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사람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를 믿었고, 그를 의지했으며, 그를 따랐던 모든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다. 그를 믿었기에 그랬고 그를 의지했기에 그랬다. 그를 향한 분노보다는 허탈과 공허가 앞선 것도 그 때문이다. 거대한 희망이 한 줌의 망상으로 밝혀졌던 지난 2005년 황우석과 줄기세포 이야기다.
굳이 밝히지 않아도 영화 ‘제보자'(2014)는 그때의 일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경영이 맡은 이장환 박사는 황우석 박사이고, 줄기세포에 대한 대국민 사기를 언론에 공개한 ‘PD추적’은 MBC ‘PD수첩’이다. 그리고 박해일이 맡은 PD추적의 윤민철 PD는 PD수첩의 최승호 PD이고, 그러한 사실을 언론에 제보한 심민호 연구원(유연석)은 ‘닥터 K’ 류영준 박사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싶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그 당시에는 모두들 미쳤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미치고 싶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마치 자기최면처럼 말이다. 없는 줄기세포를 마치 있는 것처럼 꾸몄던 황우석 박사도 그랬을 것이고, 보이지 않는 줄기세포를 마치 본 것처럼 믿은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위대한 업적을 해냈다는 데 대한 자랑스러움이 앞섰고,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노벨상에 대한 염원이 앞섰다. 그랬기에 한쪽만 보고 열광했고 반대쪽에 대한 가능성은 철저히 배제했다. 그만큼 황우석 박사에 대한 전 국민의 기대는 대단했다. 누군가는 그러한 현상을 사이비 종교에 빗대기도 했는데 줄기세포가 사기로 밝혀진 지금에야 사이비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당시에 황우석 박사는 신과도 같은 존재였던 게 사실이다.
영화 ‘제보자’는 이장환 박사(이경영) 줄기세포 연구팀의 수석팀장이었던 심민호 연구원(유연석)이 PD추적 윤민철PD(박해일)에게 엄청난 사실을 제보하면서 시작된다.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하나도 없으나 이장환 박사팀이 만들어낸 줄기세포는 하나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믿을 수 없는 내용임에도 윤민철PD는 취재를 통해 이를 증명하고 갖은 외압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대국민 사기극을 파헤쳐내기에 이른다.
사실 여기까지는 알만한 사람이라면 다 아는 내용이다. 특별할 것도 없고 대단한 것도 없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라면서 지나간 시간들을 반추해 보는 의미가 크다. 잊혀진 치부를 들춘 것만 같아 불편함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뭔가 찜찜한 구석도 없지 않다. 정말인가 싶은 의구심 때문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도 필연적으로 각색이 있었을 테니 도대체 어디까지가 실제상황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인지 헛갈리게 된다.
그중에서도 이 영화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포커스에 대한 부분이다. 영화는 PD추적팀 활약에 촛점을 맞추고 있지만, 제목이 ‘제보자’라면 그보다는 제보자에게 포커스를 맞췄어야 했다. 힘들게 취재해서 방송에 내보낸 것만큼 중요한 부분이 수많은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선 제보자의 용기이기 때문이다. 그가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진실을 밝히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줄기세포에 대한 대국민 사기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치우치다 보니 정작 제보자가 제보를 결심하게 된 부분은 그다지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아쉬운 일이다. 지난 3월 5일자 한겨레신문에는 실제 제보자인 류영준 교수에 대한 인터뷰가 실렸는데, 이 기사가 오히려 영화보다 더 많은 내용을 알려주고 있었다. PD에 의해 파헤쳐 진 진실이 영화의 목적이었다면 제목은 ‘제보자’가 아니라 차라리 ‘PD추적’이었어야 했다.
→ 한겨레신문 3월 5일자 ‘8년만의 고백 “내가 황우석 사기 제보한 이유는…”’ 바로 가기
영화의 내용과 달리 상반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류영준의 잘못된 제보로 NT-1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이 취소되고, 서울대조사위에서 NT-1이 처녀생식이라고 발표하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황우석 교수도 미즈메디의 수정란줄기세포와 섞어심기를 한 김선종에게 속았으며, 사기죄는 무죄가 확정되었다고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권단 변호사의 블로그 ‘[황우석 줄기세포 이상한 제보자] 부끄러운 이야기’를 참고하시길…
제보자(2014)
드라마 | 한국 | 114분 | 2014.10.02 개봉 | 감독 : 임순례
출연 : 박해일(윤민철 PD), 유연석(심민호), 이경영(이장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