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산요수(樂山樂水)
‘등산상식 사전’을 읽고
올해의 마지막은 유난히 추위와 폭설이 심한 것 같다. 어제는 오전 동안 옥상의 태양열 온수 난방 시스템으로 가는 급수가 잠시 얼었었다. 그나마 올해는 모과가 풍년이어서 술 담그고 남은 모과로 차를 달이니 겨울 동안 모과향이 끊이지 않을 것 같아 다소 마음이 훈훈해 진다.
고교 시절과 해상근무를 하던 약 10여년을 제외하고 평생 산을 떠나 본적이 없으나 따로 등반을 해본 것은 해병대 유격 훈련장에서 낙하훈련과 외줄타기 그리고 수직하강이 전부였던 것 같다.
등반과 관련된 기억은 약 20년 전 스위스의 융프라우요흐를 둘러 보기 위하여 인터라켄 오스트 역에 도착해서 같은 동양인이라고 내 사진을 찍어주던 같은 또래의 일본 여성이 있었는데 그날 점심을 그른 채로 아이거 북벽을 오를 거라고 말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언젠가 한번은 지리산 뱀사골 부근에 사시던 분이 수시로 지리산 산행을 즐겼는데 어느 날 칠선계곡에 혼자 들어갔다가 안개로 길을 잃어서 몇 시간을 헤매다가 탈진해서 이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포기하고 바위에 앉아 있는데 안개가 걷히면서 길이 보여서 무사히 하산을 할 수 있었다는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이지만 허 영호 대장이 북극점을 탐험하려고 유빙 위에서 무거운 짐을 끌며 혹한 속에 하루 종일 행군을 했는데 GPS로 찍어 보니 50m를 이동했다는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지금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산기슭의 언덕에 살지만 초등학교 가기 전 어릴 때부터 동네 뒷산은 우리들의 놀이터였고 새벽에 약 1시간 정도 등산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야영도 곧 잘해서 한번은 추석 연휴 때 제대로 챙기지도 않고 산속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떨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혼자 슬그머니 웃게 된다.
지난 10월 마지막 날은 사하구 의사회에서 주최한 가족 동반 등산대회에 참가해서 승학산에서 부산 신항과 을숙도와 낙동강의 낙조를 즐겼었고 11월 마지막 주에는 일본 가고시마에서 열린 한일 약리학 세미나에 초대되어서 가족 모두 활화산인 앵도(櫻島, 사쿠라지마)를 둘러 보았다.
매일 저녁이면 언제나 산속을 거닐지만 자연이 언제나 그러하듯이 산속의 기온이나 날씨는 언제나 변화무쌍하여 자칫 방심하다가는 사고로 다치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이번에 읽게 된 이 용대 교장 선생님의 ‘등산상식사전’은 모든 산행을 줄기시는 분들에게 아주 적합한 길잡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등산 용어와 매듭 등이 범선시대에 사용하던 항해용어와 로프 사용법을 원용하는 부분도 많았고 등반에 관련된 하드웨어나 등반 기술이 재료역학이나 물리학적인 지식을 아주 지혜롭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기상학이나 지리학 그리고 지구과학의 지식들도 활용되고 있으며 영어 독일어 불어 이탈리어 등의 다양한 어학적 지식도 습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최근의 아웃트로(outro) 패션에 대한 지적은 사실 지금 이 시간에도 목이 긴 등산화를 신고 있을 정도로 이미 일상생활 깊숙이 파고든 용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도 극세사에 대한 설명의 ‘데이너(denier)’나 나일론의 천의 밀도를 나타내는 T(density)의 정의도 매우 흥미롭다.
탄산탈수효소 저해제인 다이아목스, 고소생리학, 저체온증, 일사병, 동상 등의 의학적인 요소도 매우 간결하게 잘 설명이 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등정을 증명하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한 일화에서 1953년 낭가파르바트를 단독으로 오른 ‘헤르만 불’이 등정 시비에 휘말려 46년이 지나서야 남겨두고 온 피켈로 초등정을 인정받았다는 일화도 매우 인상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궁금했던 의문이 하나 풀렸는데 베르너 알프스의 Wetterhorn이 왜 ‘마터호른’으로 발음되어야 하는지 몰랐는데 그것은 체르마트의 ‘마터호른’과는 다른 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일독을 꼭 권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2010년 12월26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