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의 아름다움은 마음의 여백에 있다.
‘명상을 위한 마음의 등불’을 듣고
여름이 무르익어 여명 속의 뜰에는 풀벌레 소리가 영롱하고 새들도 흥에 겨워 지저귐이 요란하다. 색동호박의 어린 싹들은 어느덧 이층 베란다를 향하여 줄기를 뻗어 올렸고 수반에서 자라던 올챙이는 벌써 앞다리가 나와서 아이들은 개구리가 되면 뜰에다 내놓기로 한 약속 때문에 조바심을 내는 눈치다. 해질녘의 숲 속은 귀뚜라미 소리도 간간히 들려서 가을 또한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1990년 겨울 친구를 따라 단양의 한 산사를 찾아서 며칠 동안 수행을 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석공을 마친 후 좌선을 하고 있는데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짐승처럼 쫒기는 삶을 살지 말라.”는 한마디의 말씀이 그대로 뇌리에 깊숙이 꽂혔다. 심연의 밑바닥을 들여다 보던 적적한 상태라 비수처럼 날아든 그 한마디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며칠 전 유강진 선생님께서 낭독하신 ‘명상을 위한 마음의 등불’을 받아서 틈날 때마다 듣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마음에 와 닿는 한 장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두 장의 CD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탐욕은 거기서 일어나니.
탐욕은 거기서 일어나니 귀나 눈을 단속하지 않으면 탐욕은 거기서 일어나나니 이것이 고통의 종자이고 거기서 냄새나고 액이 새어 흐른다.
수행자로서 닦아 익혀야 할 것은 잘 설해진 성자의 길이거니 여덟 가지 다른 길을 깨달아 알면 두 번 다시 윤회하지 않으리라.
욕심은 물거품처럼 허망하다. 욕심이란 더럽기가 똥 덩이 같고 욕심은 독사 같아 은혜를 모르며 욕심은 햇볕에 녹는 눈처럼 허망하다.
욕심은 예리한 칼날에 바른 꿀과 같고 쓰레기 터 속에 꽃이 피듯 욕심은 겉으로만 그럴 듯하게 보이며 욕심은 물거품처럼 허망하다.
두려움과 번민은 사라지리라.
애욕아 나는 너의 근본을 아노라. 뜻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생기나니 만일 내가 너를 생각하지 않으면 너는 나에게 있을 수 없노라.
애욕이 있어 번뇌가 생기고 애욕이 있어 두려움도 생기나니 애욕을 버려 자유로우면 두려움과 번민은 사라지리라.
처음에는 달다가 뒤에는 쓰디쓴 과일처럼 애욕 또한 그와 같아서 뒷날 지옥 고통을 받을 때에는 한없는 세월 동안 불에 타리라.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탐욕의 포로가 되어 피안의 기쁨을 찾지 못하고 재물 쌓는 것만을 즐거움으로 아니, 남들을 해치면서 자기 또한 얽어매누나.”
비록 열여덟 줄 정도의 글이지만 반야심경의 지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깊이와 자비의 절절함이 느껴진다. 누구든 젊은 시절 한때의 사랑의 질곡에서 허우적거리던 기억을 갖지 않은 사람은 드무리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쉽게 말하지만 과연 그 내포(connotation)를 체득한 선지식이 얼마나 될지.
나는 단지 이 한 장의 말씀에 담긴 공덕과 가피가 무한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감사합니다.
2011년 7월 17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