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영화를 말할 때 ‘황야의 무법자’를 빼놓을 수 없다. 1964년 작인 이 영화의 원제는 ‘A Fistful Of Dollars’로 ‘달러 한 움큼’ 정도의 의미에 불과하지만 ‘황야의 무법자’라는 제목으로 인해 원제보다 강렬한 느낌의 서부시대 총잡이를 대표하는 영화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물론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건조한 매력의 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만남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제목의 중요성을 알려준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편의 흥행에 힘입어 속편까지 제작되었지만 아쉽게도 제목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속 황야의 무법자’를 이미 다른 영화가 선점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영화의 원제는 ‘장고(Django, 1966)’였다. 정작 ‘황야의 무법자’ 속편 격인 영화는 그 제목을 쓸 수 없었기에 궁여지책으로 갖다 붙인 속편의 제목이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였다. 원제와 상관없이 그럴듯한 제목을 붙이다 보니 생긴 문제였지만 ‘석양의 무법자’도 상당히 멋들어진 제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족보가 꼬이는 결과가 나타나고 말았다. ‘황야의 무법자’가 먼저인지 ‘석양의 무법자’가 먼저인지도 아리송하거니와 ‘황야의 무법자’와 ‘속 황야의 무법자’의 관계도 애매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세 영화는 모두 관련이 없다. ‘황야의 무법자’와 ‘속 황야의 무법자’가 별개의 영화인 것은 물론이고 속편이라고 불리는 ‘석양의 무법자’와도 상관이 없다. 그저 ‘황야의 무법자’의 흥행에 편승할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장고’는 억울하다. 원제를 살리지도 못했을뿐더러 그저 ‘황야의 무법자’ 아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까닭에서다. 하지만 ‘황야의 무법자’와 ‘석양의 무법자’가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는 데 비해서 장고는 굵직한 남성 목소리의 노래로 더 많이 기억되기도 한다. ‘속 황야의 무법자’보다도 ‘장고’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장고가 돌아왔다. 2013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도 올랐고 남우조연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장고:분노의 추적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개성 있는 연출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생애 처음 악역을 맡았다고 해서 화제가 된 영화이기도 하다. 50년 만에 다시 나타난 장고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원작 ‘장고’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을까?
그런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이 영화는 1966년 작 ‘장고’의 리메이크 버전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영화였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복수하는 총잡이라는 설정은 비슷하지만 ‘장고:분노의 추적자’에서의 장고는 총잡이가 아니라 노예였고 그나마도 현상금 사냥꾼인 닥터 슐츠에 의해 구원받고 자유를 얻게 된다. 과거는 베일에 싸인채 똥폼만 잡는 총잡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장고가 흑인이기까지 하다. 계모의 미움을 사서 성에서 쫓겨나게 되는 ‘백설공주’가 숲 속 일곱 난장이의 성노리개였다는 식의 동화의 원작을 비튼 잔혹 동화 수준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총알이 난무할지언정 잔인한 장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기존의 서부영화와 달리 머리가 터지고 유혈이 낭자한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서 아직도 서부시대를 꿈꾸고 있느냐며 물어보는 듯 하다.
그렇다. 우리가 기억하는 서부영화는 낭만의 산물이었다. 총에 맞아 죽어나가기는 해도 고통은 없어 보이고 게다가 주인공은 끝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기 때문일게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세밀한 혹은 잔혹한 묘사에 인상을 찌푸리게 되기도 하지만 감독이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점을 떠올리면 그답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그의 영화치고 상당히 점잖은 편이라면 알만하지 않은가.
서부영화가 권선징악을 대표하듯이 이 영화도 권선징악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닥터 슐츠의 알량한 자존심은 이해하기 힘들다. 아무리 폼에 살고 폼에 사는 폼생폼사의 시대라고 해도 서푼짜리 자존심 때문에 위험을 자초한다는 부분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에 대해서도 빼놓을 수 없는데 닥터 슐츠와의 기 싸움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Django Unchained, 2012)
드라마, 액션, 멜로/애정/로맨스 | 미국 | 165분 | 2013.03.21 개봉 | 감독 :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캘빈 캔디), 제이미 폭스(장고), 크리스토프 왈츠(닥터 킹 슐츠), 사무엘 L. 잭슨(스티븐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