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과 인간다운 마무리

가치 있는 삶과 인간다운 마무리

아툴 가완디(Atul Gawande) 박사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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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반인들이 소화하기에는 정보의 밀도가 다소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년에서 노년에 걸쳐 있는 모든 분들이나 특히 의료분야에 종사하거나 의과대학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매우 다양하고 유익한 주제와 전문적인 지식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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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는 어느덧 일본처럼 노인들의 비중이 불과 몇 년 사이에 확연히 늘어나고 있으며 당분간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누구도 늙지 않는 사람은 없으며 누구도 집다운 집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살다가 가족들에게 둘러 싸여 위엄 있는 삶의 종말을 맞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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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재의 의료 체계에서, 자칫 의사의 입장에서는 환자가 죽는 다는 것은 실패를 의미하며 특히 나이가 젊은 환자의 경우에는 죽음 후에 찾아 올 의료소송이나 또 다른 의미의 자책감 때문에, 아니면 가족들의 도덕적 의무감에 떠밀려서 대부분의 말기의 중환자들은 집중 치료실에서 치유될 가망이 없는 연명치료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며 그러한 집중치료에 많은 의료재원이 고갈되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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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료 현실이 일반화 된 대에는 죽음을 삶의 자연스런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음으로서 개체의 모든 의미가 상실된다고 하는 그릇된 인식이나 또는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기 보다는 죄를 지은 대가라고 하는 잘못된 가르침이 만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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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부모가 모두 의사인 인도계 미국인 가정에서 자란 외과 의사이다. 그의 글을 읽어보면 비록 미국인이지만 동양적인 전통과 관습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그래서 이전 1980년대 초반 대미 정기선에서 기관사로 근무하던 시절 만났던, 많은 미국의 노인들의 실상이나 그들의 고뇌와 고독함, 그리고 동양의 대가족제도에 대한 그들의 동경과 선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이 책에서 기술하는 많은 내용들에 더 공감이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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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이 책 3장 109 페이지에 롱우드 하우스라는 요양원에 입주한 앨리스 할머니는 “여긴 집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말 그렇다. 책에 적혀 있는 대로 ‘진짜 집이라고 느끼는 곳에서 산다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아무리 누추한 집이라도 집이라고 하면 가족들과 정감이 가고 세월의 때와 추억이 묻어 있는 자신들만의 가구와 집기와 소품과 동물들과 나무와 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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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3장 109 페이지에 1980년 3월에 폭발한 세인트 헬렌 산의 스피릿 호수가에 살던 83세의 트루먼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결국 집을 포기하지 못해서 화산재에 묻혀 죽고 말았다. 1980년 가을 Longview Washington에 입항했을 때 1979년, 다른 배로 입항했을 때 알게 된 Elsie Y. Adolf 부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 할머니가 준 조그만 유리병에 담은 화산재 한 병이 아직도 내 연구실에 서가에 남아 있어서 그때의 상황을 훨씬 더 실감있게 느낄 수 있었다. 집이란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는 당국의 소개를 거부하며 ‘집이 없어질 거라면 나도 운명을 같이 하겠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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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 오리건 주와 워싱턴 주 사이를 흐르는 콜롬비아 강을 Longview에서 2시간 정도 조금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Vancouver Washington이라는 도시가 나온다. 미국의 노인들은 특히 동양의 손자뻘 정도 되는 20대의 젊은이들을 좋아했으며 그들이 예의바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딸이 사는 부근의 요양원에 사시던 Helen Freeman이라는 할머니가 있었다. 매우 쾌적하고 아름다운 개인 아파트처럼 생긴 곳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쓸쓸함이 묻어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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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Elsie Y. Adolf 할머니는 개인 주택에 사셨는데 정원의 파초를 파내지 못해서 대신 삽으로 파 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할머니는 그때까지도 양로원에 입주하기를 거부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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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5년간의 승선근무를 마치고 다시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지금은 모교의 약리학교실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집사람이 근무하던 우리나라의 요양병원의 실태를 보면 ‘늙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힌 것만 같다.’는 앨리스 할머니의 말의 의미를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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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예과 2학년 겨울방학으로 귀향했을 때, 황달이 심해서 선친을 모시고 지금은 강북 삼성병원이 된 고려 병원에서 입원하여 검사한 결과 담관암으로 진단 받고 3개월 간 투병을 하시다가 유명을 달리하셨다. 나는 그때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whole bone scan에서는 이미 암종이 전신에 퍼져 있었고 그 사진들은 아직도 내 연구실 한곳에 간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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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후반부는 저자의 부친을 포함하여 주로 말기 종양환자들의 투병과정과 질병이 진행함에 띠라 그들이 점차 정상적인 삶의 모습과 품위를 상실해 가는 과정과 그에 대응하는 호스피스 치료와 치료의 범위 그리고 심폐소생술을 포함한 연명치료의 범위와 치유가 불가능한 환자의 삶의 질에 대한 배려와 의료 지원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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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우리들은 주변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말기 종양으로 고통 받는 투병과정을 한 번씩은 지켜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하루하루 심해지는 노쇠와 통증으로 고통 받는 그것을 지켜보는 것은 피를 말리는 아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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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치유될 수 없는 질환이라면 우리들은 무엇보다 환자의 정서적인 만족과 인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모든 의료 환경과 제도가 개선될 수 있도록 우리들의 인식과 철학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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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러한 새로운 의료 환경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아울러 이 책을 읽다가 보면, 왜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건강관리에 좀 더 충실해야 하는가를 피부로 절절히 느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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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1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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