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와 느낌의 공유로 채색된 여행기
-온다 리쿠의 ‘메갈로마니아’를 읽고
멕시코와 카리브 해는 마지막으로 항해한 지 30여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언제나 따뜻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그곳을 거닐어 보면 오랜 세월 전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의 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져 오는 인연의 끈들을 느끼게 된다.
기억을 더듬어 1978년 9월에 발급된 선원수첩에서 확인한, 멕시코로 가기 위해서 미국 Los Angeles의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받은 날이 1982년 12월 9일이었다. 얼마 후 다시 Houston행 국내선 여객기에 탑승해서 자리에 앉으려다가 조금 떨어진 건너편에 십자로 끈이 묶여진 전형적인 인디언 샌들을 신고 있던 Indian 여인을 보았다. 나는 한마디의 말도 건네지 않았지만 잠시 동안 서로 미소 지으며 깊은 교감과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Mexico의 만사니요(Manzanillo)나 마사틀란(Mazatlan) 또는 아카풀코(Acapulco)에서 거리를 거닐다가 인디언 아이들이 자기들이 손수 만든 다소 주술적인 모양의 토속적인 인형을 사라고 갑자기 뛰어들면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언제나 그들의 웃는 모습이 친근했고 또 한편으로는 측은했다. 그것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상당히 두터운 인연이나 혈연의 끈이 서로 묶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번에 온다 리쿠의 ‘메갈로마니아’를 읽으면서 또다시 그때의 감흥과 연민의 소용돌이가 폭포수처럼 휘몰아치고 있다.
Houston을 이륙한 PanAm 기가 Mexico City에 도착한 것은 1982년 12월 9일 거의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Maritime Overseas Corporation에서 보낸 Agent를 만나 호텔에 짐을 풀고 잠시 심야의 시내를 거닐었고 호텔 인근의 주류회사에서 새벽에 상품을 싣고 나가던 트럭의 행렬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아침에 다시 공항에서 오하카(Oaxaca)행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약 3시간 정도 비행을 한 후 오하카에서 다시 Central American Highway를 달리기 시작해서 점심쯤에 네하파(Nejapa)인근의 몇 집 되지 않는 시골마을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Agent는 우리 일행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소스가 너무 짜고 매워서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파인애플 쥬스로 식사를 대신하였다. 그러나 그곳에도 황소가 있었고 한국의 시골 모습과 너무도 흡사했다. 꼬박 이틀이 넘는 비행과 드라이브 끝에 살리나 크루즈(Salina Cruz)항에 도착해서 10개월 간 기관사로 근무하게 될 M/V Pluto호에 승선하게 되었다. 멕시코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 연유이다.
이글은 <NHK 스페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마야와 잉카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 문명시리즈를 방송하면서 발행될 책에 실을 여행기를 기획하면서 저자가 동행하게 된 멕시코, 과테말라, 페루의 유적들을 약 2주간에 걸쳐 답사한 자료를 근거로 기술되어 있다.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이 여행기는 단기간에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고 관련된 고고학적인 지식의 일천함으로 인해 사실적이기보다는 다소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가미된 환타지에 가까운 구성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때 10 개월간의 멕시코에서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84년 약 10 개월간의 카리브 제도와 연안의 베네주엘라, 콜롬비아, 파나마를 다니면서 겪은 중앙아메리카에 대한 인상은 한마디로 요약해서 기술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느낄 정도로 매우 복합적이고 심오한 그 무엇인가가 문화의 저류에 흐르고 있으며 그것은 어쩌면 이집트나 터어키 등의 역사보다도 더 복잡하고 신비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다가왔던 것에 비추어 볼 때 작가의 고뇌와 탄식에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된다.
작가가 답사한 메소아메리카는 기원전 1200년부터 기원전 400년에 걸쳐 멕시코만 저지대에서 번성했던 올메카 문명을 필두로 한 멕시코 중앙부의 아스테카 문명, 유카탄 반도를 포함한 멕시코 남부에서 과테말라, 벨리즈, 온두라스 일부에 이르는 마야 문명이 발달하였었다.
그리고 고대 안데스 문명은 오늘날 페루를 중심으로 기원전 1천 년경부터 16세기까지 존속했던 여러 문화를 통틀어서 일컫는 것으로서 페루의 쿠스코를 중심으로 15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광대한 영역에 걸쳐 건설되었던 잉카제국과 겹쳐지는 문명이다.
저자는 ‘메소아메리카의 올메카 문명의 주제가 중미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중동처럼 실로 전 세계적인 문화권을 연상시키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사실상 아스테카의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로 유명한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유적은 이집트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피라미드 형태의 거석문화이기도 하다.
저자는 멕시코하면 마리아치와 타코스와 사막과 선인장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낙천적이고 소박한 웃음의 뒤에 숨어있는, 서구인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고 유린된 과거 선조로부터 내려오고 있는 우수와 비애의 감정들이 가슴을 파고든다.
저자가 유카탄 반도의 스푸힐(Xpujil) 유적을 둘러보다가 동네 소년이 탑 사이에 기어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이 동네 사람들에게 유적이란 집 근처에 있는 정글짐 같은 장소일 것이다.’라고 표현한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마치 관광객들은 머나먼 산토리니를 찾아가서 지중해의 석양을 보며 탄성을 지르는데 현지인들은 외로운 낙도에서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을 무료해하는 모습과 너무도 흡사해 보인다.
오늘날에는 2만 내지 1만 5 천년 전에 베링해협을 건너온 인류가 아메리카 원주민의 조상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고 한다. 마야의 건축은 세대를 거치면서 그 위에 계속 짓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예루살렘의 건축에 있어서도 유사한 형태를 띄고 있는 것 같다. BBC 타큐멘터리에 의하면 아마도 마야 문명은 9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7천 년 만의 유래 없는 대가뭄으로 쇠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잉카의 마추픽추는 ‘늙은 봉우리’라는 의미로 주변 봉우리의 이름 중 하나가 그대로 도시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었으며 1911년 미국의 역사학자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에 의하여 발견되었다고 한다.
여행은 시간을 두고 계획해서 충분히 사전 지식을 쌓고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둘러보아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비록 2주간의 강행군에 가까운 여행의 기록이지만, 이글을 읽으면서 지나간 젊은 시절들을 되돌아 볼 수 있었고 언제나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던 멕시코와 카리브에 대한 많은 추억들과 객수에 대하여 깊은 교감을 가질 수 있어서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2013년 10월 20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