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눈부신 이른 봄입니다.
저는 부산의 남쪽 끝, 암남반도에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하얀 모래가 아름다운 송도 바다가 있고
이곳에 직장과 집이 있으며 제가 늘 다니는 산책로가 있답니다.
산책로 초입에 들면
멀리 해운대의 마리시티와 부산항대교 용두산 공원 그리고 남항대교까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의과대학의 2월은 떠나보내고 맞이하는 행사가 많답니다.
어제는 아침에 동문이 후배들을 위해 마련해준 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했고
오후에는 시내 병원의 연구심사와 저녁에 있을 사은회로 때문에
오랜만에 낮 시간에 산책로를 찾았습니다.
숲속에는 솔향기와 흙 내음이 가득했으나
아직 봄을 찍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입니다.
그러나 뿌리와 줄기에는 더 많은 자양분과 수분을 가득 머금고
움이 트는 가지 끝에는 벌써 분홍빛의 강렬함이 엿보입니다.
매일 이곳을 거닐다 보면 사소한 변화에도 곧 눈이 가게 됩니다.
겉으로는 그저 평범하나 한적한 이곳에는
젊은 시절, 고뇌와 번민의 발길들과
참고 기다리는 것을 가르쳐 주던 100년이 넘은 소나무,
때때로 길을 잘못 들거나 호기심에 숲길을 찾던 Vancouver나 LA에서
왔다던 외국인 여인들이 있었고,
인근 감천항에서 올라온 러시아 선원들이 지나 다니기도 합니다.
작년에 그 소나무는 간벌작업의 대상이 되어
이제는 그루터기만 남았지만
언제나 내 마음 속에는 그 소나무가 살아 있어서
그곳을 지날 때마다 아직도 ‘너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요사이는 저녁이면 산등성이 위로 남중하는 오리온자리를 볼 수 있고
장군산에서 바라보는 을숙도와 가덕도 신항
그리고 거제도의 모습들은
석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하루의 끝자락을 넉넉함으로 꾸며 줍니다.
저녁 사은회 모임에서 만난
졸업생들은 이제 의료의 길에 입문을 해서
새로운 길을 가게 될 것이고
학생 때 담임교수를 하셨던 노교수님은
8월에 정년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인연들이 모여서 이곳 송도에서의 약 30년 가까운 세월들이 엮어져가고 있답니다.
2016년 2월 18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