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는 흔하지 않다. 선택받은 소수만이 일류라는 칭송을 받을 수 있을 뿐, 절대 대다수는 이류이거나 삼류에 불과하기 마련이다. 불공평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이류 혹은 삼류임을 부정할 수도 있으나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은 소수의 일류를 위해 존재하고 다수의 이·삼류는 그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돌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언맨과 같은 히어로물에 열광하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팍팍한 현실과 달리 영화에서만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지하고 싶은 생각 말이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정의가 스크린에서는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 그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혹자는 영화를 통해서 일류에 대한 대리만족을 경험할 수도 있겠다. 대부분의 히어로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하는 배경이라 하겠다.
하지만 영화조차 일류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아이언 맨’의 무기장사꾼 토니 스타크는 세계 최고의 갑부이고 천둥의 신이라는 ‘토르’는 아예 사람도 아니다. ‘캡틴 아메리카’의 캡틴 스티브 로저스는 비밀리에 만들어진 인간병기이고 ‘슈퍼맨’ 클락은 미개한 지구인이 아니라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이다. 정의의 사자 ‘배트맨’ 브루스는 토니 못지 않은 대부호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삼류가 주인공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Guardians of the Galaxy, 2014)는 신선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어깨에 힘만 잔뜩 주고 똥폼 잡는 일류들에 비해 허술하기는 해도 인간미가 물씬 풍긴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고급 호텔의 일류 주방장이 만든 값비싼 요리가 아니라 길거리에서 사 먹는 불량식품 맛이 날 정도로 B급 정서로 가득하기까지 하다.
비록 B급이기는 해도 이 영화가 ‘오스틴 파워'(Austin Powers) 시리즈 같은 저질 영화와 다른 것은 B급임에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억지로 웃기려 들지도 않거니와 스토리를 무리하게 끌고 나가지도 않는다. 영화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지게 된다. 모든 관객들을 웃기려고 하기보다는 웃고 싶은 사람만 웃으라는 무책임한 자신감이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이 영화는 시작부터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었는데 액션 히어로 영화를 울면서 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여섯 살짜리 주인공 피터가 임종을 앞둔 엄마가 내민 손을 잡지 못하고 망설이는 장면에서 그 안타까움이 그대로 내게 전해지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와 엄마가 남긴 노래 테이프를 목숨처럼 아끼는 모습이 가엾게 느껴졌다.
이 영화가 자극하는 B급 감성 중에는 노래도 빼놓을 수 없다. ‘죽여주는 노래(Awesome Hit)’라는 라벨이 붙은 카세트 테이프가 보는 이들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데 피터가 엄마 병실 입구에 앉아 헤드폰을 끼고 듣는 10cc의 ‘I’m Not in Love’는 그 자체로도 이 영화를 보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로 감미롭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주인공 피터나 영악한 너구리 로켓, 또는 우직한 나무 그루트의 매력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내가 본 가장 인상 깊었던 명장면은 죽음을 목전에 둔 엄마가 피터에게 남긴 선물이었다. 커서도 포장지조차 뜯지 못한 채 간직하고 있었던 엄마의 마지막 선물은 그야말로 깜짝 놀랄 만큼 죽여주는 선물이었다. 나도 아이에게 그런 선물을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 정도다.
개인적으로 마블의 영화들은 실망스러웠다. 아이언맨도 그렇고 어벤저스도 그랬다. 소니가 만들기는 했어도 마블 캐릭터인 스파이더맨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가장 괜찮았던 작품은 올초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정도였다.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 역시 마블이 만든 영화지만 그보다는 디즈니 영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기존 A급 히어로물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더 만족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Guardians of the Galaxy, 2014)
액션, 모험, SF | 미국 | 122분 | 2014.07.31 개봉 | 감독 : 제임스 건
출연 : 크리스 프랫(피터 제이슨 퀼), 조 샐다나(가모라), 마이클 루커(욘두)