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망설였다. 정말 필요한지 도통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있으면 편할 것도 같지만 없어도 그만일 것도 같은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게다가 가격도 만만치가 않다. 싸게는 만원대부터 시작하기도 하지만 비싼 건 10만원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그러니 더 고민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 돈 들여 꼭 사야 하나 아니면 없이 버텨볼까. 돈이 얼만데.
하루에도 몇 번씩 살까 말까 망설이게 만드는 녀석의 정체는 바로 문서 재단기다. 제본된 책을 뜯어주는 녀석 말이다. 책을 스캔해서 이북(ebook, 전자책)으로 만들려면 문서 재단기가 반드시(?) 필요한데 문제는 역시 돈이다. 저렴한 제품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재단 능력이 떨어지고 많은 양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제품은 역시나 가격이 비싸다.
네이버에서 검색으로 찾아보면 1만7천원대 제품부터 나오는데 그래도 싼 맛에 사볼까 하다가도 한 번에 몇 장만 처리할 수 있을 거면 차라리 칼이나 가위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이런 제품은 책을 재단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사진 인화지나 코팅지와 같은 얇은 내용물을 깨끗하게 잘라준다는 데 의의가 있는 제품이라 하겠다.
그러다 가격대도 부담스럽지 않고 성능도 괜찮아 보이는 제품을 발견했다. 쇼핑몰에서 파는 아톰 APT-300의 최저가는 50,930원(배송료 별도)이나 새 제품이 중고로 3만원(배송료 착불)에 나왔기에 눈 딱 감고 거래하기로 했다. 저가형은 작두가 약하고 받침대가 가벼워서 재단에 애로가 없지 않다고 하던데 이 제품은 작두도 튼튼하고 받침대도 적당히 묵직했다.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무겁지 않아 휴대하기에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구성품이라고는 재단기 본체와 자석형 스틱이 전부다. 이 스틱으로 기준을 정하면 책을 일정한 모양으로 재단할 수 있게 된다. 아쉬운 점은 한 번에 약 20페이지를 권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보다 많이 하면 작두 칼날이 쉬이 무뎌진다고 한다. 요즘 책이 약 250여 페이지 내외이니 그 정도만 되면 좋겠으나 그러면 가격도 올라가고 재단할 때 들여야 하는 힘도 더 들게 된다.
테스트 삼아 약 120여 페이지짜리 잡지 하나를 재단해 보기로 했다. 20페이지를 준수하기 위해 책을 뜯고 있자니 이럴 거면 칼이나 가위로 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싶은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한다. 어쨌든 그렇게 묶음으로 나누고 아톰 APT-300으로 재단해 보니 서걱서걱하며 잘려나가는 소리가 통쾌하게 들려왔다. 시간 날 때 분권해 두었다가 한꺼번에 재단하면 괜찮겠다 싶다. 어쨌든 전자책을 만들기 위한 한가지 준비는 해결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