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행하는 공부법의 유효성과 의의
‘동경대 교수가 가르쳐 주는 독학 공부법’을 읽고
1983년 8월 31일 새벽, 멕시코 캘리포니아 반도의 엔세나다(ENSENADA)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샌디에이고를 향해서 드라이브를 하던 중 라디오에서 ‘어제 새벽 캄차카 근해에서 KAL 007기가 소련 미사일에 맞고 격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윽고 샌디에이고에서 13인승 프로펠러 소형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려 일본 나리타 행 비행기에 탑승하여서 일본에서는 예전 시간 보다 3시간 연착한 KAL기를 타고 귀국했다.
멕시코 태평양 연안을 운항하던 M/V PLUTO호에서 약 10개월을 근무하고 귀가하니 다시 공부를 하려고 매달 80만원씩 송금했던 월급은 모두 부친께서 신용사기를 당해서 모두 날리고 없어진 후였다.
그해 말 다시 카리브에서 운향하던 M/V PACIFIC HUNTER에 근무하기 위하여 출국을 하는 가방에는 ‘적중 340’이라는 학력고사 수험서 10여권이 들어 있었다. 5년간의 외항선 기관사로 근무한 이후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다시 재수생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것이 내가 독학을 하게 된 계기였고 1984년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미국 루이지애나 Lake Chatrles에서 하선하여 귀국한 후 1년을 꼬박 집에서 공부하고 그 성적으로 서울 대성학원 종합반에 들어가서 지금 내가 재직하고 있는 본교 의예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1992년, 의학과 4학년이 되어서 졸업을 앞두고 여름 방학이 가까워졌을 때 교수님의 권유로 의사고시를 치르고 졸업을 한 후 약리학교실의 조교로 남게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20여년을 독학으로 공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5년 전부터 의학과 1학년 약리학 강의를 미리 교재와 범위를 정해주면,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해서 발표를 하고 그 내용을 질문과 토론으로 정리하는 수행평가를 실행하고 있다. 이유는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가장 좋은 학습방법은 스스로 공부해서 타인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체험으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게 된 야나가와 노리유끼 교수님의 이 책은 그동안 겪어오면서 느꼈던 많은 점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메이지 시대에 유럽에 가서 책 몇 권 들고 와서 번역하면 평생 먹고 산다는 글을 읽으며 불과 20년 전만해도 책을 가진 자가 권력을 가진 자가 되던 시절이 생각나 실소를 금치 못한다.
공부는 가공업이어서 반드시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리하여 다른 분야와 연관 짓기나 학문을 현실에 적용하는 응용력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한다.
또한 공부란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는 수단이라는 주장도 경험에 비추어보면 진리에 가깝다.
제 5장 ‘자기 안에서 숙성 가공하여 배움의 성과를 도출해 낸다.’는 부분에서 ‘남에게 전해주려 할 때 배움은 보다 깊어진다.’, ‘자신의 말로 쓴다.’, ‘쉽게 쓴다.’, ‘독학 자체가 논문을 쓰기 위한 훌륭한 훈련이 된다.’라는 내용들은 학문을 하는 모든 분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학생들의 논문 지도를 하면서 이해하는 속도와 이해하는 깊이는 다르다는 견해나 논문을 쓸 주제를 스스로 정하라고 가르치는 모습은 아주 공감이 가는 훌륭한 지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도 항상 의문과 의심 또는 반론을 하면서 읽고 배우라고 가르치는데 저자의 주장중에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다소 있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특히 ‘메모하지 말라.’ ‘내용을 요약하지 말라.’ ‘줄을 긋지 말라.’고 하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마도 경제학에서는 전체적인 흐름과 논리적인 체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마치 화두 참선을 할 때처럼 오래 동안 이론들을 천작해서 조립하고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요해서 그러한 주장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의학은 하나의 단어나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더 이상의 진척을 기대하기 어렵고 암기하고 이해해야할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요약해서 정리하지 않고서는 전체를 개괄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또한 원서를 읽다가 보면 색깔별로 색인을 해두지 않으면 이전에 본 것을 다시 찾지도 못할 정도로 너무 분량이 많아서 밑줄이라도 긋지 않고서는 구분하거나 복습하기가 너무 힘든 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얄팍한 인스턴트 지식으로 자신들을 속이고 있는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후에 독학의 즐거움과 학문의 묘미를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감사합니다.
2015년 4월 27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