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또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리고는 형들을 팼다. 고약한 녀석이다. 그야말로 패륜이 따로 없어 보일 정도다.
막내 KT가 큰형 삼성에게 무지막지하게 방망이를 휘둘러 큰 상처를 입혔다. 23일 대구에서 삼성과 만난 KT는 안타 12개로 11점을 뽑아내고 11:6으로 승리했다. 에이스 차우찬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가운데 삼성은 2012년 다승왕 출신의 노장 장원삼을 내세웠으나 패기의 KT 타자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KT는 전날에도 16안타로 13점을 뽑아 13:3의 대승을 거둔 바 있다.
막내에게 맞은 전날의 악몽을 잊으려는 듯 삼성도 시작부터 이를 갈았다. KT의 선발 투수 마리몬을 상대로 1회말 안타 3개와 볼넷 4개를 얻어냈다. 1번 타자 배영섭부터 시작한 타순은 한 바퀴를 돌았고 그 사이 넉 점을 뽑아냈다. 아무리 발톱이 빠지고 이빨이 빠지기는 했어도 사자는 사자였고, 큰형은 큰형이었다.
하지만 삼성 쪽으로 기운 것처럼 보였던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 했다. 3회초 1사 후 8번 타자 김종민의 중전 안타를 시작으로 5개의 안타가 연속으로 이어졌다. 1사 만루 상황에서는 3번 타자 마르테의 만루 홈런까지 터졌다. 4:0으로 삼성이 앞서나가던 경기는 순식간에 4:5로 뒤집어졌다. KT 6회와 7회에도 4점과 2점을 추가해 전날에 이어 두 자리 득점을 기록했다.
지난해 1군에 데뷔한 막내 KT의 성장세가 무섭다. 올해도 여전히 하위권 전력으로 평가받았던 KT는 4월 23일 현재 롯데와 함께 공동 4위에 올라있다. 5위 NC와 반경기 차이지만 3위 넥센과도 반게임 차에 불과하다. 두산이 선두에서 독주 중이고 SK가 그 뒤를 뒤쫓고 있는 가운데 중위권 혼돈세가 이어지면서 순위 변동이 계속되고 있지만 KT의 약진이 눈에 띄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하위권만 제물로 삼은 것아 거둔 성적도 아니다. 연패 수렁에 빠져 허덕이며 올 시즌 단 3승만 거두고 있는 한화와는 아직 만나지도 않았다. 두산과는 1승2패, 삼성과 3승2패, 넥센 2승 1패, SK 2승3패, 기아 2승1패 등으로 19경기에서 10승 9패로 승률 5할 2푼 6리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3할6푼4리였던 시즌 성적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일취월장이다.
KT보다 2년 먼저 데뷔한 NC는 첫해(2013년)에 6위를 시작으로 이듬해인 2014년에는 곧바로 3위까지 수직 상승해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했고, 지난해에는 정규리그 우승 팀인 삼성에 2.5경기 차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김경문 감독의 온화한 카리스마와 구단의 아낌없는 투자, 그리고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 등이 맞물린 결과였다.
NC와 달리 KT는 성장이 더딜 것으로 보였었다. 신생 구단이 프로야구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했던 NC와 달리 10번째 구단인 KT는 질적 저하를 불러올 것으로 예견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KT는 선수단 구성에 애를 먹었었고, 퓨처스 리그에서도 NC처럼 압도적인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었다. 1군 진입을 미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KT는 작년의 어리숙한 막내의 모습이 아니다. 수백억을 투자하고도 꼴찌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한화와 비교하면 오히려 어른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KT 조범현 감독이 2003년 신생팀 SK를 맡아 기반을 다진 후, 그 SK를 2007년부터 물려받아 야신이라는 칭송을 받았던 후임자가 한화의 김성근 감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