어떤 아이는 단지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운아라고 생각하는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하고 골똘히 생각하던 적이 있었다.
그 시절 기관사의 월급이 지금으로 따지면 2천만 원은 족히 되었지만 하루에 미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외지수당은 1달러였다. 그러하였던 대한민국의 위상이 이제는 외국여행을 하면서도 그때의 괴리나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급격히 부상되었다.
이 모든 것은 지금은 노인세대라고 치부되는 우리들의 아버지 세대의 노고와 희생으로 구축되었다는 것을 나는 산업현장에서 보고 경험했었다. 그 아버지들이 당신들의 일과에 바빠서 우리들은 언제나 먼발치에 있었지만 우리들도 뒤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쳐 왔다. 이제 동생들의 세대를 보면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눈과 입은 발달되었으나 손발이 그만큼 따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움과 연민이 더해진다. 아무튼 나는 많은 후학들이 이 책을 활주로 삼아 더 넓은 영어의 세계로 이륙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한다. 감사합니다.
2010년 2월 16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