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나쁜 남자에게 빠지는 것은 이유 없이 당당한 매력(?) 때문일 것이다. 지나치게 상대를 배려하는 착한 남자가 좀 답답하게 느껴지는 데 비해서 상대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나쁜 남자에게서는 호탕하고 시원시원한 그야말로 남자다운 느낌을 받는다고 하겠다. 결혼 후라면 몰라도 최소한 연애할 때만은 착한 남자보다는 나쁜 남자가 더 매력적인 게 사실이다.
그런 인물 중에 최영도가 있다. 유명 호텔 2세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 약자만 골라서 괴롭히는 비겁한 인물이지만 돈이 있다 보니 매사에 당당하다. 자신보다 더 높은 신분의 김탄 앞에서는 절절매지만, 그 외에는 거칠 것이 없다. 심지어 사랑도 자기 마음대로다. 상대가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자기 마음에 들면 그만이다. 상대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최영도를 김우빈이 아닌 다른 배우가 맡았다면 아마도 덜 매력적이었으리라는 데는 대체로 의견을 같이할 것이다. SBS 드라마 ‘상속자들'(2013)의 높은 시청률에는 김우빈의 공로 또한 적지 않은 게 사실이거니와 극 중에서 박신혜가 맡은 차은상이 이민호가 맡은 김탄이 아니라 김우빈이 맡은 최영도의 여자가 되길 바라는 의견도 많았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김우빈이 스크린 데뷔작 ‘친구2′(FRIEND : THE GREAT LEGACY, 2013)에 이어 ‘기술자들'(2014)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제목만으로도 성의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도둑들'(The Thieves, 2012)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감시자들'(Cold Eyes, 2013)이니 ‘공모자들'(2012)이니 하는 제목들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자들’이라니. 제목에서부터 벌써 진부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선택하지 않을 영화였다. 제목도 그렇거니와 내용도 뻔해 보이고 출연진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특별한 일이 생겼다. 성탄을 맞아 영화를 보기는 봐야겠는데 특별히 구미에 맞는 영화가 없었다. ‘국제시장'(Ode to My Father, 2014)도 땡기지 않았고 ‘호빗: 다섯 군대 전투'(The Hobbit: The Battle of the Five Armies, 2014)는 전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김우빈이라는 배우 하나만 보고 선택한 영화였는데 그 결과는 참담했다. 돈 버려 시간 버려… 차라리 집에서 ‘나 홀로 집에'(Home Alone, 1990)나 보는 편이 훨씬 유익할 뻔했다. 스토리도 엉성하거니와 편집, 연출 모두 수준 이하였다. 아무리 김우빈을 위한 영화라고 해도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솔직히 사기 당한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스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상 가능한 내용대로 흘러간다. 김우빈이 맡은 지혁이 김영철이 맡은 조사장의 귀금속 매장을 턴 이유가 밝혀지고 조윤희가 맡은 은하의 정체가 드러나지만 그다지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놀랍지도 않다. 바다를 향해 몸을 날리던 김우빈이 경찰이 쏜 총에 맞지만 긴장감을 느껴지지도 않는다. 당연히 뻔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출연진이 허약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김영철, 고창석, 신구, 조달환 등 나름대로 이름있는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김영철은 혼자서 ‘달콤한 인생'(A Bittersweet Life, 2005)의 강 사장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감초 역할은 맡은 고창석은 혼자서 따로 노는 느낌이 강했다. 이현우는 아직도 아역 배우로나 적당해 보이고.
같은 재료로 만들었다고 해서 모두 같은 맛을 내는 것은 아니다.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메뉴로 변신하곤 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뻔한 설정이라고 해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가 될 수 있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감독의 스크린 데뷔작은 지난 2012년에 개봉했던 임창정 주연의 ‘공모자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자신이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고 했던 바로 그 영화였다.
기술자들 (2014)
범죄, 액션 | 한국 | 116분 | 2014.12.24 개봉 | 감독 : 김홍선
출연 : 김우빈(지혁), 김영철(조사장), 고창석(구인), 이현우(종배), 조윤희(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