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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출애굽 이야기 엑소더스

엑소더스1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는 일이다. 믿자니 허황되고 안 믿자니 불경스럽다. 역사와 신화의 사이를 넘나드는 성경이 그렇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바벨탑이나 노아의 방주 등 신화적인 부분도 있지만, 역사적인 부분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설령 성경을 인정한다 해도 어디까지 믿어도 되고 어디까지 무시해도 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내용은 출애굽기라고 할 수 있다. 40일 동안 밤낮으로 내린 큰비로 세상을 심판했다는 노아의 방주가 신화적인 부분에 치우쳐 있다면 출애굽기는 애굽에서 포로 생활하던 히브리 백성들의 해방이라는 역사적인 사실과 열 가지에 이르는 끔찍한 재앙에다 바다가 갈라졌다는 홍해의 기적에 이르기까지 신화적인 부분도 교묘하게 섞여 있는 이유에서다.

검투사의 비애를 그렸던 ‘글래디에이터'(Gladiator, 2000)의 연출을 맡았던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엑소더스'(Exodus: Gods and Kings, 2014) 역시 그 두 가지를 한데 버무려 놓았다. 그는 ‘신들과 왕들’이라는 부제를 붙임으로써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보다는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 줄타기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기도 했다. 성경을 기반으로 하고는 있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리라는 선언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호의롭지만은 않았다. 지난 3월에 개봉했던 러셀 크로우 주연의 영화 ‘노아'(Noah, 2014) 때문이다. 이 영화는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둘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고 할 수 있었다. 신화라고 하기에는 불경스러운 내용으로 가득하고, 역사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이야기와 상관없이 스펙타클한 눈요기를 기대했던 사람들도 그 지루함을 이기지 못할 정도였다.

그에 비하면 ‘엑소더스’는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이 보이기는 한다. 초반 부분 전투 신은 ‘노아’가 제공하지 못했던 스펙터클한 영상으로 채우기도 했다. 또 한편의 ‘글래디에이터’나 또 하나의 ‘벤허'(Ben-Hur, 1959)가 탄생하는가 싶은 기대도 품게 만든다. 그러나 초반 부분을 빼면 다소 늘어진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다. 또한,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어설픈 줄타기는 오히려 집중에 방해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성경에서 신화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하고도 강력한 요소다. 그 부분을 제외하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마치 이해되지 않는 수학 공식을 두고 그냥 외우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영화 ‘엑소더스’는 신이 등장하는 부분을 최소화함으로써 신화보다는 역사를 강조하려한 것으로 보이나 결국 신화도 아니고 역사도 아닌 애매한 결과만 남기고 말았다.

모세는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 태어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죽어야 할 운명이었지만 극적으로 살아서 이집트 공주의 양아들이 된다는 설정 자체가 비범하지 않다. 하지만 영화는 그 부분은 생략하고 장성한 모세(모세스)가 람세스와 어떤 관계였는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집트 감독관을 죽이고 광야로 도망가는 부분도 성경과 다르다.

물론, 영화가 성경과 같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역사도 왜곡하는 마당에 실체도 불분명한 신화에 얽메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개연성은 필요하다. 신화가 허황되다고 하면서 그보다 더 허황된 이야기를 갖다 붙이는 것은 모순이지 않은가. 광야에서 십보라와 가정을 이루며 살던 모세가 애굽으로 가서 히브리 백성들을 해방시키겠다고 나서는 부분도 상당히 뜬금없게 그려진다.

더 어이없는 부분은 신의 등장이다. 성경에서는 타지 않는 떨기나무(출애굽기 3장)로 신의 존재를 묘사했는데 영화에서는 어린 아이를 신 또는 신의 대리인으로 내세웠다. 마치 민간 무속에서 말하는 ‘동자신(童子神)’처럼 말이다. 신화적인 부분을 최소화하고 싶어하는 심정은 이해하겠는데 그래도 너무하다 싶다. 차라리 비몽사몽 중에 꿈에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노아가 더 현실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10가지 재앙도 그렇다. 상당히 리얼하게 표현한 것까지는 좋은데 재앙에 대한 설명은 자르고 재앙 자체에만 촛점을 맞추다 보니 경고의 의미로 보이기보다는 절대자의 심술로 보이기도 한다. 특히, 출애굽의 하일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홍해의 기적도 상당히 어설프다. 차라리 색다른 해석이라면 좋으련만 이도 저도 아닌, 그래서 신화도 역사도 아닌 삼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이 영화가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 건지 도통 모를 일이다.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Exodus: Gods and Kings, 2014)
드라마 | 영국, 미국, 스페인 | 154분 | 2014.12.03 개봉 | 감독 : 리들리 스콧
출연 : 크리스찬 베일(모세스), 조엘 에저튼(람세스), 시고니 위버(투야), 벤 킹슬리(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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