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모르는 난초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말콤 글래드웰의 ‘다윗과 골리앗,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를 읽고
지난 해 6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주한이스라엘대사관이 공동 주관한, 이스라엘 보건의료 사절단의 일원으로 Tel Aviv에서 열린 Bio Med & Med in Israel에 참석한 후 마지막 일정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었다. 해수면에서 예루살렘까지는 계속되는 완만한 오르막길의 연속이었다.
다윗과 골리앗이 등장하는 무대인 엘라(Elah) 계곡은 지도상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어지는 1번 국도보다 조금 더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벤 구리온 공항은 착륙 예정 20분 전에 공항의 보안을 이유로 기내의 모든 창을 닫아야 한다고 안내 방송이 있었고 유럽 여행의 관문 중의 하나인 영국 히드로 공항을 내리면 세관 직원 들은 웃으며 영국지도 한묶음을 주는 여유로움과는 달리 군복의 직원들은 입국 심사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곳곳에서 경계의 눈빛을 숨기지 않았으며 때때로 의심이 가는 젊은이들에 대하여서는 집게손가락을 까닥거리면서 검문을 하는 매우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1번 국도의 왼쪽은 이중의 철책으로 경계를 짓고 있었고 어느 지역엔 약 3미터 이상은 되어 보이는 장벽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바로 팔레스타인 거주구역과 경계를 지은 구조물들이었다.
이집트 문명을 이어받은 크레타 섬의 해상문명은 지금의 유다지역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고 결국 북서 산지의 이스라엘 민족과 대립하게 되었으며 그 전쟁의 유명한 일화 중의 하나가 바로 이곳 엘라 계곡에서 벌어진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접근전이 아니라 가죽 투석주머니를 사용한 무릿매질로 골리앗의 이마를 공격한 그 획기적인 공격술은 단순한 외형적인 체격과 완력의 열세를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지만 그 당시의 시각으로는 상대의 의표를 찌른 매우 의외의 승리로서 모두의 존경과 외경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외형상으로는 열세를 면치 못하는 약자들이 많은 불리한 상황들을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많은 사례를 수집하고 분석한 명저라고 생각한다.
학급당 인원수를 줄이는 것이 꼭 학습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나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상대의 허점을 노려서 사막을 횡단하는 게릴라 전술을 쓰는 전략도 매우 인상적이다.
1부 3장의 ‘아웃사이더의 자아관념’의 내용은 읽는 내내 지난 20여 년 간의 나의 학업과 연구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저자의 혜안에 깊은 공감을 가지게 된다. 캐롤라인 색스라는 여학생이 하버드 대신 다소 선호도가 떨어지는 대학에 진학했더라면 교실 내에서 동급생들로부터 상대적인 박탈감을 덜 겪게 되어서 과학, 기술 그리고 수학(STEM)의 학업과정을 제대로 마칠 수 있을 것이나 최고의 대학을 선택한 대가로 수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했다가 세법전문가나 변호사가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고 소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제는 문과 이과의 구분을 폐지하겠다는 교육정책을 발표한 바 있으나 이전의 내 경험으로 보면 고교시절 대부분 수학의 어려움을 피해서 문과를 선택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나는 1974년 고향을 떠나 대구에 있는 고교에 진학을 했고 그때까지 고교와 대학 모두 본고사를 치르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내신 성적은 지금처럼 의미를 갖지 못했으나 10여년이 지난 1986년 다시 의학을 공부하려고 했을 때는 고교 시절의 부실한 내신 성적이 발목을 잡았다. 그 당시 15등급 중 8등급이면 그때의 성적으로 1등급 학생에 비해 15점의 감점을 감수해야만 했고 결국 대학 선택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단 대학에 입학을 한 후에는 상대적인 이점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의예과 2학년 1학기에 물리화학을 공부하면서 까다로운 교수님께서 재시를 발표하셨는데 80여명의 학생들 중 5명만 첫 시험을 통과 하여서 학내에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예과에 무슨 재시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많은 논란 끝에 첫 시험 결과는 무시하고 다시 모두 시험을 치기로 합의가 되었다. 그 두 번째 시험에서 혼자 재시를 면했고 그 꼬리표는 졸업할 때까지 따라 다녔고 생리학, 생화학, 약리학교실을 비롯한 기초의학 교수님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관심을 받았고 그것이 약리학교실에서 조교를 하는 인연이 되었다.
난독증이면서 골드만 삭스 회장이 된 ‘개리 콘’ 이야기도 심금을 울린다. 또한 1960년대 초 마빈 아이젠슈타트라는 심리학자가 “573명의 걸출한 사람들 가운데 4분의 1은 열 살이 되기 전에 적어도 부모 중 한 명을 잃었다. 34.5퍼센트는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45퍼센트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적어도 부모 중 한명이 죽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에 대해 정신과 의사 펠릭스 브라운은 “고아가 된다거나 부모와 사별한다는 것이 좋다는 주장이 아니다. 그러나 걸출한 인사가 된 고아들이 존재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는 결핍에서 어떤 미덕이 형성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쓰고 있다.
미국 남부의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에 대한 항거와 북 아일랜드의 신교도와 구교도 사이의 분쟁을 보면서 신성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들의 아집과 불완전함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1980년 가을 목재를 실으러 캐나다 벤쿠버 아일랜드의 Crofton이라는 소도시에 기항한 적이 있었다. 일주일 정도 시간이 있어서 그때 알게 된 아일랜드 인인 ‘Harry Murtagh’는 주말에 자기 집에서 가족들과 같이 지내자고 해서 밴쿠버 근교의 Ladner까지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일랜드도 한국이 일제 치하에 있었던 것처럼 영국의 식민지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까지 나는 그 아이리쉬의 순박함과 친절함을 잊지 못하고 있다.
우리들 모두는 각자 자신의 입장과 주장만을 관철하려고 든다. 16세기 메노파 교도의 ‘용서가 종교의 필수적인 사항’이라는 가르침이나 1940년 6월 프랑스가 독일군에 의해 함락되었을 때 유대인들을 보호한 위그노 교도들과 퀘이커 교도들의 숭고한 행위는 진정한 종교가 지향해야할 이상이 무엇인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모든 아버지들은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과자를 손에 든 아이는 먹기 마련이고 과자가 없는 아이는 과자를 얻기 위하여 분투노력한다. 부모로서 가장 어려운 일은 이미 손에 든 과자를 빼앗아 치울 수 있는 용기는 없다는 것이다.
가난한 아이는 차디찬 냉대를 피부로 느끼며 실망을 배우고 어른이 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를 문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유약할 정도로 유복한 환경은 장차 불러올 악몽의 전주곡이 될 수도 있다.
늙음과 함께 생긴 지혜는 상처투성이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 상처를 모두 자식에게 보여 줄 수는 없다. 저녁 산책길에 늘 한 번씩 안아 주는 소나무가 있다. 그 소나무를 만나면 언젠가 보았던 문화일보의 기사 한 귀절이 늘 떠오른다.
“폐문독서수세월(閉門讀書數歲月)
종송개작노룡린(種松皆作老龍鱗)
문을 닫고 책 읽기를 수 세월,
씨를 틔워 심은 소나무는 모두 노룡의 비늘을 만들었구나.”
감사합니다.
2014년 2월 24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