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깨우치는 즐거움
사이토 다카시 교수님의 ‘세상에 읽지 못할 책은 없다 ’를 읽고
1980년 가을 쯤으로 생각된다. 한국과 일본, 미국, 캐나다를 오가던 대미 정기선 M/V Pan Fortune호의 기관사로 근무하던 중 선내의 도서관에서 Raymond A. Moody, Jr 박사의 ‘사후의 영적 세계(Life after death)’라는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두 구절은 ‘사후에도 삶은 계속되며 지식과 타인에게 행한 행위에 대한 책임은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책을 읽은 후로 삶의 목적은 단순히 여행하고 돈 벌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진화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해상 근무를 시작한 지 5년이 되었을 때 고교 시절 부실했던 학업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다시 공부를 해서 1987년 다시 의예과에 입학하여서 모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약리학 교수로 재직하기까지 어느덧 3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이번에 사이토 다카시 교수님의 ‘세상에 읽지 못할 책은 없다 ’를 읽으면서 젊은 시절에 마주한 한 권의 책이 얼마나 삶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주변에 책을 쌓아두고 읽는 독서의 습관이 얼마나 삶을 풍요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지를 돌아보면 새삼 놀랍기만 하다.
타인의 험담에도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에 다가가는 지금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즐겁고 넉넉하다. 내가 강의를 맡고 있는 약리학은 원서를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데 학생들은 다소 버거워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얻을 수 있을까?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비슷한 점이 꽤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먼저 넓은 책장부터 구하고 많은 책을 사놓고 틈날 때마다 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또한 책과 친해지고 익숙해지기 위해서 메모하고 줄긋고 색칠하는 것도 매우 효과가 있는 독서법이다.
내가 맡고 있는 강좌에서 학생들은 미리 교재를 읽어서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게 하는데 저자의 주장처럼 이러한 부담은 결국 스스로 책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긍정적인 압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여러 권의 책을 돌려가면서 조금씩 번갈아 읽기, 줄거리를 따라 ‘띄워읽기’, 대사 부분만 골라서 읽는 ‘시나리오 독서법, 등장인물의 관계도를 그려보기, 보는 독서로서의 도감과 사진집의 효용, 도서 리뷰 가려 읽기 등은 매우 유익하고 독서에 입문하는 분들에게 훌륭한 길잡이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책을 덮고 나서도 기억에 남는 몇 구절들을 옮겨본다.
“내게 책이란 단순히 지식을 얻는 수단을 넘어 저자의 속삭임을 듣고 그것에 이끌려 영향을 받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세상에서 ‘예술적’이라고 불리는 것은 일반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어학은 ‘OJT (on the job training)’, 결국 현지에서 일하면서 습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무릇 문학의 신은 디테일에 머문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좋은 작품은 행간에서 정념이나 정경이 떠오른다. 그것을 맛보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진정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고전을 읽고 마음에 드는 부분에 선을 긋거나 메모를 하면 그 책은 정말로 ‘나만의 고전’이 된다. 그것은 그저 책장의 꽃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의 커다란 보물이 되는 것이다.”
“어느 일부분만을 그대로 암기해서 전달하는 것은 소개가 아닙니다. 자기 나름대로 씹어서 자신의 언어로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변환 작업이야말로 기억을 정착시키는 강력한 룰이 됩니다.”
나도 어느덧 만권 정도의 장서를 갖춘 것 같다. 이제 책을 위한 공간을 더 확충해야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끝으로 독서에 대하여 덧붙여 추천하고 싶은 것은 지금은 인터넷 상에서 전 세계의 도서관에 존재하는 다량의 고전과 원서를 pdf 파일로 손쉽게 받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손끝에서 모든 지식과 지혜가 읽혀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많은 분들이 이러한 즐거움의 보물섬을 그냥 지나치지 말기를 당부드리고 싶다.
우주와 우리들의 삶은 넓고 깊어 그 자체가 배우고 깨쳐야할 대상이다. 지식과 사랑은 제대로 나눌수록 풍요해지며 우리들은 배우고 깨닫기 위해 지금 여기에 와 있다.
감사합니다.
2016년 6월 29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